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 344-1에 가면 사적 제104호인 황산대첩비지가 있다. 솟을대문으로 마련한 삼문을 들어서면 중앙에 대첩비가 서 있다. 좌측으로는 사적비가 우측에는 파비각이 보인다. 이 사적지는 고려 말 우왕 6년인 1380년에 이성계가 왜구와 싸워 대승을 거둔 전적지이다. 금강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이성계를 대장군으로 한 고려군은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황산대첩에서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왜장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우두머리를 잃은 왜구를 고려군이 몰아쳐 완전히 섬멸하였다. 이곳에서 승리를 한 이성계는 한양으로 돌아가던 길에 전주 이목대에서 잔치를 베풀고, 나라를 일으킬 의중을 보였다.


파비각(破碑閣)에서 분노를 느끼다

일본으로서는 이 황산의 대첩비가 상당한 수모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보니 이 비를 놓아들 리가 없었던 것. 선조 때 개국시조인 이성계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대첩비를 1943년 11월, 조선총독부에서는 비문을 쪼고 비신을 파괴하였다. 방치가 되어있는 대첩비를 1977년에 수습을 하고 비각을 세웠다.

파괴된 비는 몇 조각이 나 있다. 그리고 비문에 새겨졌던 글은 모두 쪼아 알 수가 없게 만들어 버렸다. 전국의 수많은 문화재를 수탈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이렇게 소중한 역사의 기록을 망쳐놓은 일본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이런 패악을 저지르고서도 반성은커녕, 아직도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면서도 이 나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있다.



조각이 나버린 황산대첩비. 일제는 비를 이렇게 파괴했다.

울분은 극에 달하고

대첩비지를 나와 담을 끼고 돌아가니 전각이 보인다. 안에는 편편한 바위가 있고, 그 위는 축대를 쌓았다. 이 전각을 ‘어휘각’이라고 한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황산대첩에서 승리를 한 후, 다음에 본 석벽에 8원수 4종사관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황산대첩의 승리는 자신의 공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공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승전을 적은 비를 모두 쪼아내 무참하게 훼손을 했다.

이 어휘각의 안에 있는 바위벽의 아래편을 보면 글이 써졌을 것 같은 공간이 보인다. 그런데 그 부분이 심하게 훼손이 되어있다. 600여년이나 잘 보존이 되어있던 이 글씨를, 1945년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훼손을 시켰다는 것이다. 일제는 이 비전을 폭파하고, 철정으로 글씨를 모두 쪼아버렸다고 한다.

우리의 승전의 역사를 기록한 대첩비. 그것을 모두 훼손한 일제의 만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본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많은 문화재를 수탈하고도 돌려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일본. 그러한 나라에 대해 언제나 저자세를 취하고 있는 나라. 도대체 우리 선조들의 기개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오늘 황산대첩비지에서 본 파비와 훼파된 성지를 바라보면서, 이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를 수탈해 가고,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려 했던 책임을 물어야 할 때란 생각이다. 그리고 당당히 우리의 문화재를 돌려달라고 요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아픔을 당한 이 민족의 상처에 대한 보상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찾는 이 없는 황산대첩비지를 우리민족의 기개를 찾을 수 있는 교육장으로 활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이 또 다른 문화말살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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