남들은 산에 산삼을 캐러 간다고 하면, 은근히 기대를 겁니다. 물론 운이 좋은 날은 조복삼일 망정 많게는 5구짜리를 합해 10뿌리 정도는 캐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날나다 그렇게 운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은 며칠을 산을 뒤져보아도, 가방에 아무 것도 없이 빈 가방일 때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제(토)와 오늘(일), 이틀 동안 산행을 한 시간이 다 합해서 12시간 정도는 될 듯합니다. 날도 덮고 그동안의 산행과는 다르게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집중 호우로 계곡의 돌들이 구르고 산이 무너져 내려 조금만 잘 못 딛어도 그냥 흙과 함께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무릎이고 이마고 팔이고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을 정도입니다.

 

이틀 간의 산행에서 만난 산삼

 

그래도 빈손은 아니잖아

 

정말 엄청 힘든 산생이었습니다. 제가 산삼을 캐러 다니는 것은, 꼭 산삼을 캐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산에 가서 힘든 비탈과 계곡, 깔딱 고개 같은 비탈을 다니다가 보면, 일반 등산로를 따라 걷는 것의 몇 배 더 체력적으로 소모가 된다고 합니다. 날인 덮고 수풀 속으로 돌아다니니 긴팔을 입고, 목까지 완전히 방비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산모기와 날파리 등살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비가 온 후라 산 속에 풀은 왜 그리 많이 우거졌는지, 조금만 길을 잘못 들어도 가시덤불 숲에서 헤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오늘 산생은 몇 시간을 헤맨 끝에 겨우 2구짜리 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캐고 보니 이 삼이 적은 것은 압니다. 굵기도 칫솔 정도인 것이 나름 꽤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오후 산행에서 캔 더덕 한 뿌리. 뇌두 부분에 있는 작은 더덕과 비교하면 굵기를 알만하다

 

오후 산행에서 초주검이 되다

 

점심을 먹고 다시 시작한 산행. 돌이 제 자리를 잃은 계곡을 따라 오른다는 것은 정말 죽을 맛입니다. 그렇게 몇 시간을 헤맨 끝에 발견한 더덕 한 뿌리.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고 캐어보니, 대박입니다. 아마 20년은 족히 넘은 듯합니다. 길이도 20cm 정도입니다. 그렇게 12시간의 산행에서 얻은 것이 더덕 한 뿌리와, 2구짜리 산삼 한 뿌리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개고생을 하고 얻은 것이 없다’라고 할만 하죠. 하지만 나는 전문 심마니도 아니고, 그저 캐면 좋고 못 캐도 무관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30도가 넘는 더위에 왜 산을 가느냐고요. 산에 가서 땀을 흘린 후 계곡 물을 마시고, 세족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가 왜 개고생을 하는 것인지.

 

산 삼의 굵기는 칫솔의 손잡이와 비슷하다

 

내 몸 안에 세속의 찌꺼기를 걷어내는 산행

 

일주일 동안 술 마시고 사람들과 아웅다웅하고, 살다보니 남에게 못된 말도 해야 하고, 이렇게 산다는 것은 참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산에 가서 마음껏 땀을 흘려, 몸 안에 있는 세속의 찌꺼기를 내버리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운이 좋아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면, 주변에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는 기분 좋은 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난 뒤 보는 사람이 없는 계곡에서, 암반 위를 흐르는 깨끗한 물에 발이라도 담구고 있으면, 신선이 따로 없습니다. 이런 기분을 말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더욱 산에 가면 먹을 것이 참 많습니다. 100% 자연산이죠. 더구나 그 위에는 집도 축사도 없는 곳이라, 오렴이라고는 될 수 없는 곳이죠.

 

더덕의 길이는 밥 주걱의 길이와 흡사하다

 

그런 곳에서 산딸기라도 만나면 정말 신선한 것들을 마음껏 섭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는 것이죠. 자연인 인간이 되고 싶어, 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캐면 좋고, 못 캐도 서운하지 않은 산행이죠. 말로는 산삼을 캔다고 하지만, 산삼이 어디 동네마다 널린 인삼과 같은 것은 아니니까요.

 

이틀 동안 12시간의 산행 후리 많이 지쳐있습니다. 땀에 젖은 빨래 세탁하고, 시원하게 찬물에 샤워라고 한 후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는 것에 감사를 하면서.

 

산행으로 부은 발을 찬 계곡 물에 세족을 하면서 세상의 찌든 때를 씻어낸다

옥 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바위 위에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옥류각>이라 붙였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대전 대덕구 비래동 산 1-11에 소재한 옥류각은 대전시 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옥류각은 바위 위에 지어진 아름다운 정자다. '옥 같이 맑은 물이 흐른다'는 뜻으로 당호를 붙인 옥류각은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이 학문을 연구하던 2층 누각 형태의 건물이다.

 

조선조 인조 17년인 1639년에 계곡의 바위 위에 지은 건물이다. 이곳에서 송준길은 우암 송시열, 송애 김경여, 창주 김익희 등 당시의 훌륭한 학자들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였다. 옥류각은 전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계곡 사이의 바위를 의지하여 서로 다른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짠, 특이한 하부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자연사랑이란다.

 

자연 그대로의 바위를 살려 다른 높이의 기둥을 세운 정자. 정자를 지은 송준길의 자연사랑을 알 것 같다. 정자는 앞면이 계곡 쪽으로 향하기 때문에 옆면으로 출입하도록 하였으며, 입구 쪽부터 2칸은 마루, 1칸은 온돌방이다. 현재 건물 위쪽에는 현재 비래암이라는 절이 자리하고 있다.

 

대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까운 곳이라, 일부러 여행길에 송준길 선생의 흔적을 찾아 동춘당이며,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싶어 여정을 그쪽으로 잡았다.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비래사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간다.

 

 

송준길 선생의 마음을 만나러 가다

 

마을을 지나 산으로 오르면서 하산을 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절집이 어디쯤 있느냐고. 걸어가기는 좀 멀고, 차를 타고가면 절집 마당까지도 차가 들어간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차를 몰고 절집까지 갈 수가 있으랴. 천천히 산행도 즐길 겸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딴 곳이라면 몰라도 현장을 돌아보면서 나름대로 지키는 것이 있다. 절집과 정자는 가까운 곳에서부터 걷는 것으로 정한 바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정취를 더 음미하고자 함이다. 절집과 정자는 여느 문화재가 있는 곳과는 다르게 풍광이 뛰어난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저만큼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앞에는 커다란 고목이 한그루 서 있다. 보기에도 풍치가 있어 보인다. 걸음을 재촉해 가까이 다가갔다. 옥류각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찬찬히 주변을 돌면서 살펴본다. 어찌 이리 흐르는 계곡 위에 누각을 지었을까? 자연 그대로를 살려지은 정자가 더욱 멋이 있다고 느낀다.

 

주인을 그대로 닮은 옥류각

 

방 밑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맑기만 하다. 지금은 비록 퇴락한 주인 잃은 누각이지만, 한 때는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이야기로 밤을 지새웠을까? 선생은 이 옥류각을 짓고 사람들에게 세상을 멀리하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험한 세상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구책이었는지도 모른다.

 

 

오늘 이 계곡 물 위에 지어놓은 누각 하나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송준길 선생의 앞을 내다보고, 후손들에게 당부를 하고 싶은 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 문화재를 찾는 일을 계속하는 것도, 그 안에 많은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지, 그 안에는 변하지 않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옥류각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유난히 청아하게 들리는 것도, 오늘 또 작은 깨달음 하나를 얻었기 때문인가 보다.

 

벌써 옥류각을 다녀온 지가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다. 지금쯤은 어떤 모습으로 나그네를 반길 것인지. 시간을 내어 옥류각의 녹음을 보고 와야겠다.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소재한 보물 제413호 독락당. 그 독락당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이, 바로 계곡 가에 자리를 잡고 있는 정자 계정이다. ‘계정(溪亭)’이란 이름이 딱 알맞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정자가 독락당 옆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계정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있다. 아니, 자연과 스스로 동화가 되어 자연의 일부분인 양 서 있다. 널찍한 암반을 발아래 두고, 그 암반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물은 맑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정도로 푸르다. 계곡을 볼 수 있는 정자의 앞면은 축대 밖으로 돌출이 되어 있다. 기둥으로 떠받쳐 놓은 마루가 이 정자의 또 다른 멋을 연출한다.

 

 

500년 세월, 계곡과 함께 지내 온 정자

 

계정은 자손들이 독락당을 중건하면서 당시에 이미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보아, 처음 이언적이 독락당을 건축할 때 같이 조성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500년 가까운 세월을 이 계곡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니, 이젠 스스로가 계곡이 되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전국의 수많은 정자를 답사하면서, 늘 마음속에 정자 하나를 그리워하는가 보다.

 

독락당 안으로 들어가 양편에 황토와 돌로 쌓은 담을 따라 들어가면 계곡으로 나가는 출구가 있다. 이곳은 건물을 모두 담장으로 둘러쌓았으면서도, 담장마다 계곡으로 출입을 하거나 계곡 바람이 통하게 문을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 한편에 높은 축대 위에 걸터앉은 계정이 자리하고 있다.

 

 

 

 

호화롭지 않은 정자, 선비의 마음을 닮아

 

계정의 뒤편으로도 건물을 달아내어, 땅을 밟지 않고도 계정으로 옮겨 다닐 수 있도록 한 점도 눈에 띤다. 그저 호화롭지는 않지만, 계곡의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도록 공간을 확보했다는 점이 계정의 매력이다. 밑에서 계정을 올려다보면 마치 계곡 위에 떠 있는 선계의 누각과 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이언적 선생의 마음이 그대로 이 정자에 배어 있는 것은 아닐까? 화려함을 멀리하고 올곧은 생활을 하고자 하는 계정의 주인이 심성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하다. 계곡에서 정자를 바라보면 마루 좌측 벽에 '계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자연은 정자 내에도 자리해

 

오른쪽에는 방을 두었고, 방 앞에는 '인지헌(仁智軒)'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어질고 지혜롭기를 바라는 이언적의 마음인가 보다. 바로 주인의 마음이 그대로 정자에 소롯히 담겨져 있다. 인지헌의 밑에는 축대 중간에 아궁이가 있다. 그 밑에서 불을 땔 수 있도록 하여,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계정 역시 담에 붙여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안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밖에서 보면 중층 누각처럼 보인다.

 

 

독락당의 모습도, 계정의 모습도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자연이 되어 있다. 계곡을 닮아 있는 정자, 계정의 아름다운 까닭이다. 이 계절, 날이 더워질 때가되면 더 없이 계정이 그리운 까닭이기도 하다.

전남 보성군 문덕면 죽산리에 위치하고 있는 대원사, 8월 21일 대원사를 들리기 위해 찾아가는 길은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양편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여름이 지는 것을 아쉬워 하는 듯, 푸른 녹음을 자랑하고 있다. 대원사를 품고 있는 천봉산은 해발 609m로 보성, 화순, 순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원사는 백제 무녕왕 3년인 서기503년에 신라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이 되었다. 그 대원사를 향해가다가 입구 못미쳐서 만난 정자 하나. ‘산앙정(山仰亭)’ 이름대로라면 산을 믿고 따른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자연을 믿는다거나,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듯하다.




내에 놓은 돌을 밟고 건너다

정자는 어디나 경치가 좋은 곳에 자리한다. 이 산앙정이란 정자도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대원사를 들리는 많은 차들이 앞으로 난 도로를 따라 지나치고 있지만, 내 건너에 숨죽이듯 자리한 정자는 그런 것에는 아예 무관한 듯하다.

길가에서 정자를 찍다가 내를 건너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가까이 기 보고 싶어서이다. 천봉산 계곡을 흘러내린 맑은 물이 앞으로 흐르는 넓지 않은 내(=川). 그 한 곳에 돌로 징검다리처럼 만들어 놓았다.

돌을 조심스럽게 밟아본다. 생각 밖으로 튼튼하다. 누군가 이 돌을 밟고 내를 건너 정자에 오르기 위해 마련을 한 듯하다. 이런 마음이 바로 정자를 오를 수 있는 심성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그저 있는 듯도 없는 듯도 한 정자

산앙정은 길가에 서 있지만, 특별하게 눈에 띠지 않는다.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그리 숨어 있다. 길가에 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눈에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정자이다. 장대석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집으로 꾸몄다. 정면 중앙에 댓돌을 놓고, 그 외에는 모두 난간을 둘러 운치를 더했다.

‘우계(遇溪)’ 정자 안에 걸린 많은 현판 가운데 눈에 띠는 편액 하나가 있다. 바로 우계라고 쓴 편액이다. 정자 앞으로 흐르는 내를 그려낸 듯하다. 우계, ‘만나는 냇가’ 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뜻 안에는 ‘때를 기다리는 곳’. 혹은 ‘회합을 갖는 곳’이란 뜻이 숨어 있는 듯하다.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던 사람들이 때를 기다리며, 회합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속내가 내내 궁금하다.



산앙정, 아마도 물을 건너 온 사람들은 이곳에서 자연을 가슴에 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속에 가득한 세상에 대한 불신을, 저 천봉산 계곡을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씻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지붕 위에 가득 솟아난 풀들이 그저 무심한 세월을 그려내는 듯하다. 누군가 곁에서 한 마디 한다. 저렇게 풀이 많이 났는데 관리도 안 한다고. 그 사람을 보고 한 마디 한다.

“그도 자연이라니 그냥 냅두소. 오죽하면 정자 이름이 산앙정이겠소”

가슴까지 서늘하게 만들 만한 맑은 물이 암반 위로 흐른다. 물은 그렇게 돌바닥 위를 흐르면서 소리를 낸다. 마치 바닥의 암반이 차서, 얼른 피해가려는 듯 내리 구른다. 전남 곡성군 곡성읍 월봉리에 소재하고 있는 도림사 앞으로 흐르는 계곡. 도림사 계곡은 해발 735m의 동악산 남쪽 골짜기를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다.

‘월봉계곡’이라고도 부르는 도림사 계곡은 동악계곡, 성출계곡과 더불어, 아홉 구비마다 펼쳐진 넓은 바위 위로 맑은 물줄기가 흐르면서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한다. 마치 비단을 펼쳐놓은 듯하다는 도림사 계곡. 전라남도 기념물 제101호로 지정이 된 도림사 계곡은, 일 년 내내 물줄기가 그치는 않는 아름다운 계곡이다.



시인묵객들이 찾던 발길의 흔적

맑은 물은 쉴 새 없이 흘러 하류로 내려간다. 주변에는 늙은 노송들과 크고 작은 이름 없는 무명의 폭포들이 널려있다. 그저 바라다 만 보아도 좋다. 세세연년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를 찾아왔던 수많은 시인묵객들. 풍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도림사 계곡은,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길이 1km 정도를 흐르는 도림사 계곡. 9개의 넓은 바위에는 선현들이 새겨 놓은 문구가 남아있어, 당시의 풍류를 느낄 수가 있다. 계곡 정상부근에는 신선이 쉬어간다고 전하는 높이 4m, 넓이 30평에 달하는 신선바위가 남아 있다고 한다. 흐르는 물줄기를 아래로 굽어보고 있는 ‘단심송(丹心松)’ 한 그루가 외롭게 보인다. 그러나 그 외로움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바로 암반 위를 흐르는 맑은 계곡물 소리 때문이다.



신라 무열왕 7년에 창건한 도림사에 오르다.

도림사는 신라 무열왕 7년인 660년에 원효대사가 창건을 한 절이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절터를 잡을 때, 풍악소리가 온 산에 진동을 해 산 이름을 ‘동악’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도인들이 원효대사가 지은 절로 구름떼처럼 모여들었기에, 절 이름을 ‘도림사(道林寺)’로 지었다는 것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도림사는, 한강왕 2년인 876년에는 도선국사가 중창을 하였으며, 고려 때는 지환스님이, 1633년에는 영오선사 등이 중창에 참여를 했다. 도림사 경내로 발을 옮긴다. 일각문을 들어서니 넓지 않은 경내에 전각들이 오밀조밀하다. 보제루와 오도문을 지나면 보광전, 응진전, 명부전, 칠성각, 궁현당, 정현당, 설선당, 종각 등이 있다.



수석의 경치가 삼남제일이라는 곳

도림사의 중심 전각인 보광전을 오르는 계단 좌측에는 연리지가 있다. ‘사랑나무’라고 부르는 연리지는, 두 나무의 가지가 서로 합해지는 것을 말한다. 연리지는 양귀비 사후 50년이 지난 806년, ‘백거이’의 장한가에 인용이 되면서 남녀 간의 변함없는 사랑의 상징이 되었다. ‘칠월 칠일 장생전에서 깊은 밤 두 사람은 은밀한 약속을 하는데, 우리가 다시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가 되고, 이승에서 만나면 연리지가 되세’ 라는 대목이다.



도림사를 돌아 나오면 다시 계곡의 물소리와 만난다. 들어갈 때와는 사뭇 다른 소리가 들린다. ‘수석(水石)의 풍경이 삼남에서 제일’이라고 하는 도림사 계곡이다. 그저 어딜 보아도 신선들이 유유자적 걸음을 옮길만한 경치이다. 8월 21일에 찾아간 곡성 도림사와 계곡. 더럽고 추한 사바세계가 아닌, 신선들이 살아가는 선경이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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