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속에 찾아간 육괴정에서 다리를 쉬다
8일, 벌써 며칠째 국민안전처에서 경기도 일대에 폭염특보가 내렸다는 문자가 들어온다. 아침 일찍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로 향했다.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는 ‘산수유축제’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산수유축제를 열 때 찾아갔던 이천시 향토유적 제13호인 육괴정은 백사면 도립리 735번지에 소재하고 있다. 한 여름 녹음이 짙은 육괴정의 모습이 궁금해 그곳으로 향했다.
육괴정은 처음 지었을 때가 500년 전이라고 전하는 정자이다. 육괴정 주변에는 거대한 느티나무가 서 있다. 이 나무들이 바로 처음 육괴정에 모였던 명현들이 뜻을 모아 심어놓은 나무라고 한다. ‘육괴정’이라는 정자의 명칭 또한 이 나무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앞에 작은 연못은 새로 조성한 것이지만, 연못 안에 가득자란 각종 풀들로 인해 볼썽사납다. 장마가 그치고 난 뒤 이렇게 무성하게 자란 풀들을 제거했으면 좋았으련만.
명현들이 육괴정에 모인 뜻은?
지난 4월 27일 찾았던 육괴정이다. 산수유축제를 시작하기 전에 찾아갂던 육괴정 앞에 서있는 보호수인 나무들은 가지들만 앙상하니 내보이고 있었다. 당시 이곳을 찾았던 것도 바로 육괴정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몇 달 전 보았던 육괴정과 지금의 육괴정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무성한 잎을 달고 있는 나무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육괴정은 처음에 초당으로 지은 정자였다고 한다. 조선조 중종 14년인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조광조를 중심으로 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세력이 크게 몰락하면서, 난을 피해 엄용순이 이곳 도립리로 낙향해 육괴정을 지었다고 전한다.
500여 년 전 엄용순이 육괴정을 지었을 때는 초가였으나, 그 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되었다. 육괴정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 규정 가은, 계산 오경, 퇴휴 임내신, 성두문, 남당 엄용순 등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기 위해 정자 앞에 못을 파고 주변에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한다.
세월이 흘러도 그 뜻은 느티나무들과 함께 남아
폭염이 33도를 웃도는 날 찾아간 육괴정. 이렇게 더운 날 누가 이곳을 찾아올 것인가? 이곳에는 연인길이라고 하는 산책로가 있지만 그곳을 걸어 볼 엄두도 나지 않는 찜통더위다. 매미소리마저 끊긴 육괴정을 돌아본다. 주변에 당대의 명현들이 심었다는 보호수들이 그나마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들. 엄용순은 기묘사화를 피해 선친의 묘가 있는 이곳 도립리로 낙향한 후, 이곳을 찾아 온 선비들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고 시를 짓기도 했단다. 이 느티나무들은 엄용순을 비롯한 6명의 선비가 우의를 다지기 위해 정자 주변에 각각 한 그루씩 심었는데, 그 중 세 그루가 아직도 나아 보호수로 지정이 되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이 느티나무들의 수령은 5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엄용순이 정자를 짓고 느티나무를 심었다고 전하는 시기와 같은 시기이다. 돌로 기단을 쌓은 위에 마련한 육괴정은 지금은 팔작지붕으로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사당형 정자이다. 가운에 두 칸은 누마루를 깔고 양편으로는 온돌방을 들였다.
한 겨울에도 이곳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꾸민 집이다. 계단을 오르면 대문 위에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엄용순의 손(孫)인 엄유윤의 충신정려가 걸려있다. 단출하니 지어진 육괴정, 그리고 수고가 15m나 되는 당대의 이곳에 머물었던 명현들이 심었다고 하는 느티나무. 세월은 흘렀어도 그들이 마음은 이렇게 남아있다.
느티나무 곁에 마련한 쉼터에서 잠시 다리를 쉰다. 무더위에 지쳐 울음소리도 내지 않던 매미 한 마리가 시원하게 소리를 낸다. 아마 500년 전 이곳에 모였던 여섯 분의 선인들도 이런 여름철을 즐기지 않았을까? 또 다른 육괴정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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