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당항성 인근 신흥사 일대가 유력하다

 

신흥사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산 72-15에 소재한다. 이 신흥사는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사적 제 217호인 구봉산 당항성을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신흥사는 당항성 안에 있었으나 지금은 그 절은 사라지고, 한영석 거사의 시주로 1934년 덕인 스님이 창건하였다.

 

신흥사에는 큰법당을 바라보고 좌측에 석불입상이 유리상자 안에 서 있다. 이 석불은 당항성 내에 있던 옛 절터에서 찾은 석불이다. 옛 절터에 파불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가 1999년에 이 석불입상을 찾아냈다는 것. 이 약사여래불은 옛 절터에서 좀 아래편 작은 계곡 둔덕에 반듯이 누워있었다고 한다.

 

 

 

이 약사여래불은 앞가슴에 약병을 들고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가 되었으면서도 비교적 신체부위는 깨끗한 편이다. 야외에 모셔진 이 약사여래불은 2000416일에 모신지 일 년 만에 점안식을 가졌다고 한다.

 

이 약사여래입상은 오른 손은 허리춤에 부쳐 약병을 들고 있으며, 왼손은 가슴께로 끌어올리고 있다. 법의는 허리 아래에서 양편으로 갈라져 U자형으로 주름을 잡고 있다. 무릎 아래는 통으로 내리닫는 모습이다. 두상이 사라져 아쉬움은 있지만, 신체의 부위로만 보아도 당당한 체격을 가진 약사여래입상임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의 교화공원이 있는 신흥사

 

신흥사의 자랑은 요사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부처님 교화공원이다. 이곳은 부처님이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시켜 불도에 귀의시키는 모습을 조각으로 조성하였다. 모든 조각물에는 센서가 부착이 되 인기척이 나면 설명을 하도록 하였다. 산길을 따라 오른편으로 접어들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조각상군이 바로 1차 경전 결집이다.

 

경전결집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그해 6월에 라자그리하의 칠엽굴에서 아자타샤트루왕의 보호 아래 마하캬사파를 중심으로 500 아라한이 모여 첫 번 째 경전결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경전 결집을 팔만대장경이 세상에 나타난 시초로 본다.

 

경전결집을 지나면 세상에서 자식을 가장 사랑한 부모인 말맄타 왕비와 바사잌왕의 석조물이 자리한다. 팔만대장경에 여성의 이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리카왕비는 코살라국 바사잌왕의 왕비로 왕의 총애에도 항상 겸손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자비심을 베풀었으며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려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산의 정상 쪽으로 걷다가 보면 승만공주와 승만경, 살인마 앙굴리마라 제도, 기원정사와 수닷타장자, 빔비사라왕의 귀의와 죽림정사, 바보 쥬디판타가 제도, 육방예경, 어린 라훌라 교화, 사리불 목건련 존자, 가섭 3형제 제도, 청소년 아사교화, 그리고 맨 정상부분에는 부처님께서 최초로 녹야원에서 5비구에게 설법을 하신 초전법륜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그곳을 지나 반대편으로 길을 잡아 신흥사로 내려오는 길에는 팔상성도와 부모은중경이 석판에 조각되어 있다. 모두 화강암 석재를 이용해 조성한 부처님 교화공원은 또 하나의 걸작으로 많은 불자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원효스님이 해골의 물을 마신 곳(?)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원효스님이 해골에 있는 물을 마신 곳은 여기저기 많이 있다. 그러나 어느 곳 하나 정확한 지역을 알기는 어렵다. 일부는 중국이라고 하지만, 기록에는 성의 밑에 있는 무덤이었다고 한다. 아침에 깨어나고 보니 무덤 안에 있는 해골에 모인 물을 마셨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면 그만큼 큰 봉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효가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 옛 산성 터 밑 무덤에서 하루를 묵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면, 이 산성은 중국으로 가는 길목인 현 구봉산 당항성 밑이 유력하다. 지금은 신흥사 뒤편으로 오르면 그 뒤편으로는 지금은 육지가 되었지만 원래는 바닷가였기 때문이다. 현 신흥사는 주변이 산으로 쌓여있고, 그 가운데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주변을 몇 차례나 돌아보았지만 원효스님 해골에 있는 물을 마셨다는 곳이 이곳이 가장 유력하다. 현 신흥사 일대를 그렇게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곳은 지역적으로 백제의 봉분이 있을 수 있는 지역이라는 곳. 중국으로 건너기 전에 성 밑에서 잤다고 하면 당시 중국과의 가장 가까운 곳의 성인 당항성이 유력하다는 점 등이다.

 

앞으로 이곳에 대한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이곳 화성 서신면의 당항성 아래 현 신흥사 일대가 원효가 해골에 물을 마신 곳으로 가장 유력한 곳이란 생각이다. 신흥사를 한 바퀴 돌아보면서 이곳 옛 절터에서 발견이 되었다는 약사여래불, 그리고 원효스님과 당항성 등의 연관이 지어지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 앞으로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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