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꿈 ‘야조’는 더 강한 국권을 상징해야
극적 요소보다 강한 장용외영의 군세 돋보여야
조선조를 통 털어 의궤 중 가장 정확하게 기재를 한 것은 <원행을묘정리의궤>였다. 정조는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에 참배를 하기 위해 도성을 떠나 화성 행궁에 머물면서 혜경궁 홍씨의 진찬연을 비롯하여, 원행길 묘소참배, 주조(낮에 하는 군사훈련), 야조(밤에 하는 군사훈련) 등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하였다
수원과 관련된 의궤로는 화성의 축성 과정을 그대로 기록한 <화성성역의궤> 외에도, 1795년 화성에서 치른 정조대왕의 모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의 기록을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 1800년에 승하한 정조대왕의 국장을 기록한 <정조국장도감의궤>, 사도세자의 봉분을 수원 화산으로 옮긴 내용이 기록된 <현륭원 원소도감의궤>와 정조대왕의 능침인 건릉을 조성한 내용을 기록한 <정조 건릉 산릉도감의궤>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원행을묘정리의궤>는 <화성성역의궤>와 함께 ‘의궤의 꽃’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기록물이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여러 형식의 그림들이 본문에 앞서 별도의 권수에 실려 있는데 의궤 안에 그려진 그림들은 종류의 다양함과 정확성과 우리나라 최초의 시도로 원근법과 회화적 우수함 등이 이 책의 자랑이다.
연거도에 야조 모습 생생하게 기록
정조는 8일간의 화성 행차 중 넷째 날인 윤 2월 12일에 오후와 야간에 화성에서 두 차례 대단위 군사훈련을 한다. 이 군사훈련의 모습은 ‘성조(城操)’와 ‘야조(夜操)’라고 하여, 김홍도의 그림 ‘서장대 성조도’와, <화성성역의궤> ‘연거도’ 등에 자세히 그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연거도에 보면 횃불을 든 군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으며, 성안의 집집마다 횃불을 밝힌 모습이다
정조대왕은 왜 두 차례에 걸쳐 화성에서 군사훈련을 강행하였을까? 정조는 왕권강화를 위해 무단히 노력한 군왕이었다. 그런 정조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화성에 행차를 한 것도, 군사 훈련을 두 차례 실시한 것도 알고 보면 그 안에 내재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즉 친위부대인 장용영 외영의 1만 명이 넘는 군사의 막강한 군세를 보여주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당시 화성의 장용영 군사들은 팔달문 일대에 주둔하는 팔달위에 3,218명, 행궁 일대인 신풍위에 1,651명, 화서문 일대의 병력인 화서위에 3,028명, 장안문 일대인 장안위에 병력이 3,098명, 창룡문 일대의 병력인 창룡위에 2,906명이었다. 그 전체 병력이 자그마치 13,899명이었다. 올 수원화성문화제에는 2일에 걸쳐 야조가 펼쳐졌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야조 첫날은 비가 내리고 둘째 날은 갑자기 날이 쌀쌀해 걱정을 했지만 몰려드는 인파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만큼 야조는 정조대왕의 강한 국권을 지향하는 꿈이었다.
연거도에 묘사한 야조 재현해야
올해 연무대 일원에서 실시된 야조는 그 어느 때보다 고증에 충실하게 재현되었다고 한다. 야조를 보는 내내 그래도 지금까지 보아오던 야조와는 다르게 군더더기 없는 짜임새에 군사들의 잘 훈련된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아직도 야조에 대한 연구는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할 듯하다.
축제이기 때문에 다양성과 보여주기 위한 화려함 등을 생각해 연출하는 것도 좋지만 ‘야조’만은 연거도에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야조를 그린 연거도 자체가 역사를 기록한 기록물이기 때문이다. 기록이란 재현 당시에 소중한 자료가 된다. 그것은 복원을 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하다.
야조의 모습을 그린 연거도에 보면 서장대에서 야간 군사훈련을 할 대 성벽을 에워싸고 있는 군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성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군사들을 묘사하였고 횃불은 성내 모든 집집마다 갈려있다. 즉 정조대왕은 야간 군사훈련을 하면서 군사만이 아니라 성안 백성들까지도 함께 동참하는 축제를 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야조는 그 어느 때보다 훌륭했다. 전체적인 구성 또한 깔끔하게 표현하였다. 어찌 보면 그 이상을 바라는 것이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야조는 정조대왕의 꿈인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군사훈련이다. 하기에 의궤에 담아 기록을 남긴 것이다. 역사는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다. 굳이 다양성과 화려함을 추구하기 보다는 좀 더 정확한 고증을 받아 연거도 그대로를 재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연거도의 야조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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