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호주 일식당 사장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신명세습’으로 대를 이은 젊은 청년 오준범
“너는 도대체 박수냐 기자냐?”
“저분 기자예요”
22일 오전, 의정부시 시민로 122번길 15에서 열린 굿 현장에서 만난 오준범(남, 29세)이, 굿판에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던 나에게 던진 질문이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30년 가까운 세월을 굿판에서 수많은 굿을 보았고, 수많은 무격(巫覡=여무와 남무)들을 만났지만 이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다.
“어제 기자님 가신 다음에 준범이가 제게 말을 했어요. 그 분은 기자이신 것 같은데 웬만한 무당보다 우리 굿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다고 할머니가 일러주셨다고요.”
오준범의 어머니 이경희씨의 말이다. 이경희씨는 해동불교만물사를 1층에 운영하면서, 3층에는 전안(신을 모셔놓은 곳)을 차려놓고 있다.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무당이다. 5년 전에 자신의 몸주를 모신 신주단지만 모셔놓고 있다가, 3년 전에 내림을 받고 전안을 차렸다고 한다.
29세 잘생긴 청년에게 웬 날벼락이래?
오준범은 이경희씨의 큰 아들이다. 이경희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착한 아들들이 잘 되게 해달라고 수없이 비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큰 아들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일식집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일식집을 차려 5년이나 장사를 했다고 한다. 그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나오지 않았는데, 국제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한국에 나온 것이 화근이 됐다.
“아이들 아버지는 술로 세월을 보냈어요. 저는 아이들이 잘못 될까봐 늘 집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는 했죠. 그런데 작은 아이가 무엇이 자꾸 보인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걱정이 돼서 제가 신주단지를 모셨어요. 그렇게 하고나니 둘째는 괜찮아졌고, 지금은 해군장교로 복무를 하고 있어요.”
이경희씨는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고 한다. 아이들 집안에 만신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하기에 본인이 전안을 마련해 놓고도 간판조차 걸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그 또한 오준범이 신을 받아야 하기 때문은 아닌가 한다는 것.
“아이가 국제면허를 재발급하기 위해 올 3월에 한국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전안에 들어가더니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내가 소문나게 잘 불리던 5대 할머니’라고 하면서요. 그대까지 전 아이들 집안에 무당의 부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아이 아버지를 수소문해 알아보니, 정말 할머니 한 분이 유명한 만신이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신명세습(神明世襲)’이라는 것이 있다. 선대의 무당이 모시던 신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 신명세습은 우리나라 전역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30년 간 무속을 연구하고 굿판을 다니면서 그 동안 딱 한 집을 보았을 뿐이다. 선대가 모시고 있던 신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나면, 선대는 그 이상 무업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왕 신을 모셨으면 큰 만신이 돼야죠.
“사실은 준범이가 서울 일식집에서 일을 할 때도 무엇이 자꾸 보인다고 해서 호주로 보냈어요. 그리고 저도 언니가 한 분 계신데 어릴 적에 헤어져서 ‘이산가족찾기’에 출연한 적이 있거든요. 수소문해서 언니를 찾았는데 만신집 수양딸이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대물림을 해주지 않으려고 제가 신을 모신 것이고요.”
어머니로서는 답답한 노릇이다. 잘 키워서 성공을 했다고 생각한 큰 아들에게 갑자기 신이 들렸으니 얼마나 복장이 미어질 노릇인가? 그런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만신이 되는 길을 택한 이경희씨였다.
“엄마는 굿판에 설 수 없다. 준범이 네가 대신몽두리 옷 입고 한 거리 해라.”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이 한 말이다. 이미 아들에게 전안을 물려주었기 때문에, 어머니인 이경희씨는 더 이상 굿판에 설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명세습무들의 알려지지 않은 약속이다. 이날 굿에는 고성주 회장을 비롯해 안택굿보존회 이유진, 의정부에 거주하는 오호범(오준범과는 무관함) 등이 참여했다.
이제 29살의 청년 오준범. 호주에서 5년이나 일식집을 운영하면서 큰 외식사업가로 발돋움을 하고 있던 오준범에게 갑자기 내린 신들림 현상.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어머니 이경희씨. 운명치고 이렇게 가혹한 운명이 있을까?
“신의 세계는 아무도 몰라요 준범이가 집안 내력을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윗대 할머니가 만신이었던 것을 알겠어요. 그것이 다 운명이죠. 이왕 만신의 길로 접어들었으면 많은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 대만신이 되어야죠. 열심히 재주를 익혀서요. ‘영험은 신령이 주지만 재주는 배워야 한다.’고 했으니까요.”
고성주 회장은 젊은 오준범이 험난한 무속인의 길을 가야한다는 것이 내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제대로 재주를 배워 소문난 만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일산에 많은 친구들이 있지만(이경희씨는 의정부로 내려와 자리를 잡기 전에 일산에서 살았다) 1층 만물상도 내려오지 않고, 오직 3층 전안에만 붙어있다고 하는 오준범. 앞으로 그의 행보를 눈여겨보아야겠다. 대만신 한 사람의 출연을 예고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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