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면 더 주되 저울에 못 미치지는 말아라.”

 

수원으로 다시 돌아온 지 햇수로 5년째이다. 5년이란 시간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을 다섯 손가락으로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지동시장 수원남문한우직판장의 표영섭 사장을 꼽는다. 표영섭 사장은 지동시장에서 한우직판장 외에도 또 하나의 정육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지동시장에서만 34년을 오직 단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왔다.

 

내가 표영섭 사장을 다섯 손가락 안에 꼽는 이유는 언제보아도 성실하고 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원으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우직판장에서 찌개거리 고기를 달라고 했더니 내가 달라고 한 양보다 두 배는 많은 양을 듬뿍 주는 것이었다. 받는 사람이 오히려 부담이 될 양이었다. 그 당시는 나에게만 그렇게 많은 양을 주는 것인가 해서 괜히 미안스러워했다.

 

표사장은 모든 사람에게 그렇게 듬뿍 고기를 달아줍니다. 그 양반 장사철학이죠. 항상 직원들에게 이야기 하는 것이 많이 달라고 하거나 더 달라고 하면 달라는 대로 드려라. 하지만 절대로 저울이 모자라게는 드리지 마라. 장량에 못 미치는 양을 드리면 안 된다.”

 

표영섭 사장을 안다는 한 상인이 전해주는 말이다. 그렇게 양심적으로 후하게 늘 양을 달아준다는 것이다. 그런 표영섭 사장의 마음이 오랜 시간동안 단골들이 이 집을 찾게 만든 가장 큰 원인이 되었나보다.

 

 

 

세월이 변해도 초심을 잃지 않아

 

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간 표영섭 사장은 서울서 정착하지 않고 28세가 되던 해 고모부가 축산업을 하고 있는 수원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그곳에서 일을 배우면서 스스로 성공을 하기 전까지는 친구들조차 만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는 것이다. 고모부 밑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지 10. 가게를 물려받은 날인 726일을 표영섭 사장은 자신의 생일이라고 한다.

 

표영섭 사장은 세상을 살면서 자신을 도와 준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것은 물질적인 도움이 아니라 정신적인 도움이다. 그런 도움이 있기에 자신이 오늘날의 위치에 설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운이 좋은 사내리고 표현을 한다. 살아가면서 긍정적인 사고를 갖고 살아가다보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표영섭 사장은 지동주민자치위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면서 지동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표영섭 사장이 위원장으로 책무를 다할 당시 지동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당시 벽화골목 조성에 불이 붙었던 것도, 노을빛 음악회를 열어 지동이 점차 사람살기 좋은 마을로 소문이 난 것도 모두 그의 노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은 정체성을 지키는 일

 

매년 10월 상달이 되면 표영섭 사장의 남문한우직판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고사를 지낸 후 지인들을 초청해 고기와 떡, 각종 음식을 한 상 잘 차려 대접을 한다. 10월 상달 고사를 지내기 전 5일전부터 육수를 끓이고 각종 음식을 장만하는 것은 모두 아내 김희경씨의 몫이다.

 

3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일을 감당해내는 아내에게 표영섭 사장은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많은 손님들을 일일이 챙겨내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 부창부수(夫唱婦隨)’라는 말이 꼭 맞는 말이라고 생각든다.

 

정월 보름이 되면 지동교에서는 풍물패가 한 바탕 지신밟기를 한 후 표영섭 사장이 운영하는 한우 직판장으로 몰려온다. 한복을 입고 풍물패를 맞이하는 모습에서 우리 전통의 아름다운 풍속을 그대로 지켜가고 있는 표사장의 마음 씀씀이를 읽을 수 있다. 한 마디로 옛것을 지키면서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지동을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주위사람들과 동화되어 더불어 세상을 살아가는 표영섭 사장. 그가 멋진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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