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구 수원천로 255번길 6에 소재한 수원시 향토유적 제2호인 영동시장 거북산당에서 30일 오전부터 거북산당 도당굿이 열렸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제 제98호인 경기도당굿보존회 회원들이 주관한 이날의 도당굿은 거북산당 앞 도로에서 오후 5시 경까지 연이어 각 거리가 이어졌다.

 

거북산당은 처음에는 현 구천동의 마을 제당으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던 곳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후에는 영동시장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도당으로 기능이 바뀌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 거북산당은 주변 상권과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화성 축성을 위해 팔도에서 모여 든 수많은 노역자들로 인해 장시가 개설이 되고 난 후. 그때부터 팔달문 앞에 형성된 장시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터주가리당이었던 거북산당

 

현재 정면 두 칸, 측면 한 칸의 기와로 조성된 거북산당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2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거북산당은 과거에는 짚으로 이엉을 엮어 만든 터주가리당이었다고 한다. 1935(乙亥年)에는 터주가리 당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으며, 당 옆에는 3층으로 된 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거북산당 주변에는 기와집과 판잣집들이 있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곳이 팔달문 앞 장시의 외곽에 있던 당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터주가리 당을 당시 인계동에 거주하던 이씨 만신이 관청의 도움을 받고, 개인이 사비를 들여서 거북산당을 축조하고 그 안에 도당할아버지와 도당할머니 그리고 대왕님의 탱화를 모셨다고 한다.

 

영동 시장 내에 거북산당이 축조된 이유를 보면 화성의 축성과 무관하지 않다. 화성 축성을 위해 전국에서 많은 노역자들이 몰려들었고 자연히 팔달문밖에 장시가 서게 되면서, 상인들 을 주축으로 상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도당을 필요로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시장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당고사를 지내지 않으면 시장에 불이 잘 나기 때문에, 예전부터 이 시장에서 터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세상없어도 당제는 올려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의 명칭이 거북산당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이곳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있었다고도 하고, 또 인근의 구천동과 가까우며 주위에 물이 많은 곳이라서 풍수적으로 불을 제압 할 수 있는 힘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처에 거북산이라고 부르는 작은 언덕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 이름을 따 거북산당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인다.

 

도당굿이 이루어지는 거북산당을 찾은 ()영동시장 주식회사 이정관 이사장은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전통적으로 이루어지던 도당굿이 열린 것을 축하한다. 영동시장은 불이 자주 났었는데 거북산당을 짓고 나서 화재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오늘 도당굿 보존회원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린다. 이 굿을 하고나서 모두가 다 평안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경기도당굿 원형 제대로 찾아가야

 

원래 영동시장 거북산당 도당굿은 매년 음력 107일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윤달이고 음력 107일은 날이 춥다는 이유로 윤 97일에 연 것이다. 일개인의 주장에 의해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전통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이 전통을 지키는 일인가 묻고 싶다.

 

경기도당굿은 화랭이 굿이다. 화랭이가 주관이 되어 많은 도당굿의 절차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현 도당굿에서 나타나고 있는 절차를 보면 과연 이것이 과거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된 그 굿이 맞는가 의아스럽다. 그 화려하던 문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같은 사설만 되풀이되고 있다. 무형문화재는 지정 당시의 굿 형태를 가급적이면 지켜가야 한다. 원형을 잃어가고 있는 경기도당굿의 굿거리 제차를 보면서 내심 씁쓰레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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