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모습 잃은 삼층석탑, 어디로 사라졌나?
2011. 12. 11.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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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해야 할 것들이/석탑
신라 말과 고려 초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삼층석탑 한 기.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지평리 지평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서면, 좌측 담장 앞에 자리하고 있다. 삼층석탑의 주변에는 작은 연못을 만들어, 나름대로 이 탑 주변의 조경에 애를 쓴 듯하다. 이 탑이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평의 한 야산에 있었던 것을, 1945년 현 위치로 옮겨 2001년에 복원을 하였다고 한다.
삼층석탑의 1층 몸돌에는 사면으로 여래상이 부조되어 있다. 여래상은 사면 모두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형태로 앉아있는 좌불상이다. 이 부조로 조각한 불상을 자세히 보면, 그 조각을 한 솜씨가 뛰어남을 알 수 있다. 몸돌 위에 높인 옥개석은 밑을 4단으로, 위로는 2단으로 층을 만들었다.
옥개석의 낙수면은 완만하면서도 날렵하게 표현을 하여, 이 삼층석탑이 제대로 형체가 있었다면 뛰어난 문화재였을 것으로 보인다. 남아있는 부분을 보아 이 석탑의 원 모습을 그려본다. 아마도 처음 이 석탑을 축조했을 때에는 상당히 뛰어난 석탑이란 생각이다. 석탑을 보면서, 이렇게 제대로 간수가 되지 않은 수많은 문화재들로 인해 마음이 씁쓸해 진다.
몸돌에 새겨진 사면불은 모두 머리 부분에 두광을 표현하였다. 육계가 뚜렷하고 나발의 머리에 목에는 삼도를 표현했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배 부분에는 모두 띠 매듭으로 처리를 하였다. 수인도 각각 달라 이 탑을 조성할 때, 어떤 염원을 갖고 조성된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탑이 서 있는 방위로 보아, 남쪽면의 여래상은 왼손은 내려 단전 부근에 두었고, 오른손은 가슴 위로 들어 올렸는데 손에 기물을 지녔다. 서쪽면의 여래상은 남쪽과 수인의 형태는 같지만 기물을 들지 않았다. 북쪽면의 여래상은 왼손은 단전에 두고 오른손은 무릎에 두고 있는데, 석가모니의 별인인 항마촉지인을 표현하고 있다. 항마촉지인이란 모든 악마를 굴복시켜 없앤다는 수인이다. 동쪽면의 여래상은 왼손과 오른손을 모두 들어 가슴께에 두고 있다. 이렇게 사면에 여래불을 조성한 형태나 옥개석의 받침의 모습 등으로 보아, 이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조성된 탑으로 보인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탑의 높이는 2m 70cm 정도이다. 하지만 이 탑에서 보이는 현재의 1층의 몸돌은 기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삼층석탑을 조성하면 기단을 이층으로 쌓아, 이층 기단부에 조각을 하는 것이 통일신라에서 고려 초의 석탑에서 보이는 형태이다. 그렇다면 이 탑에서 사라진 것은 3층의 몸돌 전체와 2개의 옥개석이 없어진 것이다. 우선 기단과 옥개석이 발견이 되었는데, 나머지 몸돌과 옥개석, 노반은 어디로 간 것일까?
수없이 일제에 의해 찬탈되고 사라진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 그 많은 문화재들이 제 자리로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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