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현내면 산학리 정수암이 심상치 않다

 

이 작은 암자가 서울 북한산 밑 커다란 집과 기운이 비슷하다고 해요. 신을 모신다는 사람이 한 이야기니까 그저 믿기로 했어요. 아니라도 손해 볼 것은 없잖아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산학277(산학리)에 소재한 인법당인 정수암. ‘금강산 정수암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마을 맨 위에 작은 암자를 만날 수가 있다. 암자를 들어서면 40여개의 장독이 먼저 반긴다. 벽면에 벽화로 커다란 연꽃을 그린 암자는 법당과 스님이 거처하는 요사가 한 건물에 들어앉은 토굴이다. 흔히 이렇게 소규모로 편리하게 지은 암자를 인법당이라고 부른다.

 

정수암(주지 진관스님)은 뒤편에 금강산 줄기가 뻗어있고 좌우로는 물이 흐른다. 전형적인 명당의 조건이라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자리에 앉은절이다. 법당 앞으로는 연못을 마련하였는데 옆으로 흐르는 맑은 물을 끌어들여 용의 입에서 물이 연못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이런 조합으로 인해 이 절이 기운이 완전하게 조화를 이루는 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작은 암자에 서린 기운 심상치 않아

 

절을 들어서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즐비하게 늘어선 장독들이다. 그 중에는 장이 담겨있는 듯 뚜껑 아래 천이 보인다. “속가 모친이 담근 장이라고 설명하는 진관스님은 이곳에 터를 잡고 오직 공부에만 전념하고 있다. 출가를 해서 수행을 하던 중 주변의 사람들에게서 아픔을 당하기도 했다는 스님은 이런저런 꼴을 보지 않고 이 좋은 곳에서 수행만 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한다.

 

조용하고 공기 좋고 물 맑은 곳이잖아요. 전혀 오염이 안된 곳입니다. 지척에 화진포가 자리하고 있어 한 바퀴 돌아오면 수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암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곳 가까이에 옛 산학산성 터가 있고요,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노송 한 그루가 서 있죠. 금강산 정기가 흘러내리는 곳이라 그런지 강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느껴요

 

 

 

진관스님은 그저 이 작은 암자에서 중생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한다. “스님이 중생들의 안녕을 위해 열심히 불공을 드리는 일이 몫이 아니냐며 웃으며 말하는 스님은 흡사 어느 절에서 만난 동자승 같은 모습이다. 그저 얼굴만 마주하고 앉아있어도 마음에 편해지는 상이다.

 

우리 절 옆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는 가재가 바글거려요. 이 냇물에 발을 담구면 한 여름에도 오장육부가 다 시원해지는 듯하고요. 가재가 많이 살고 있다는 것은 이 물이 청정수라는 것을 뜻하고요. 많은 생명이 살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생명을 살리는 땅이란 생각입니다. 거사님도 법당에 들어가 절 한 번 해보세요. 새로운 기운이 솟아날 것입니다.“

 

 

 

마을 어르신이 들려준 아기장수 이야기

 

정수암이 자리하고 있는 뒤편 산을 노인봉이라고 부른다. 이 산은 강한 바람과 심한 경사로 나무들이 살지 못하고 벌거숭이 인데다가 돌바위가 산을 덮어 그 모양이 마치 늙은 노인의 머리처럼 보인다해서 노인산(老人山)’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정수암 앞으로 난 소로를 따라가면 넓은 들판이 나온다. 이곳 정수암 일대가 모두 옛 절터라고 한다. 조선시대 초기에 불교 탄압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하는 절터에는 전설이 전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절터를 찾아 기도하며 소원성취 되기를 빌어 왔다고 하는데, 어느 해 이 마을에 사는 5대 독자인 노총각이 마흔살이 되도록 장가를 못가 백일동안 노인산과 절터를 찾아 기도를 한 끝에 어여쁜 아내를 만났다고 이야기가 전한다.

 

 

 

마침 정수암에는 이 마을에 산다는 신도 한 분이 와 계셨다. 박기선(, 72) 할머니는 이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 중에 아기장수 이야기가 있는데 한 번 들어보라고 한다.

 

이 정수암 건너 편 앞에 옛날에 절이 있었데요. 그곳을 마을에서는 절터라고 불러요. 그 절에서 자식이 없는 한 부부가 열심히 치성을 드려 아이를 하나 점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이를 보니 양편 어깨 밑에 날개가 있었데요, 나중에 크면 큰 인물이 될 아이죠. 그런데 그 때는 그런 장수가 나면 바로 죽여 버렸다고 해요. 그래서 걱정을 하다가 아기장수의 아버지가 날개를 인두로 지져버렸다고 하네요. 아이가 뜨거우나 당연히 온 동네가 떠날 듯 울어 젖혔겠죠. 그때 화진포 바닷물 속에서 천마가 한 마리 튀어나오더니 아기를 태우고 하늘로 승천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그 절이 퇴락해 버렸단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한 30여 년 전에 한 스님이 이곳이 들어와 토굴을 짓고 기도생활을 했는데 이상하게 오래들 있지 못하고 자주 떠났다는 것이다. 마을에서는 이 절이 있는 인근의 지기가 상당히 세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이 땅에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을 한다.

 

 

이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하렵니다

 

주지 진관스님과의 인연으로 인해 이곳을 찾은 것이 몇 번째이다. 18일 찾아간 정수암은 한 겨울이면 창문 위까지 눈이 쌓여 바깥출입도 자유롭지 못한 곳이지만 스님은 이곳이 최고라고 한다. 한 마디로 기운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이다. 하룻밤을 이 작은 암자에서 잠을 청했다. 한 밤중 바람소리가 잠을 설치게 만든다. 6월 중순인데도 이렇게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을 보면 이 절터에 또 다른 기운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아침에 일어나 경내를 한 바퀴 돌다보니 인법당 한편에 바위하나가 덩그마니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바위 평평한 면에 마애불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착각이다. 왜 그런 착각을 하게 된 것일까? 진관스님께 그 바위에 마애불을 조성하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절을 찾는 사람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마애불은 바위에 부조나 선각으로 조형을 하는 부처님을 말한다. 이 강원도 금강산 줄기 아래 자리하고 있는 정수암에 마애불을 조성한다면 그 기운은 어느 정도일까? 천년세월을 지켜낸다는 마애불이 아닌가? 아마도 천년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런 염원을 갖고 마애불을 조성했다면 앞으로 천년 이상 그 기운이 전해지지 않을까? 나도 이참에 정수암 마애불 조성불사에 동참을 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을 한다.

 

혹 누가 알 것인가? 기운이 남다른 금강산 정수암에 마애불을 조성하고 겨드랑이에 날개를 단 장수한 명이 집안에 태어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하며 혼자 허공을 바라보면 웃는다. 이 작은 암자가 사람에게 주는 즐거움이 이리 큰 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그렇다면 이곳이 바로 피안이 아니겠는가? 세상에서 만난 피안이라는 것이 결국 내 마음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오늘 이 작은 암자에서 또 하나를 깨우치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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