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문화재를 답사하면서 한 가지 버릇이 있다. 문화재를 한 번만 보는 것이 아니고, 그 인근을 지나갈 때는 꼭 다시 한 번 들린다. 문화재란 늘 신경을 쓰고 찾아보지 않으면, 어느 순간엔가 훼손이 되어있거나 관리가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천연기념물의 경우에는 계절별로 한 번씩은 찾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것은 계절별로 그 느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계절마다 갈아입는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그 변화를 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의 은행나무들은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충남 금산군 남이면 석동리 보석사 은행나무는, 수령이 1,100년이 지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365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6개월 만에 다시 만난 보석사 은행나무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를 6개월 만에 다시 만났다. 지난 3월에는 잎이 없이 가지만 앙상한 나무를 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벌써 윗가지에는 햇볕에 노란색이 보일 정도로 많이 달라져 있었다. 높이 34m 정도에, 가슴높이의 둘레 11m 정도인 보석사 은행나무. 아마 수령으로 친다면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듬직하다.

뿌리부분에는 2∼3m 높이의 잔가지들이 돋아나 있는 보석사 은행나무. 이 은행나무는 마을에 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지난 3월에 찾아갔을 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나무를 위하는 제를 지낸다고 알려주었으나, 찾아가지를 못했다. 마을을 지키고 보호해준다는 신성한 은행, 9월 4일 찾아간 은행나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맨 위 사진은 지난 3월에 보석사를 찾아 만난 은행나무 모습. 잎이 달리지 않았다. 가운데는 나무에 걸린 서원지. 목신제를 지내면서 걸어놓은 것이다. 맨 아래 서원지의 형태


보석사 창건 당시 심었다는 은행나무

보석사의 은행나무는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 당시인 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런 전설대로라면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1,125년이나 된다. 영험한 나무로 근동에 소문이 나 있는 이 은행나무는, 1945년 조국의 광복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때, 그리고 1992년 극심한 가뭄 때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전해진다.

9월 4일 보석사 은행나무를 찾아갔다. 나무 밑동에 색색으로 걸린 서원지가, 3월보다 더 많이 달린 듯하다. 아마도 올 해 ‘목신제(木神祭)’를 지내면서 새로 걸어놓은 듯하다. 색색으로 걸린 서원지들이 푸른 은행나무와 묘한 조화를 이룬다. 3월에 보지 못한 은행잎이다. 보석사 은행나무는 마치 2단으로 꾸며놓은 듯하다. 밑에서 가지가 사방으로 넓게 퍼지고, 중간 위 부분에서 부터는 갑자기 줄어들었다.



가을이 다 지나기 전에 꼭 다시 오마

중간에 사방으로 퍼진 가지의 길이는 동, 서쪽이 24m, 남, 북쪽이 20.7m나 된다. 보석사 대웅전을 마주하고 좌측으로 약간 비켜선 맞은편 산자락. 그곳에 홀로 고고한 자태로 서 있다. 주말을 맞아 보석사를 찾아온 사람들이 은행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아마도 이 나무의 오랜 기운이라도 받아가려는 것일까?

나무 주변을 천천히 걸어본다. 금방이라도 나무에서 무슨 소리라도 날 것만 같다. 꼭대기를 올려다본다. 오후의 햇볕을 받은 은행나무의 윗부분에는 벌써 노란기운이 감돌고 있다. 이 나무가 노랗게 물을 들이면 또 한 번의 장관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그 때 다시 찾아오마고 마음속으로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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