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안에 내재된 인간을 그리는 화가 장순복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그 바람을 맞고 있는 풀인 듯하다. 계절이 지나 말라버리는 풀들의 색은 이미 그 푸른색이 아니다. 갈색으로 변한 많은 풀들이 바람에 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그 그림이 인간의 본모습이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화가 장순복의 그림 세계는 남다르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그 안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쌀쌀해졌다. 일기예보에서는 잔뜩 흐린다고만 하더니 가끔씩 빗방울까지 툭툭거린다. 여주시 남한강 건너편 신륵사 초입에 소재한 여주여성회관 전시실에 23일 오후 5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임진숙, 장순복, 임양 등 세 여류화가의 살다전이 열리기 때문이다. 오후 5시에 개막식을 한 전시는 28일까지 이어진다.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거주하는 화가 장순복은 들풀 같은 여인이다. 가끔 마음이 울적할 때나 심신이 자유롭지 못할 때면 찾아가는 곳이 상교리에 있는 지우재라는 곳이다. 상교리 고달사지 인근에 있는 이 집은 남편과 아들, 세 사람이 20년 넘게 지켜오고 있는 곳이다. 주변에는 잘 가꾼 밭에서 자란 무공해 농작물이 있어 그저 밭에 나가 아무것이나 쑥 뽑아 털털 털어먹으면 되는 집이다.

 

그런 집에서 작업을 하는 화가 장순복을 우리는 그저 편하게 장화백이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늘 살아가면서 어려운 생활이지만 이 곳의 생활에 적응하고 산다. 어찌보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100년이 훌쩍 지났을 듯한 산수유 나무아래서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하면서 술 한 잔을 나누기도 한다. 누가 찾아가도 불편한 기색이 없다. 그렇기에 이곳을 내 집처럼 드나들고는 했나보다.

 

 

잔뜩 흐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여정을 알 수 없는 바람에 몸을 맡겨 낮게 엎드렸다 다시 일어서고 바람 부는 들녘의 연작들은 하늘, 바람, 들풀과 나무는 들녘의 일상 속에서 나의 마음 곁에 맺힌 이미지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작가의 작업노트에 적은 글이다. 장화백은 늘 그런 자연과 바람, 들풀을 그려냈다. 그 그림들 속에는 많은 말들이 있다. 누가 했느냐는 중요치 않다. 그저 바람도 그런 들풀을 흔들고 지나가고 하늘도 그런 들풀을 항해 이야기를 했다.

 

 

다 내려놓은 빈 몸이 바람과 하나가 되어 서로 손을 잡고 물결처럼 밀려갔다 밀려온다. 그렇다! 나는 이 건조하고 팍팍한 일상에 뭔가 가슴 뜨거운 울림이 있기를 간절히 열망한다.”

 

작가는 들에 서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들풀과 이야기를 시작한다. 누군가 답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거기 서 있고 바람이 불기 때문에 흔들리는 들풀처럼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 스스로의 세상을 그렇게 배워가는 것이다. 화가 장순복의 그림 속에는 그런 깊은 사연을 담고 있는 듯하다.

 

 

이번만이 아니라 앞으로 세 사람의 여류화가가 모여 전시를 계속할 것이라고 한다. 굳이 장화백을 먼저 이야기 하는 것은 그림 속에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엔 또 다른 화가의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겠지. 그림에 문외한인 내가 글을 쓰는 방법이다. 세 사람을 함께 이야기하기는 버겁기 때문이라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다음 전시 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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