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글께나 쓴다는 실력자들이 모였다. 97()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화령전.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원고지를 받아들고 여기저기 흩어진다. 수원시인협회(회장 김우영)가 주관하는 4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백일장의 모습이다. 이 행사는 수원시가 주최하고, 수원문화재단, 경기시인협회, 경기일보가 후원을 했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후에 정조가 왕위에 오르면서 장헌세자라 하였고, 1899년에 의황제로 봉해졌다.) 혜경궁홍씨(사도세자가 의황제가 된 후 혜경궁홍씨도 의황후가 되었다)의 묘인 융릉에 전배하기 위하여 행행 때에 머물던 임시 처소이다. 정조 1310월에 이루어진 현륭원 천봉부터, 정조 241월까지 12년간 13차례에 걸친 원행을 정기적으로 행하였다. 이때마다 정조대왕은 화성행궁에 머물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거행하였다.

 

 

화령전은 정조대왕이 승하한 뒤 순조 1년인 1801년에, 행궁 곁에 건립하여 정조대왕의 진영을 봉안한 곳이다. 행궁은 사적 제478호로, 화령전은 사적 제115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화령전 안 운한각은 정조의 어진을 모신 전각이다. 화령전의 정전인 운한각의 앞쪽에는 악공들이 제사를 지낼 때 연주를 할 수 있는 월대가 있고, 장대석으로 쌓은 기단에는 세 곳의 계단이 놓여있다.

 

정조대왕을 기리며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시제가 발표되었다. 시제는 <자전거>, <100년 후>, <화령전>이었다. 아마도 생태교통 수원2013’ 기간이기 때문에 그 상징인 <자전거>를 시제에 포함시킨 듯하다. 열심히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마 화령전에서 열리는 백일장에, 시제에 백일장이란 제목이 있어 검색을 하는 듯하다.

 

 

백일장에는 오후 1시가 조금 넘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행궁 앞 안내소에는 연신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바쁘게 움직인다. ‘100명 정도가 모일 듯해요라고 오전에 시인협회 김우영회장이 이야기를 했지만, 정작 시간이 되자 그 배가 되는 사람들이 백일장에 참가를 한 것이다.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많은 사람들이 화령전 여기저기 흩어져 글을 쓴다. 풍화당 안에도 찾아들었다. 정조대왕의 어진을 모신 운한각의 뜰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시어(詩語)를 떠올리기 위해 고민을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장원은 제가 차지해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는 학생이 보인다. 중학교 1학년이라는 남자아이는 진지하게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시제를 무엇으로 잡았느냐고 물으니, 화령전이라고 한다. 화령전이라는 제목은 어린학생이 감당하기에는 조금 어려울 듯하다. 잘 쓸 수 있겠느냐고 몰었더니, 이 학생의 대답이 걸작이다.

 

 

장원은 이미 제가 맡아놓았어요. 저는 그동안 전국 백일장에서 여러 번 수상도 했고요.” 이 학생의 자신감이 도가 지나치는 듯하지만, 그런 자신감이 있다는 것이 대견하다. 그만큼 어려운 시제를 갖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부인 듯한 한 사람은 연신 검색을 한다. 무엇을 검색하느냐고 물으니까, 자전거를 제목으로 잡았는데, 생태교통에 대한 검색을 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2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제4회 정조대왕 숭모 전국 백일장. 한 낮의 햇살이 아직도 따가운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저마다 열심히 글을 적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누가 장원을 차지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가를 했다는 것이 더 의미가 있다는 한 학생의 말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