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을 만나던 날

 

20041212, 해질녘 찾아간 서산시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일부러 벡제의 미소라는 삼존불을 보기 위해 찾아갔지만 실망만 가득 안고 뒤돌아서야 했다. 해가 기울기에 따라 미소가 달라진다는 말에 찾아갔는데 보호각을 만들어 놓아 해가 들지 않는 삼존불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은 보호각을 지어놓고 삼존불 주변에 붉은색이 도는 흙으로 발라놓고 아래편 삼존불을 조각한 바위까지 흙칠을 해놓아 도대체 국보를 이렇게 훼손해도 되는가에 대해 분노마저 느꼈다. 물론 그렇게 만들어놓은 당사자들은 국보인 마애여래삼존불을 보호한답시고 해 놓은 짓이었겠지만 말이다.

 

 

44일 오전. 서산시 은산면 용현리를 찾아갔다. 처음에는 삼존불을 오르는 길을 가로 질러 내에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번에 찾아가보니 전혀 낯선 곳이 되었다. 주변에는 음식점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고 마애여래삼존불로 오르는 길은 내에 다리를 놓고 돌계단을 놓았다. 사람들이 오르기 쉽게 조성을 했지만 난 그것도 너무 인위적인 듯해서 달갑지가 않다.

 

문화재란 조성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사람이기에 이렇게 주변을 말끔하게 정리해 놓은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기조차 하다. 내에 걸린 다리를 지나고 돌층계를 따라 오른다. 높지 않은 층계는 가파르다. 처음 왔을 때는 보이지 않던 화장실이며 관리사까지 지어놓았다. 국보를 관리·보존해야 하니 이해를 할 수밖에.

 

 

불이문을 지나 마애여래삼존불을 만나다

 

관리사에서 마애여래삼존불을 만나러 가는 길에 불이문을 조상해 놓았다. 불이문 앞에 멈춰서 마음을 다스린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피안의 세상이다.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이 문에서 지금까지 의심으로 가득찼던 마음을 내려놓는다. 천천히 마애여래삼존불로 다가가 앞에 보이는 삼존불을 항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머리를 숙인다.

 

바위에 돋을새김을 한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찾아왔다가 상처만 가득 안고 돌아갔던 곳이다. 바위에 덧칠해 입혀놓았던 흙더미도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바닥에 높이 쌓였던 흙도 제거해 제 모습 그대로 사람을 맞는다. 중앙에 석가여래입상을 비롯해 오른편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왼편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서 있다.

 

이 모습 그대로를 보기 위해 벌써 15년 전에 이곳을 찾았지만 아제야 훼손되지 않은 백제의 미소를 만난다. 삼존상은 불상의 광배까지 생생하게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중앙 본존의 연꽃과 불꽃 무늬 광배가 꽃이 피어나는 듯 살아 있는 백제 후기의 작품이다. 그 앞에서서 어디다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괜히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얼마나 기다려온 것인가?

 

 

 

백제의 미소’, 그 모습에 반하다

 

삼존불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세상을 살아오면서 처음처럼 마음이 맑지 않아서일 것이다. 다시 두 손을 합장하고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마음속으로 간구한다. “남은 시간이라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서원이다. 그동안 숱한 시간을 문화재를 만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지만 정작 만나야 할 마애여래삼존불을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찾았다는 것 또한 죄스럽다.

 

날이 잔뜩 흐린 날 찾아간 용현리 마애여래삼존불. 해가 나오질 않아 해의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달라진다는 백제의 미소를 보기는 어렵지만 그것이 무슨 상관이랴. 이미 제 모습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속에 미소가 가득 차 있는데 말이다. 삼존불 앞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인 후 뒤편에 있던 석불좌상을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에 누군가 가져 간 것 같아요. 언제 사라졌는지도 잘 모르고요

마애여래삼존불 관리사에 있는 분의 이야기다. 잊어버렸다고 한다. 국보를 지키기 위해 사람까지 두고 관리를 했다고 하는데 언제 들고 간 것일까? 꼭 문화재로 지정을 해야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역사 속에서 조형된 모든 것들이 다 문화재라는 생각이다.

 

그 석불좌상 한 기를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까? 문화재 답사를 하면서 늘 마음이 아픈 것이 제대로 보존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나마 제 모습을 찾은 마애여래삼존불을 다시 만났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앞으로는 이런 마음 아픈 이야기를 다시는 듣지도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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