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소(浮石所)’라고 쓴 작은 돌로 조형한 안내판이 자리하고 있다.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250-1 일대에 자리한 숙지산. 화성을 축성할 때 수원의 인근 네 곳에서 성돌을 떠왔다고 한다. 이곳 숙지산도 그렇게 성돌을 뜬 곳 중 한 곳이다.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화성을 축성하는 시기인, 17941월부터 17969월까지 숙지산 일대에서 성돌을 뜨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원래 이 자리가 좀 높았다고 해요. 그런데 바위산인 이 숙지산에서 성돌을 뜬다고 바위를 하도 많이 채취를 해가 이렇게 낮아졌다고 합니다. 숙지산 일대를 돌아보면 여기저기 성돌을 떠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있어요.”

 

얼마 전인가 이곳에 취재를 들어갔다가 마침 산길을 걷고 있는 어른신 한분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하긴 많이도 떠갔을 것이란 생각이다. 부석소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만 보아도 짐작을 할 수 있다.

 

 

 

 

 

가을에 만나는 숙지산 숲속에서 숨을 몰아쉬다

 

숙지공원에는 늦은 가을이라 날씨가 쌀쌀한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있다. 인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 듯. 숙지공원 안쪽으로는 노천극장이 마련되어 있고, 그 옆으로 산으로 오를 수 있는 길이 나 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피해 일부러 숙지화장실 앞 공터 옆으로 난 오솔길을 택한다.

 

이 길은 항상 고즈넉하고 조용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이 힐링을 한다고 숲을 이용한다. 오히려 숲길에서 만나는 인파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숙지산은 123m의 높지 않은 산이다. 그저 아이들도 편하게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산이다. 하지만 숙지산의 가을은 색다르다.

 

낙엽이 잔뜩 쌓여있는 좁은 길로 들어선다. 계절이 늦어서인가? 낙엽을 밟아도 바삭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저 푹신한 느낌이 든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이보다 좋은 길이 없다. 숙지산 길은 딱히 이 길이 정답이라고 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오솔길이 수도 없이 나 있다. 하기에 어느 길을 택하던지 그저 묵묵히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 산길 정말 조용하고 좋아요. 요즘 이런 산에 가면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한데, 이곳은 정말 좋은 사람하고 데이트하기에 딱 좋을 것 같아요.”

숙지산 길을 걷는 사람들의 말이다. 그만큼 늦가을의 숙지산은 한적하다. 그리고 숲속으로 들어서면 바로 짙은 숲 냄새를 맡을 수가 있다.

 

 

 

 

얼마나 많은 돌을 떠냈을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오솔길 중앙에 있는 소나무 숲에 닿는다. 키가 훌쩍 자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은 넓은 공터가 있다. 그리고 여기저기 의자들이 놓여있어 책 한 권 들고 올라오면, 낙엽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책에 빠져들 수 있는 곳이다. 그 한 옆으로 삐죽 고개를 내민 바위가 보인다.

 

낙엽이 쌓인 비탈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니 높이가 5m가 넘을만한 바위가 보인다. 그런데 그 한 면이 마치 칼로 자른 듯하다. 그리고 바위 한편에는 성돌을 뜨기 위해 쐐기를 박으려고 파 놓은 구멍들이 일렬로 나란히 파여져 있다. 그 자리를 보면서 생각한다. 아마도 이 커다란 바위의 앞에도 더 큰 바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이 바위를 이렇게 쐐기구멍을 낸 후 그곳에 바짝 마른 밤나무와 참나무를 박고 물을 부어 돌을 떠냈을 것이다. 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이렇게 바위를 절개해 낸 선인들의 지혜에 그저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숙지산 오솔길은 계절이 없다.

 

돌을 뜬 곳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 낙엽을 떨군 나무들이 조금은 을씨년스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가을을 느끼기에는 그보다 좋은 곳이 없을 듯하다. 봄이 되면 진달래가 피고, 여름에는 짙은 녹음이 있어 좋다. 초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답고, 늦은 가을에는 이렇게 쌓인 낙엽을 밟을 수가 있어서 좋다.

 

숙지산 오솔길에는 계절이 없다. 그저 언제나 찾아와도 조용한 숲이다. 이 높지 않은 산이 왜 이렇게 깊은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일까? 숙지산 오솔길은 늘 그렇게 쌓인 낙엽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면 발길에 챈다.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굳이 숙지산이 아니지 않은가?

 

마치 미로처럼 이리저리 오솔길이 나 있는 숙지산. 아마도 200년 전 수많은 돌을 뜨던 선인들도 이렇게 여기저기 길을 내면서 다니지는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었을 오솔길. 그 길에서 만추의 행복함에 젖어 있다가 보면, 어느새 해가 설핏 저물어간다.

 

숙지산은 겨울애도 아름다운 산예요. 이쪽 산에는 소나무들이 많아 눈이 내리면 눈꽃이 정말 아름다워요. 이 조그마한 산이 사시사철 아름다움은 혼자 다 차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정조대왕이 팔달산 서장대에 올라 이 산을 바라보면서, “이미 우리가 저 산을 다 알고 있으니 숙지산(熟知山)‘이라고 부르라고 명하셨던 것일까? 늦은 가을에 만난 숙지산 오솔길에는 계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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