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답사를 해 놓고 나서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 보면 소개를 빠트리는 것이 가끔 생긴다. 그 문화재가 딴 것에 비해 뒤떨어져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다가 보면 시기를 놓치는 수가 있다. 경남 거창군 남하면 무릉리에 소재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7호인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가 바로 그런 경유이다.

 

무릉리 정씨고가를 찾아간 것은 오래 전 62일이었으니, 벌써 한참이나 지났다. 정씨 고가를 찾던 날은 초여름 비가 참 후줄근하게 내리던 날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은 답사를 하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거기다가 바람까지 불어 우산을 가누기도 힘든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빗속에서 만난 무릉리 고가, 사랑채에 반하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한편은 광으로 사용하고, 한편은 방을 드려 예전에는 이곳에 하인들이 사용한 듯하다. 그리고 대문과 같은 높이에 사랑채를 지었는데, 대문 쪽은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기둥을 놓았다. 안채 쪽은 축대를 높이고 그 위에 정자를 올렸는데, 현재는 담벼락을 쌓은 이곳도 예전에는 축대 위에 기둥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무릉리 정씨고가의 사랑채의 형태가 남다르다. 이곳 사랑채는 정형초의 호를 따서 산수정이라고 부른다.

 

무릉리 정씨 고가는 조선조 숙종12년인 1686년에 장사랑을 지낸 산수정 정형초가 건립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4년에 중수한 것으로, 건물구성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되어 있다. 원래는 안사랑채가 있었다고 하는데 헐리고, 일부는 변경된 구조로 남아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경사지에 기단을 높게 축조하여, 대지의 안쪽 높은 곳에 안채, 바깥쪽 낮은 곳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사랑채는 자 형으로 꾸몄는데, 대문 쪽은 두 칸 개방마루를 높게 놓고, 안채 쪽으로는 한 칸의 방과 한 칸의 정자마루로 꾸몄다. 사랑채를 높게 하기 위해서 높은 기둥으로 받쳤으며, 앞에는 돌로 계단을 쌓아올렸다.

사랑채의 대청은 측면과 후면을 판자로 닫아 판문을 내고, 앞쪽으로는 난간을 들렀다. 덤벙주초에 자연스런 나무로 기둥을 마련하였으며, 한쪽은 팔작으로 꾸미고 한편은 맞배로 꾸민 특이한 형태이다.

 

 

남부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안채의 꾸밈

 

안채는 축대를 쌓고 그 위를 평지로 돋아 집을 지었다. 계단을 올라 중문을 들어서면 좌측으로 비켜 서 안채가 자리를 한다. 무릉리 정씨고가의 안채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보기드문 자형 평면의 3량 구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정면 4, 측면 2칸의 자형 평면에 양끝에 협칸을 앞으로 돌출시켜, 자형 평면외부에 마루를 두르고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안채는 상당히 변형이 온 듯한 상태이다. 우선 대청마루에 문을 달아낸 것도 그렇지만, 문을 모두 현대식으로 고쳐놓았다. 고가에서 산다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을 찾아도 기척이 없다. 안채는 그냥 중문채에서 잠시 사진을 찍고 돌아선다. 빗줄기는 더욱 거세지는데, 아직도 찾아야 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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