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흥사는 고려 태조 4년인 921에 창건되었다가, 조선시대에 폐사되어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천흥사지는 충남 천안시 성거읍 천흥리 일대를 말한다. 이곳에는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옮겨 보관이 되고 있는, 국보 제280호인 천흥사지 동종과 아울러 천흥사지에 남아있는 보물 제99호 당간지주와 보물 제354호인 천흥사지 오층석탑이 있다.

 

이 국보인 천흥사지 동종 위패형 명문에 양각이 되어있는 "聖居山天興寺鐘銘 統和二十八年庚戌二月日"이라는 문구로 보아, 고려 현종 원년인 1010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명문가운데 '통화(統和)는 중국 요의 연호로 고려 현종 원년에 해당한다. 이 당간지주와 오층석탑도 범종과 같은 해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 올해가 벌써 햇수로 100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년 지난 고려 초의 당간지주

 

당간지주란 절에서 각종 의식을 행할 때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당간(幢)'이라는 깃대를 세우는 지주를 말한다. 당이란 부처의 공덕을 표시하는 마귀를 내쫒는 깃발이다. 이 당을 깃대에 매달고 양편에 석물이나 철물로 조성된 지주를 세우게 되는데, 이를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보이는 당간지주보다, 상당히 정형화된 미를 나타내고 있다. 당간지주를 고이는 기단의 이층부에 새긴 안상 등이 우수하다. 더욱 두 개의 화강암 돌로 만들어 당간지주를 붙들고 있는, 기단의 이층은 안상의 조각만이 아니고, 상당히 섬세한 형태로 꾸며졌다. 전체적인 모습은 통일신라의 형태에서 약간 퇴화한 듯도 하지만, 일반적인 고려 때의 당간보다는 화려한 듯 하다.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양편의 지주석이 두자 정도 사이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당간을 세우는 네모난 돌이 있고, 중앙에는 당간이 고정될 수 있도록 둥근 홈을 파 놓았다. 당간지주는 2단의 기단 위에 올렸는데, 양편의 지주 돌은 3m 정도의 높이로 밑을 2단의 지주가 받쳐 힘을 받게 했다.

 

오층석탑과 동일한 안상을 새겨

 

보물 제99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마을로 들어가 개울을 건너 민가 앞에 서 있으며, 내를 건너 30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보물 제354호로 지정된 천흥사지 오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이 당간지주와 동일한 고려 현종 원년인 1010년에 세워졌다는 것은, 기단에 새긴 안상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의 안상이 동일하고, 그 조각 수법이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두 개의 석물이 동일인에 의해 동일한 시가에 조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신라시대의 탑 형태를 하고 있는 천흥사지 오층석탑은 이층 기단을 갖추고 그 위에 오층탑을 쌓았는데, 이 석탑 역시 기단에 안상을 조각하였다. 각 면에 7구씩 새겨져 있는 안상은 당간지주의 안상과 동일하다.

 

탑과 당간지주가 300m 이상 떨어져 있다는 것은 천흥사가 당시에 얼마나 큰 사찰이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고려 태조 왕건과도 관계가 있었다는 천흥사는, 태조 4년인 921년에 창건하여 현종 원년인 1010년에 대대적인 불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천년 세월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천년 세월을 지낸 화강암의 석조물치고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당간지주의 상단은 훼손이 되었지만, 뒤편에 있는 기둥 돌의 선 등은 그대로 나타나 있다. 또한 자주와 지주 사이에 있는 당간을 세우는 받침돌이나, 기단부의 이층 돌들은 상당히 보존이 잘 되어있다. 1010년에 조성을 하였으니, 올 해로 꼭 천년을 서 있었던 셈이다. 이러한 당간지주가 천흥사지에 집들이 들어차면서, 당간지주와 오층석탑이 마을의 집들 가까이 있어 안타깝다.

 

 

천흥사지가 조선시대에 폐사가 되었다고 하지만, 국보인 동종이나 오층석탑, 당간지주 등이 남아있어 역사적으로 소중한 사지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지의 문화재 주변에 있는 민가들이라도 정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문화재 주변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아, 또 다른 이차 훼손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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