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 봄맞이 굿 하던 날

 

안택굿이란 음력 정월이나 음력 시월상달에 가내의 안과태평과 식솔들의 안녕을 위해 집안에서 벌이는 굿을 말한다. 예전 경기도 각처에서는 안택굿을 하는 것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택굿을 만나기 어렵다. 우선 사람들이 우리 전통 굿을 미신(迷神)이라고 치부한 일제의 사고나, 우상숭배라는 개신교의 교리 때문에 멀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굿의 역사는 깊다. 우리가 흔히 단군(檀君)이란 명칭은 단의 주인이니 곧 제사장을 일컬음이다. 당시에는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을 어떻게 드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부여의 영고(迎鼓), 예의 무천(舞天), 고구려의 동맹(東盟) 등은 모두 제천의식으로 하늘에 감사할 때 3일 밤낮을 주야로 먹고,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고 하니 가히 대축제였다고 보아야겠다.

 

 

삼국시대 초기까지 왕은 바로 무격(巫覡)이었다. 차차웅은 방언으로 무()를 일컫는 것이라고 신라 중기의 학자인 김대문은 밝혔다. 차차웅은 신라 제2대 임금인 남해왕의 딴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 경기도의 전통적인 안텍굿으로 진행된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명인의 맞이굿411(음력 37)팔달구 지동에서 열린 것이다.

 

<삼국지> 등에 보이는 기록을 보면 맞이굿이란 뜻은 마지(=)’의 뜻으로 제천의식을 <맞이굿>, <매굿>이라고도 했다. 즉 하늘에 감사하는 의식으로 봄, 가을 며칠 동안 제사를 드리고 모든 사람들이 즐겼다는 것이다. 이 맞이굿에서는 모두가 하나 되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손을 잡고 춤을 추었다고 하니 당시의 정경을 보면 참으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수백, 수천이 함께 어우러져 서로가 수족상응(手足相應)하면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은 굿이 단순한 초복축사(招福逐邪)를 하는 신앙적 요소가 아닌 전국적인 축제였던 점을 알 수 있다.

 

 

매년 음력 37일과 107일 두 차례 맞이굿 열어

 

굿은 전쟁에서도 쓰였다. 전장에서 굿을 쳤다는 말은 굿이 삼국시대만 해도 단순한 치병이나 점술의 차원이 아닌 하늘에 대한 기원의식이요, 힘을 돋우기 위한 축제를 상징하는 용어였음을 알아야겠다. 전쟁에서 말하는 굿을 친다.’라는 것은 아마 지금 우리가 신명나게 한판 벌이는 풍물(風物)을 말하는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굿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모든 전통예술이 굿에서 나왔다고 하지만 그것은 전문가적인 입장에서 말하는 것일 테고, 당시에는 가장 큰 행사로 이루어지던 제천의식 속에 모든 악가무희(樂歌舞戱)가 총 망라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정일치(祭政一致) 사회에서 제정분리(祭政分離)가 되면서 급격히 퇴락한 무격의 위치와 그들이 하는 행위인 굿이 너무도 많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이러한 굿이 지금은 그저 재수나 불려주고, 병이나 고쳐주는 그러한 행위쯤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강릉단오굿이나 일부 지역의 굿은 축제화를 하는데 성공한 예도 있지만 요즈음은 그 본질이 변한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 감사를 드리는 축제의 굿! 얼마나 대단한 축제였을까? 3일간을 주야로 모든 사람들이 모여 춤추고 노래하고 마셨다고 하니 정말 대단했을 것이다. 이 굿이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굿판은 열린사회다. 그래서 남녀노소 구별을 할 것 없이 아무나 굿판에 참여할 수 있다. 복을 불러주고, 농사가 잘되게 하고, 마을을 평안하게 하고, 바다에 나가면 고기가 잘 잡히고, 어디 그 뿐이랴 굿이 우리에게 준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크다고 하겠다. 지금과 같은 의미의 개인적인 치성이나 드리는 그런 굿과는 그 모양새부터가 다르다.

 

 

굿은 나눔의 축제

 

우리가 한일월드컵 때 전국적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치던 박수를 기억할 것이다. ‘대한민국~ 짝 짝 짝짝짝이 박수가 굿에서 사용하는 동살풀이라는 장단에서 따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굿은 우리를 신명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풍물판에서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것을 <판굿>이라고 한다. 굿판을 벌였다는 소리다. 그만큼 굿이란 단어는 우리 풍습에서 포괄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맞이굿을 진적굿이라고도 하는데 무격이 벌리는 굿판 중에 가장 화려하고 장엄하다. 경기안택굿 고성주 명인은 집안에서 4대째 전통적인 경기도 수원 일원에 전승되는 경기안택굿을 지켜가고 있는 강신무로 전국에서 굿 제일 잘하는 사람혹은 우리 전통 경기안택굿을 대물림 해 전승시키고 있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고성주 명인이 진적굿을 하는 날이 되면 수양부리가 아니라고 해도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지나던 행인들까지 배불리 먹여 보내는 것이 고성주 명인의 마음이다. 하기에 진적굿을 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집을 찾아온다. 한낮 잠시 내린 비로 모두가 집안으로 들어가 굿판에 취했다.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돌아가면서 한 보따리씩 제물을 싸들고 간다. 그 역시 고성주 명인의 마음이다.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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