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시 동대동 809-1에 소재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9대천한내돌다리’. 한내돌다리는 조선시대 남포, 비인, 서천지역의 사람들이 보령현을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조성되었던 12간 돌다리이다. 동국여지지, 여지도서, 신안읍지 등의 기록에는 고려 원종 15년인 1274년에 축조된, 전라도 함평의 고막천석교와 같은 비슷한 유형으로 조성되었다 전하고 있다.

 

이 돌다리는 사람들과 우마차등이 통행하였고, 일제초기까지 주 교통로로 이용했다고 한다. 규모는 폭 2.38m, 길이 50m 정도였다고 하니 적은 다리는 아니다. 다리를 조성한 석재는 거대한 화강암으로 인근 왕대산의 돌과 같아, 채석 후에 뗏목을 이용하여 이곳으로 운반 한 것으로 짐작된다. 1970년대 초까지도 20m 정도가 남아 있다가 붕괴되었다.

 

 

우마차 통행에 적당한 돌다리

 

대천한내다리는 대천천 하류에 있었던 다리로, 예전에는 남포와 보령을 이어주는 중요한 교통로였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물살에 쓸려 떠내려가거나, 하천 제방공사를 하면서 파손되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1978년 수습하여 옮겨 두었다가, 1992년에 대천천 강변에 옮겨 일부만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다리의 몸체를 받치는 기둥은 거칠게 손질한 23개의 돌을 쌓아 이루게 하여, 모두 6개의 기둥이 불규칙하게 배치되어 있다. 그 위로 넓적한 판돌인 시렁돌을 걸쳐서 다리를 완성하였는데, 원래는 12칸 돌다리라 하나 적어도 22칸은 되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리의 높이는 낮은 편이어서 바닷물이 밀려오거나 홍수가 질 때면 물에 잠기고, 보통 때에도 가끔 잠기었다고 한다.

 

 

다리의 구조는 1.5~2m 정도의 지대석을 묻고, 그 위에 다듬은 받침돌 3단을 횡으로 놓았다. 이것으로 다리기둥과 멍에를 대신 한 다음, 그 위에 길이 3~4.5m, 70~90cm, 두께 30~40cm의 시렁돌 3개를 얹어 다리바닥을 구성하였다. 바닥이 3개의 시렁돌로 이루어져 우마차 통행에 적당하게 설계된 다리이다.

 

한내돌다리를 밟아보다

 

지난 6일 찾아간 보령시 문화재 답사. ‘한내돌다리는 그동안 몇 번이나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전국에 산재한 많은 돌다리들을 돌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 때문이다. 돌다리마다 갖가지 사연도 많지만, 돌다리들의 모습들이 하나 같이 독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개 우리나라의 돌다리들이 무지개모양의 아치 모형으로 구성을 하고 있는데 비해, 한내돌다리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기 때문에 꼭 들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빗방울이 간간히 떨어지지만, 그것이 대수랴. 대천천 한 옆에 복원을 해 놓은 한내돌다리. 주변 정리를 해놓고 다리 밑으로는 수초가 자라났다. 물의 깊이를 보니 옆으로 흐르는 대천천과 비슷한 수위를 갖고 있어, 대천천과 연결이 된 것은 아닌지. 돌다리를 여기저기 돌아보다가 다리 위로 올라갔다.

 

다리 위에 얹은 시렁돌 틈 사이로 물이 보인다. 다리 위를 걸어본다. 예전 이 다리를 건너 한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 것일까? 아마도 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 짚신 두 켤레 덜렁거리며 한양으로 올라간 사람들. 소고삐를 잡고 불어난 물에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던 사람들. 그런 많은 것들을 그려본다.

 

 

그렇게 대천한내다리에 빠져있는데, 빗방울이 후드득거리며 떨어진다. 구경도 좋지만 카메라가 젖으면 그보다 큰 낭패는 없다. 그동안 많은 카메라를 망가트리면서 다닌 문화재답사이다. 비록 몸이야 젖어도 카메라만은 젖지 말아야 한다. 좀 더 자세히 돌아보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컸지만, 우선은 비를 피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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