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로 행복해 하는 늦깎이 가수 이채영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그리운 어머니
한평생을 자식 위해 살다 가신
우리 어머니
바다와 같은 사랑 제게 주시고
온 몸이 부서져라 일만 하시다
이 자식 효도 한 번 못 받으시고
밤하늘 별이 되어 저를 비추네
어머니 아~ 어머니 보고 싶은
우리 어머니
가수 이채영. 올 해 나이 47세에 음반을 냈다. 음반에는 시인 같은 인생, 허수아비 사랑, 보고 싶은 어머니, 토요일 오후 등 4곡이 노래와 MR로 수록되어 있다. 이름이 생소한 이채영이라는 가수는 과연 누구일까? 올 5월에 늦깎이로 첫 음반을 냈다는 그녀. 재능봉사로 노래를 하고 있는 가수 이채영에게 깊은 인생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처녀 때의 꿈인 가수를 접고 호주로
“아마 저는 어머니의 재주를 이어받은 것 같아요. 어머니께서 옛 노래를 잘하셨다고 하는데, 저도 어릴 적부터 노래를 좋아 했죠. 처녀 때는 가수가 될 꿈도 키워보았지만, 결혼을 하고 호주 시드니로 이주를 했어요. 그곳에서도 시드니 가요제에 나가 수상을 하기도 했고, 노래봉사도 했죠. 그러다가 2002년에 한국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왔는데, 다시 시드니로 돌아가지 않고, 시민권을 포기했어요.”
그 때부터 혼자의 몸으로 아들 2명과 막내인 딸을 데리고 가장 노릇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업을 하기도 했지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다가 보니 가까운 지인에게 속아 많은 것을 잃었다고.
“아마 그 사람도 지금은 속이 편치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별별 일을 다 해 보았죠. 어차피 숨길 것도 없잖아요. 내가 누군지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무엇을 숨기겠어요. 그러나 아직 남을 아프게 한 적은 없어요. 그러면 잘 산 것이 아닌가요? 저는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쳐요. 공부 잘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성이라고요. 사람답게 살라는 말이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쳐
그래서 수원에 와서 세류동에 거주하면서 안 해 본 일이 없단다. 전에는 잠시나마 세류지킴이 예능국장을 맡아도 보았고, 그 뒤 재능봉사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아마도 요양원을 찾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기 때문인가 보다.
“저는 어머니가 늘 그리워요. 그래서 제 음반에도 ‘보고 싶은 어머니’라는 곡이 들어있어요. 어머니께서 요양원에서 돌아 가셨어요. 제가 갈비집을 하다가 이리저리 다 날리고 너무 힘들어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셨는데, 건강이 많이 악화되셨어요. 제대로 찾아뵙지도 못했는데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은가 봐요. 지금도 요양원에 재능봉사를 하러 찾아가서 어르신들을 보면 가슴이 뭉클한 것이 많이 아파와요.”
1년이면 보훈처 등에 20회 정도 봉사를 다니고 있지만, 생활을 해야 하다 보니 더 자주는 못 간다는 것이다. 그런 것조차 미안하다고 말을 할 만큼 심성이 착한 그녀이다. 앞으로도 재능기부로 봉사를 계속하겠다는 그녀는, 봉사를 하고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시인 같은 인생을 살고픈 여인 이채영
속속들이 말 못하는 이 내 사연을
저 구름이 알아줄까 바람이 알아줄까
지나간 세월이 야속하지만
미련도 후회도 없을 것이다
막아보고 잡아 봐도 세월만 흐르네
남은 인생 사랑도 주고 정도 주다가
저 바람이 알려주는 길을 가면서
시인처럼 바람처럼 살자구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시인 같은 인생’이란 노래의 가사이다. 어쩌면 이 노래는 스스로를 달래기 위해 하는 노랫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모든 아픔을 다 훌훌 털어버리고 재능기부로 남은여생을 보내고 싶어 하는 늦깎이 가수 이채영.
“지금은 나아졌지만 처음에 요양원에 노래봉사를 갔을 때는 눈물이 나서 노래를 제대로 부르지도 못했어요. 어머니 생각이 나서요. 그래서 앞으로도 딴 곳은 몰라도 요양원 봉사는 계속하려구요.”
7월 24일(수) 수원시 팔달구 월드컵 경기장 내 컨벤션 웨딩홀에서 열린 장애인들에게 삼계탕을 대접하는 자리에서 만난 가수 이채영은 무대 위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그곳에 어머니를 그릴 수 있는 많은 어르신들이 함께 하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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