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맞은 휴가 고성 화진포를 찾아가다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의 성’ 방문
정말 모처럼 꿈같은 휴가를 맞이했다. 단 며칠이지만 처음에는 어디 제주도라도 다녀올 생각이었지만 무더위가 계속되자 장소를 바꿔 1박 2일로 다녀올 수 있는 강원도로 향했다. 우선은 그곳에 꽃 필요한 볼일이 있기 때문에 겸사겸사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화진포의 성을 찾아가기로 했다.
화진포의 성은 ‘김일성 별장’으로 유명하다. 잠시 김일성 일가가 이곳으로 피서를 다녀갔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지만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원산에 있는 외국인 휴양촌을 화진포에 강제 이주시켰다. 화진포의 성은 독일건축가 H. Weber가 1938년에 건립하여 예배당으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화진포 해수욕장 한편소나무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 화진포의 성은 1948년 이후 북한이 귀빈휴양소로 사용하였고 당시 김일성과 그의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과 딸 김경희 등이 묵고 갔다고 하여 ‘김일성 별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건물은 애초 독일의 선교사 셔우드 홀 부부에 의해 지어진 건물로 5,25 한국전쟁 때 훼손이 된 것을 2005년 3월 옛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다.
화진포의 성을 찾아간 것은 13일이다. 해수욕장은 징검다리 연휴로 해서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지만 정작 바다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금강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하천에 모여 더위를 피하고 있다. 커다란 파도가 넘실대면서 해안가로 밀려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들 정도이다.
금구도 광개토대왕의 무덤일까?
화진포 해수욕징 앞쪽 동해바다를 보면 500m 정도 앞 해상에 1,000여평 면적을 가진 금구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금구능파’라고 하여 금구도의 파도치는 모습이 아름다워 고성팔경에 해당한다. 고구려의 19대 태왕인 광개토대왕은 이름이 담덕이며 374년에 탄생했다. 386년에 고구려의 태자로 책봉된 후, 391년 고구려 제19대 태왕에 등극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최초로 연호를 제정하여 사용하였으며 재임 당시 수많은 적을 물리치고 성을 함락시켰다.
고성문화원 향토사학자 긴광섭에 의하면 고구려 연대기에 광개토왕 3년인 304년 8월 경 거북섬에 왕릉 축조를 시작했으며 18년 8월에는 화진포의 수릉 축조현장을 왕이 직접 방문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광개토왕이 서거 후 2년 뒤인 414년(장수왕 2년) 9월 29일 광개토왕의 시신을 화진포 앞 거북섬에 안장했다고 한다.
문자명왕(고구려 제21대 왕으로 재위기간은 491~519) 2년에는 이곳에서 광개토왕의 망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섬에는 와편과 주초석 등이 남아있어, 이곳이 광개토왕의 망제를 지낸 사당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곳이 광개토왕의 무덤으로 추정한다.
파도가 치는 날 찾아간 김일성 별장
금구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소나무숲을 걸어 화진포의 성이라는 김일성 별장으로 향했다. 먼 길을 달려 예까지 왔는데 정작 바닷물에 발로 담그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휴일을 맞아 마지막 피서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이 김일성 별장으로 몰려들어 북적인다. 맨 위에서 내려다보는 화진포는 가히 절경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원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이곳 화진포에는 이승만 정 대통령의 별장과 이기붕의 별장도 자리하고 있다. 그곳에도 소나무숲이 우거져있지만 김일성 별장만큼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 경치가 떨어지기 때문인 듯하다.
모처럼 맞은 휴가를 이용해 찾아 온 고성군 화진포. 그곳에서 올 여름 바닷바람으로 맞으며 피서를 즐긴다.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지. 앞으로 남은 3일간을 또 어디를 향해 길을 나서야할지 깊은 생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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