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무던히도 쏟아진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성모상을 찾아가기 위해 지리산을 오르는데,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비가 오는 날 답사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내친 걸음이니 어찌하랴. 마음 굳게 먹고 성모상을 안치해 놓은 곳으로 힘든 발길을 옮긴다.


수풀 속에 서 있는 중산리 초입의 장승들. 그 웃는 모습에서 잠시 피로를 잊는다. 그러나 비는 더 쏟아지고 갈 길이 바쁘니 계속 발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짙은 비안개가 계곡에서 피어오른다. 성모상을 모셔 놓은 절 입구에 들어서니 여기저기 정성들여 쌓아 놓은 돌탑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무조신이 된 마고할미


지리산 성모상은 현재 경남 민속문화재 제14호로 지정이 되어 있다. 지리산 성모상에 대한 설은 다양하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선도성모를 지리산의 산신으로 모셔놓았다거나, 고려 태조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지리산 산신으로 모셨다는 기록들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닿는 것은 천신의 딸 마고가 흰옷을 입고 인간세계로 내려와, 여덟 명의 딸을 낳아 무당으로 키워 팔도로 보냈다는 설화다.

 

 

마고할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서 있는 장승과(위) 커다란 바위에 올려놓은 마고할미상(붉은 원안)

 

마고할미는 산신이다. 마고할미에 대한 설화는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나타난다. 이러한 마고할미가 딸들을 팔도에 보내 무당을 만들었다. 그리고 팔도무당의 시조가 되었다. 지리산은 영산이다. 많은 무속인들은 지리산을 무속의 본향이라고 한다. 이는 마고할미가 무조신(巫祖神)이란 설화와 관련이 지어진다.


꿈속에 현몽을 하다 


지리산 천왕봉에 성모사를 지어놓고 성모상을 모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지리산 성모상이 1972년 머리와 몸체가 분리된 채 도난을 당했다. 성모상의 도난을 마음 아파한 중산리의 성기룡이라는 젊은이가 성모상을 찾고자, 천왕봉 한 토굴에 들어가 기도에 정진했단다.

 


6년째 되던 날 꿈속의 가르침에 따라, 진주 비봉산 과수원에서 성모상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 후 천왕사라는 암자를 짓고 성모상을 모셔놓았다. 매년 음력 3월 7일이 되면 천황제를 올린다. 비바람은 더욱 세차다. 성모상은 커다란 바위 윗부분을 파내고 그 안에 좌정을 시켰다.  앞으로는 전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안에서는 성모상을 촬영하기가 힘들다. 비가 쏟아지는데 밖으로 나가 여러 장을 찍었지만, 카메라도 사람도 온통 젖어버렸다. 주변에 늘어선 돌탑들이 비를 맞아 번들거린다. 비안개에 쌓인 지리산은 그야말로 비경이다.


기다려 보지만 좀처럼 비가 그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팔도무당의 시조가 되었다는 지리산 성모상. 마고성모는 그렇게 빗속에서도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 작은 석상 하나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연신 절을 하고 있다. 그 안에 내 작은 마음 하나 두고 지리산을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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