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 심고 싶다 - 용환신

 

어둠, 어둠으로만 날 밝혀

들풀도 목이 긴 동강 난 이 땅

짓밟히고 짓밟힌 상처 남는데 없이

아침 햇살 심고 싶다.

 

이름 팔아 왜놈 됐다

하루 아침에 양놈 되어

당산나무 찍어 넘어뜨리고

안방, 건너방 다 내 주고도

시퍼렇게 살아가는 식민지

무심히 흐르는 저 붉은 강물 속속들이

아침 햇살 심고 싶다.

 

스스로 쳐 놓은 그들만의 그물에 갇혀

아직도 말 잇기 놀음, 헛소리에 취해

대들보 무너져도 태평소리 새어 나오는

여의도 녹슨 돌집 철거한 땅까지

겨울 보리밭 고랑마다

아침 햇살 심고 싶다.

 

 

먹어도 먹어도 배 부른 줄 몰라

안마당 뒷마당, 애비 자식

분간 없이 싸움질 하며

기적이라 이름 붙인 강가

젖은 모래밭에 세운 탐욕의 탑 그늘진 곳곳

아침 햇살 심고 싶다.

 

잃을대로 다 잃고

잊은대로 다 잊은

우리네 가슴 깊은 노래

다시 불러내 울음웃음 한마당

걸판지게 놀아 볼 멍석 구석구석

아침 햇살 심고 싶다.

 

 

, 이 새 아침

뿔뿔이 헤어졌던 사람들

모두 돌아와 맞는 저 가난한 밥상

가슴 벅차 손이 떨리는

숟가락 하나 하나에

을유년 햇살 꼭꼭 심고 싶다.

 

() 시인 용환신은 1949년 수원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였으며, 민족문학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시집 다시 시작해 가자, 겨울꽃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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