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여기저기를 답사를 다니다가 보면, 마을입구나 혹은 마을 안에 돌미륵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이 형태를 갖추지 않은 부정형의 돌일망정, 사람들은 미륵이라고 여겨 정성껏 치성을 드리고는 한다. 이렇듯 우리나라에는 웬만한 마을에는 미륵이라 불리는 돌부처가 거의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민중들 속에 깊이 파고든 신앙의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이유는 석가모니 부처 다음 세상을 약속한 미륵불이 현신하면,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모두 그 고통에서 구해준다는 약속 때문이다.

경기도 안성에서 이천 장호원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가다가 보면 이정표가 보인다. 경기도유형문화재 제36호인 기솔리 석불입상이 있다는 안내판이다. 길을 따라 안성시 삼죽면 기솔리 산33-1에 소재한 2기의 석불입상을 만난다.


장대석에 조각한 미륵불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열반한 뒤, 56억 7천만년이 지난 후 인간세계에 나타난다고 했다. 용화수 아래에서 3번을 설법하고 성불하여, 석가모니가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후천세계의 부처이다. 그래서인가 미륵석불의 경우에는 대개는 거대석불입상으로 조각을 하는 것이 예이다. 아마 후천세계가 도래할 때까지의 신앙대상물이기 때문인가 보다.

안성은 미륵불이 많은 곳이다. 이곳은 과거 궁예가 묵으면서 칠장사라는 절에서 무술을 배웠다고 전한다. 그래서인가 안성은 미륵불이 어느 곳보다도 많이 남아있다. 안성 인근에서 보이는 미륵불은 거대석불이다. 기다란 돌을 조각해 놓은 거대석불은 그만큼 인간들보다 월등히 도력이 높은 미륵임을 상징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남녀 한 쌍으로 조형이 된 기솔리 미륵입상

기솔리의 미륵입상은 그 높이가 5m 정도나 된다. 그러나 일반 석불입상과 같이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기다란 장대석에 얼굴부분만 조각을 하고, 목 밑으로는 선각에 가깝게 꾸며 놓았다. 2기의 석불입상 모두가 사각형의 얼굴에 가는 눈과 삼각형의 짧은 코, 두터운 입과 목까지 내려 온 귀 등을 뚜렷하게 조각하였다.

이 두기의 미륵입상은 모두 민머리인 소발을 하고, 그 위에 지혜의 상징이라는 육계가 튀어나와 있다. 머리 위에는 얇고 둥근 보개석을 얹어 놓았는데, 그 중앙에 구멍을 뚫어 육계에 끼워 갓처럼 표현을 해놓았다. 입은 굳게 다물었으나 엷은 미소를 띤 것처럼 보인다.



이 미륵입상은 법의를 앞가슴에서 둥글게 파내려, 발끝까지 U자 형 주름으로 표현하였다. 일반적으로 거대석불의 경우 이런 법의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마 이 지역의 특징적인 형태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가슴까지 올려 진 왼손과, 배위에 올려놓은 오른손은 약식화가 되어 있다. 장대석에 조각을 하다보니 사실적으로 표현을 하기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몸의 굴곡도 같은 형태로 사실적이지는 못하다. 마을에서는 동쪽으로 향한 불상 중 북쪽에 체구가 굵고 약간 큰 불상을 남 미륵불, 남쪽에 위치한 날씬한 불상을 여 미륵불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고통을 받고 싶지가 않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가보면 가진 자나 없는 자나 다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하기에 그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고, 그것이 미륵을 형상화 시킨 미륵입상으로 표현된 것이라고 본다. 이 일대의 미륵입상은 모두 거대석불로 조성이 되었는데, 그 또한 이 지방 미륵입상의 공통된 표현방법이다.



아마도 이렇게 거대석불입상을 세운 것은 미륵불이 하루 빨리 현신해, 중생의 고통을 잊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른다. 기솔리의 석불입상을 보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중생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일 것이라는 점이다. 바로 세상을 살면서 조금이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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