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웅전 앞을 지키고 있는 조선조에 조성한 석탑.

 

4월 초인데도 낮 동안에는 땀이 흐르는 날씨이다. 2일 휴일을 맞아 꽃놀이를 가는 차량들로 인해 가는 곳마다 차들로 북적인다. 이런 날은 고속도로를 피해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안성시 바우덕이 남사당 전수관을 찾아가기 위해 길을 나섰는데 그저 한가하게 국도를 이용하는 편이 좋을 듯해 국도를 택했다. 답사란 시간을 쫒기면서 하는 것보다는 여유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오산을 지나 평택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성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용인 남사면을 지나 안성 원곡면 방향으로 접어드니 차들도 많이 다니지 않고 한가한 편이다. 길가에 이정표 하나가 눈에 띤다. 청원사라는 절이 길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이정표다. 동행을 하는 지인이 그 절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절에 문화재도 있다고 하니 굳이 길을 지나칠 이유가 없다.

 

좁은 산 밑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저수지가 보인다. 주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다. 저수지를 비켜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니 목탁을 치는 소리가 들린다. 시간을 보니 아침 사시예불 시간이다.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절을 돌아본다. 대한불교 조계종인 청원사는 화성 용주사의 말사이다.

 

 

 

고즈넉한 사찰에 울리는 목탁소리

 

절은 크지 않다. 옛 건물은 대웅전과 대웅전 앞에 서있는 칠층석탑 정도이고 남은 전각들은 지은지가 오래지 않은 듯하다. 문화재 안내판에는 대웅전과 칠층석탑이 경기도 지정 유형문화재라고 기록되어 있다. 산속 작은 절이지만 그래도 문화재가 두 점이나 된다니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답사 길에서 만나는 문화재는 늘 기쁘기 때문이다.

 

청원사는 안성시 원곡면 성은리 397 천덕산에 자리한다. 산길을 따라 들어가면 봉우리 아래편에 넓지 않은 절이 자리하고 있다. 사시예불 시간인데도 대웅전 안에는 스님 한 분이 앉아 예불을 드리고 있고 공양주 인 듯한 여인이 대웅전 문을 나선다. 아마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를 올리고 나오는 듯하다.

 

대웅전 앞에 서 있는 칠증석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탑은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보이는 탑의 기교면도 돋보이지 않는다. 높이 3.5m의 탑은 단층 기단 위에 7층 답신을 올렸는데 지대석은 여러 개의 돌로 마련하였다. 기단의 갑석에는 상하면에 연화문을 새겼고 각 측면에는 4개의 안상을 새겨 넣었다.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는 청원사

 

청원사의 창건연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대웅전 삼존불상에서 발견 된 복장유물 중에 고려 충렬왕 6년인 1280년에 국왕이 국태민안을 위하여 발원한 사경(寫經)과 묵서가 발견되어 고려 말 국가의 원찰로 경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원사는 조선조에도 법등이 이어져 철종 5년인 1854년에 대웅전의 중수가 이루어졌고, 1998년에는 산신각을 옮겨짓고 요사를 보수하였다.

 

청원사 칠층석탑은 조선 전기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받침돌과 몸돌은 각각 1장의 돌로 마련했으며 낙수면은 위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진다. 각층 탑신에는 모서리에 양우주가 새겨져 있으나 몸돌마다 많이 마모가 되었다. 전체적인 탑의 모형은 7층이라는 높이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자리하고 있는 청원사 7층 석탑. 7층 석탑치고는 규모가 큰 편이 아니다. 우선 기단부가 낮게 자리하고 있으며 상륜부에 올린 보주 역시 화려하게 장식하지 않았다. 지붕돌의 아래편에는 받침을 조성했으며 몸돌은 낮게 꾸며 탑의 높이를 줄였다. 이렇게 균형을 잡기 위한 노력이 돋보이는 석탑이다.

 

석탑 지붕돌의 처마 끝에는 녹물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지붕돌 사방에 풍경 등을 달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월이 지나면서 옛 모습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문화재들. 비바람에 씻겨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지내오면서 그렇게 조금씩 달라져버린 모습에서도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렁 고마움 때문에 답사를 이어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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