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현릉원 참배 시 묵어간 ‘안산행궁’

 

날이 덥다. 6월 초의 날씨치고는 벌써 한 여름 무더위를 방불케 한다. 5일 이른 시간에 답사를 시작하려고 했으니 무슨 일이 그렇게 생기는 것인지, 12시가 다 되어서 안산으로 향했다. 안산시 상록구 수암동 산26-4 일대에 소재한 경기도기념물 제127호인 안산읍성 및 관아지를 돌아보기 위해서이다.

 

안산에 들려 몇 곳을 먼저 들려보고 난 후 찾아간 안산읍성 관아지. 햇볕이 따가워 조금만 움직여도 등에서 땀이 흐른다. 안산읍성은 수암봉의 능선을 이용하여 평지를 감싸도록 쌓은 전형적인 평산성이다. 평산성이란 평지와 산을 연결해 성을 쌓은 형태를 말한다. 안산읍성은 조선 초기 서해안으로 침범하는 왜구를 막기 위한 성으로 축성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안산객사를 돌아보고 난 후 인신읍성 둘레길을 따라 걸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한 낮의 더위에 걷는다는 것이 무리겠지만 그래도 마음먹고 찾아온 곳이 아니던가? 안산읍성의 길이는 772m이고 서쪽과 북쪽은 바깥쪽이 매우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안산읍성 둘레길로 접어들기 전에 먼저 안산객사를 돌아보았다.

 

 

 

정조대왕이 묵어 간 안산객사

 

객사란 정청을 중앙에 마련하고 좌우에 공무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선 관원들이 묵을 수 있는 좌우익사를 둔다. 정청은 임금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를 모셔놓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지방관이 충성을 맹세하는 곳이다. 객사의 정청은 고을의 수령이 집무를 보는 동헌보다 격이 높아 관아시설 중 가장 화려하게 꾸민다.

 

안산객사는 정조 21년인 1797년 8월 16일 정조대왕이 현릉원 참배시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갔기 때문에 ‘안산행궁’으로도 불린다. 안산객사의 정청은 맞배지붕으로 좌우익사보다 한 단 높게 조성하였으며 좌우익사는 팔작지붕으로 온돌과 마루를 놓았다. 좌우익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조성하였다.

 

 

 

안산객사는 2010년에 복원하였으며 객사 앞에는 수령 500년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안산읍성지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이곳이 역사적으로 오래 된 곳임을 알 수 있다. 객사 뒤편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80년 정도인 은행나무가 서 있다. 나무의 높이는 20m 정도에 둘레가 6m나 되는 거목이다.

 

이 은행나무는 연성군 김정경의 거처가 안산읍성 안에 있었으며 김정경 장군이 1,400년경에 자신이 살고 있던 주거지 주변에 은행나무 세 그루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한 그루만이 남아있다. 이 은행나무는 1970년 경 고사할 위기에 처했으나 외과수술 등을 시술해 잘 자라고 있다. 이 나무의 북서쪽에는 김정경의 시저터가 자리하고 있다.

 

 

 

흔적만 남은 안산읍성 복원 서둘러야

 

안산읍성은 서해안으로 출몰하는 왜적을 막아내는 주요 방어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의 남쪽에는 문터가 있고 객사 주변에도 옛 주추며 성돌인 듯한 돌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길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 오르니 북문지가 나온다. 다시 서쪽으로 난 오르막을 오르니 북서쪽 꼭대기 평평한 터에 주춧돌과 같은 돌이 놓여있는 것으로 보아 장대(주변보다 높게 쌓아올린 장수의 지휘대)가 있던 자리로 보인다.

 

읍성을 돌아보면서 성곽의 형태를 찾아보려고 했으나 풀이 워낙 무성하게 자라고 길을 찾을 수가 없다. 다만 군데군데 돌무더기들이 쌓여있어 안산읍성이 가파른 자연적인 조건을 이용해 석축과 토축을 겸한 평산성이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리 넓지 않은 안산읍성 둘레길이지만 날이 워낙 무덥고 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한 바퀴를 꼼꼼히 돌아본다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서쪽방향을 여기저기 살피면서 돌아보았지만 딱히 석축산성의 형태라고 할 만한 곳을 찾을 수가 없다. 워낙 숲이 우거졌기 때문이다. 한 때는 행궁으로 이용되었을 정도였던 안산읍성. 그 중심에 있던 객사는 복원되었지만 뒤편 관아지를 비롯한 성곽의 복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졌으면 한다. 우선은 토성이라도 알아볼 수 있도록 주변 정리부터 제대로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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