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는다는 것이 늘 그저 그렇다. 절집이라는 곳이 언제나 다른 음식을 만들고 있지 않으니, 한 달 내내 특별한 반찬이라고는 없다. 그저 몇 가지 반찬이 다이지만, 모두 채소뿐이다. 그렇게 날마다 먹다가 보면 가끔은 이런저런 것들이 그리워지기도 하지만, 그런 것마져 허용이 안되는 곳이다. 

절에서는 '오신채'라는 것을 금기시한다. 오신채는 불교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 채소를 일컫는다. 마늘, 파, 부추, 달래, 홍거의 다섯가지로, 대부분 자극이 강하고 남새가 많은 채소들이다. '율장(律藏)'에 따르면 이러한 음식을 공양하면 입 주위에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하여 금기시를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그 속사정은 다르다. 이 음식들은 식욕을 돋우고 정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는 강장제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재료가 있으니 수제비나 뜰까?

마침 내일 자장면 봉사가 있어, 이것저것 분주하게 준비를 하고 있다. 밀가루를 반죽하고, 감자도 까서 깨끗히 손질해 놓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있으니 간만 맞추면 수제비 만드는 것이야 금방 될 것만 같다. 우선은 기선을 잘 제압해야 한다. 내가 수제비를 잘하니 점심에는 수제비를 해 먹겠다고 미리 발표를 해버렸다.

자장면에 들어가는 표고도 준비하고, 간장과 소금, 그리고 주변 식당에서 미안하게도 파 한 뿌리를 얻어왔다. 마늘 몇 조각하고. 이놈들이 수제비 국물을 내는데 들어간 것은 아무도 모른다. 

먼저 감자를 넣고 물을 끓이다가 간을 맞추었다. 다시마를 통채로 넣었다가 건져낸 후, 표고와 마늘, 파를 숭숭 썰어 넣고나서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흠.... 냄새가 그럴 듯하다.


자장면에 들어갈 감자와 표고를 조금 실례했다.

그리고 끓는 물에 밀가루 반죽을 엷게 때내어 집어 넣는다. 국물 맛이 그럴 듯하다. 내가 있는 전라북도에서는 수제비를 아주 엷게 땐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먹던 서울지방에서는, 밀가루를 조금 두텁게 때어 넣는다. 그래야 수제비 먹는 맛이 난다.

팔팔 끓는 물에 집어넣은 수제비들이 아우성이다. 이런 조금만 참으면 먹어 줄 수 있는데, 얼른 먹어달라니. 대개는 수제비를 땔 때 손에 참기름을 바르고 한다. 달라붙지도 않고, 수제비가 쫀득하기 때문이다. 그런에 이런 과정을 수제비를 만들고 있으니, 일일이 찍을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아이폰으로 대층 흔들면서 찍었다.



 

사진이 너무 엉망이다. 맛이 기가막힌 얼렁뚱땅 수제비가 참 맛 없게 보인다. 그렇게 끓인 것을 한 대접씩 맛을 보았다. 정말로 수제비 다운 수제비를 먹는다고들 이야기를 한다. 이러면 안되는데.... 앞으로 자주 해 달라시면 골치 아프다.

그나저나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조금 아쉬운 듯 한데, 커다란 냄비에 끓인 수제비가 남지를 않았단다. 이런 낭패가 있나. 정작 떠 놓은 수제비를 찍어야 하는데, 먹기가 바빠 다 먹어버렸다. 급히 공양간으로 달려갔더니, 누군가 먹으려고 조금 떠 놓은 것이 보인다. "잠깐"을 외치고 얼른 달려가 찍었다.

우리서방도 혼자 살게 할까?

 

 

이상하게 수제비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그래서 가끔 혼자 수제비를 해놓고, 몇 그릇씩 먹은 적도 있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수제비 잘 끓이는 남자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 수제비를 하는 날이면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 그릇씩 먹어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남자분이 이렇게 요리를 할 줄 아세요?"
"혼자 살아보세요. 절로 느는 것이 요리밖에는 없으니"
"그럼 우리서방도 쫒아내서 혼자 살게 할까보네. 그럼 요리 잘 할 수 있을까?"


그 말에 죽는 줄 알았다. 요리좀 잘하게 한다고 서방을 내 쫓다니.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이다. 오늘 낮에 땀을 흘리며 수제비를 끓이다가 보니,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난다. 얼렁뚱땅 수제비 한 그릇이 주는 옛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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