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고 한다. 아차 하는 순간에 죽어 불귀의 객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다. 우리는 흔히 죽으면 염라대왕에게로 가서 심판을 받고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사람이 죽으면 천도제라고 하여서 일주일에 한번 씩 염라전에 나아가서 심판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 다음에는 죽은 후 백일과 1, 3년에 한 번씩 끌려가서 도합 10번의 심판을 받고 난 후 인도환생을 하거나 축생계로 들어가 짐승으로 태어나거나 한다니 듣기만 하여도 오싹하다.

 

그래서 우리 풍습에서는 49제와 1년 뒤에 지내는 소상, 3년 뒤에는 대상이라고 하여 정성스럽게 음식을 해 놓고 자손들이 모여 조상의 극락왕생을 빌고는 했던 것이다. 또한 시묘살이라고 하여 부모가 죽으면 3년 동안 묘 앞에 움막을 짓고 아침, 저녁으로 공양을 올리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것도 다 이런 풍속 때문이다. 요즈음에야 이런 유풍도 다 사라지고 그저 형식에 그치지만 기실 자손들이 조상을 잘 섬긴다는 것은 효행의 근본이기에 사라지면 안 될 우리네 풍습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염라대왕에게로 간다고 하지만 저승에는 10대왕이 있어 태어난 해에 맺힌 대왕에게로 배정이 된다고 한다. 저승 10대왕은 각자 그 사람이 어느 해에 출생을 했는가를 따라 망자(亡者)를 맡게 되는데 십 천간(天干)(), (), (), (), (), (), (), (),(), ()와 십이 지지(地支)(), (), (), (), (), (), (), (),(), (), (), ()를 돌아가면서 맞춘 육십간지에 배정한다. 예를 들어 제1전에 진광대왕(秦光大王)은 경오, 임신, 신미, 게유, 갑술, 을해생을 담당한다. 3전에 송제대왕(宋帝大王)은 임오, 계미, 갑신, 을유, 병술, 정해생을 담당한다. 9전에 도시대왕(都市大王)은 임자, 계축, 갑인, 을묘, 병진, 정미생을 맡는다. 이와 같이 저승 10대왕이 맡는 망자들은 그 태어난 해에 따라 다르고, 그 대왕들이 관장하고 있는 지옥도 다 다르다. 하지만 지옥을 가는 것은 지은 죄질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각 대왕들이 맡고 있는 지옥과 어떤 죄를 지으면 어디로 가는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1전의 진광대왕(秦廣大王)은 도산지옥(刀山地獄)을 맡는다. 죽은 후 7일이 되는 날 첫 번째 심판을 맡고 있으며, 도산지옥은 깊은 물에 다리를 놓은 공적도 없고, 배고픈 자에게 밥을 준 공덕도 없는 죄인이 들어가는데 칼을 심어놓은 험한 산에서 죄인들이 칼에 찔리어 고통을 당하게 하고 관속의 시신에게는 쇠못을 박는다고 한다.

 

2전의 초강대왕(初江大王)은 화탕지옥(火蕩地玉)을 담당한다. 죽은 지 14일 만에 열리는 두 번째 심판을 관장한다. 화탕지옥, 혹은 확탕지옥(鑊湯地獄)은 목마른 사람에게 물을 주거나,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준 공덕이 없는 자가 가는 곳으로, 뜨거운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펄펄 끓는 무쇠 솥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고통을 받는다.

 

3전의 송제대왕(宋帝大王)은 한빙지옥(寒氷地獄)을 관장한다. 망자가 된지 21일째의 세 번째 심판을 맡는다. 한빙지옥은 부모에게 효도를 하지 않고, 가정에 화목하지 못하며 동네 어른을 존경하지 않은 죄인이 가는 지옥인데 백년이고 천년이고 얼음 속에 갇혀 지내야 한다.

 

4전의 오관대왕(五官大王)은 검수지옥(劍樹地獄)에서 죄인들을 다스린다. 죽은 지 28일 만에 열리는 네 번째 심판을 주관한다. 검수지옥은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해내지 않고 그냥 둔 사람, 길 막힌 곳을 뚫어준 공덕을 못 쌓은 사람들이 기는 지옥으로, 숲이 다 시퍼런 칼날로 우거져 있어서 걸어갈 때마다 살이 한 점씩 떨어지는 고통을 받는 지옥이다.

 

5전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은 발설지옥(拔舌地獄)을 맡는다. 죽은 지 35일이 되는 날의 다섯 번째 심판을 주관한다. 발설지옥은 심사를 하여 부모님과 조상님의 말에 불손하게 대꾸를 한 자, 입으로 일가 화목을 깨뜨린 자, 동네 어른을 박대한 자는 이곳으로 간다. 이곳은 죄인을 형틀에 매달고 집게로 입에서 혀를 길게 뽑아 그 위에서 소가 밭을 갈듯 쟁기를 이끄니 처참한 고통을 겪는다. 입으로 짓는 죄악이 얼마나 크고 무서운지를 일깨워 주는 지옥이다.

 

6전의 변성대왕(變成大王)은 독사지옥(毒蛇地獄)을 관장한다. 사망한지 42일 되는 날의 여섯 번째의 심판을 맡는다. 독사지옥은 살인, 역적, 강도, 고문, 도둑질을 한 자가 가는 곳으로, 독사들이 우글거리며 온몸을 감아 물어뜯는 고통을 감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지옥은 모두 죽은 망자가 가는 곳으로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 곳에는 죽음이란 것이 없기에 더욱 조심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7전의 태산대왕(太山大王)의 거해지옥(鉅骸地獄)을 맡으며, 망자가 49일째의 심판을 관장한다. 여기까지 오면 사십구재(四十九齋)가 끝나는 셈이다. 거해지옥은 돈을 듬뿍 받고도 나쁜 음식을 대접한 자, 쌀을 팔아도 되를 속여 적게 준 자가 가는 곳으로, 죄인을 형틀에 가두고 큰 톱과 작은 톱으로 열두 가지 뼈를 썰면서 산채로 토막토막 분해한다. 태산대왕이 관장하는 곳을 좌마지옥(剉磨地獄)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은 망자를 커다란 맷돌 속에 집어넣고 갈아버린다고 하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8전의 평등대왕(平等大王)은 철상지옥(鐵床地獄)의 대왕이다. 죽은 지 백일이 되는 날 여덟 번째의 심판을 맡는다. 철상지옥은 남의 등을 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물로 떵떵거리던 죄인을 쇠절구에서 찧은 뒤, 쇠못을 빼곡하게 박은 침상 위에 묶여서 눕혀 놓고 죄를 다스린다. 혹은 철상 위에 올려놓고 몸을 양편에서 잡아당겨 늘이는 고통을 주기도 한다.

 

9전에는 도시대왕(都市大王)이 풍도지옥(風途地獄)을 관장한다. 망자가 된 후 1년이 되는 때에 도시대왕에게 가서 아홉 번째 심판을 받아야 한다. 풍도지옥은 자기 남편을 놔두고 남의 남편과 정분을 통한 여자와, 자기 아내를 놔두고 남의 아내를 넘본 남자가 가는 곳이다. 이곳에는 살을 에이는 바람이 불어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고 얼어붙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 이곳에 가면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벗긴다고 한다.

 

10전은 오도전륜대왕(五道轉輪大王)이 흑암지옥(黑闇地獄)을 담당한다. 망자가 된지 3년째에 마지막 심판을 받고 생전의 업()에 따라 육도윤회의 길로 나서게 된다. 흑암지옥은 인간세상에서 남녀 구별을 못하고 자식하나 보지 못한 죄인을 벌주는데, 죄인은 낮도 없고 밤도 없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흑암 속에서 영원히 있어야 하는 벌을 받는다고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이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더위를 가시에 한다. 우리는 잘살고 못사는 것을 물질의 많고 적음에 둔다. 하지만 그것보다 어리석음은 없다고 했다. 잘산다는 것은 결코 물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마음 씀씀이에서 온다는 사실을 주지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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