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오는 사람들이 도대체 걸을 줄을 몰라요. 차를 타고 절 경내까지 들어와 잠깐 부처님 앞에 머리를 조아려 예를 올린다고 해서 서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세상에 불행한 사람 하나도 없어야죠. 절 뿐만이 아니라 요즈음 사람들 종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예요. 간구란 것은 볼 수가 없어요.”

 

일전에 어느 절에서 만난 한 스님의 말씀이다. 예전에 어머니들이나 할머니들이 머리에 무거운 짐을 이고 먼 길을 걸어서 절을 찾았고, 그런 정성과 간절함이 있었기에 자손들이 잘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차가 없으면 종교생활까지도 제대로 못하는 팔푼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수원에서 가장 큰 절이라는 봉녕사. 봉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로 광교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고려 희종 4년인 1208년에 원각국사가 창건하여 성창사라 하였고, 조선조 성종 1년인 1469년 혜각국사가 중수하고 봉녕사라 하였다.

 

봉녕사는 1971년 묘엄스님이 주석한 이후, 40여 년 동안 비구니 승가교육의 요람으로 발전을 거듭하였다. 1974년도 봉녕사 강원개원(승가대학), 19996월 세계 최초로 비구니 율원인 금강율원(금강율학승가대학원)을 개원하여, 승가교육과 율학연찬을 통한 수행도량으로서 사격을 갖추고 대가람을 이룩하였다.

 

 

 

 

봉녕사 가는 길이 즐겁다

 

봉녕사를 가는 길은 두 곳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경기경찰청을 지나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일주문을 지나서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차량을 이용하여 봉녕사를 이용하는 길이다. 또 한 곳의 길은 월드컵 경기장 방면에서 봉녕사로 오르는 길이다. 난 가급적이면 이 길을 이용하길 당부하고 싶다.

 

월드컵 경기장의 남측입구는 아름다운 단풍이 사람들을 반긴다. 봄이 되면 진달래와 벚꽃이 묘하게 어우러지는 길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더 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꽃길을 천천히 걷다보면 세상 시름을 다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길이다.

 

차도를 건너 봉녕사 오르막길로 들어서면 차도를 반으로 갈라놓고 한편으로 사람들이 자유롭게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잠시 걸으면 숲길로 들어서는 봉녕사 길이 나온다. 조금은 오르막길이라고 해도 그렇게 가파른 길이 아니다. 더욱 그 거리 또한 길지가 않다. 아이들과 함께 헤도 그저 손을 잡고 걸을 만한 길이다.

 

 

 

 

숲속 쉼터가 아름다운 곳

 

조금 오르면 숲 속에 철가시문이 하나 나온다. 일몰 이후에는 스님들의 수행공간이라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푯말이 붙어있다. 그곳을 지나면 돌로 바닥을 조성한 봉녕사 경내가 된다. 가을은 이곳에 소리 없이 찾아왔다가 그렇게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인지. 가을 풍광이 그윽한 곳에서는 사시예불을 드리는지 청아한 염불소리가 경내에 가득하다.

 

붉게 물든 봉녕사 경내는 피안이다. ‘피안이란 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를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이 곳에서 많은 비구니스님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수행을 한 것일까? 세계사찰음식문화축제를 열기도 하는 봉녕사는 이제 사찰음식에 관해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대적광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수령 800년이 지난 보호수인 향나무. 아마 그 숱한 세월을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이렇게 실하게 자란 것은 아닌지. 아니면 맑은 마음으로 매일 예불을 드리고 있는 스님들의 염불소리에 병 없이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나무 자체가 향나무인 것을 보면, 이 나무도 오랜 세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면서 사람들에게 좋은 기운을 주었을 것만 같다.

 

 

 

 

용화각 앞에 머리를 조아리다

 

용화각 안에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보이는 석조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석조삼존불은 대웅보전 뒤편 언덕에 건물을 지으려고 터를 닦던 도중에 출토되었다고 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석조삼존불상은, 본존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입상을 배치하고 있다.

 

불상과 연화대좌는 각각 하나의 석재로 구성이 되었는데, 모래가 많이 섞인 화강암으로 조성을 하였다. 삼존불 모두가 뚜렷한 이목구비가 보이지 않는데, 이는 오랜 시간 땅 속에 파묻혀 마모가 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 부처님들은 어떤 연유로 그 오랜 세월을 땅 속에 있었던 것일까?

 

 

 

 

용화각에서도 비구니스님의 예불이 이어진다. 차마 세파에 찌든 몸을 들고 용화각 안으로 들어서기가 죄스럽다. 밖에서 머리를 숙여 잠시 세상과 인연을 끊어본다. 오래 전에 만난 스님 말마따나 걸어서 이곳을 올랐다. 그런 사연이 있어 조금은 세파에서 찌든 때가 가셔지지는 않았을까?

 

까치 한 마리가 향나무 가지를 온통 흔들어 놓고 날아간다. 저 까치도 무슨 사연이 있으려나? 아님 속세에서 매일을 술도 보낸 처사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자리를 피한 것일까? 대적광정 위로 구름 한 덩이 절로 흘러간다. 세상에 아무 미련도 없다는 듯. 진정 이곳이 피안일까? 오늘 오른 봉녕사 오름길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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