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만세의 고장에 있는 유석 조병옥 생가를 가다
우선 편안하게 옛 집 이야기를 끌어가려고 한다. 우리가 흔히 고택, 가옥, 생가, 생가지라는 용어를 써서 소개를 하는 집들은 조금씩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그동안 옛집 기행을 하면서 돌아본 바로는, 고택은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지 않거나 집을 지은 일족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살 경우에 붙은 명칭이고, 가옥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명칭을 붙인다.
가옥의 경우 처음 그 집을 축조한 사람이 아닌, 현재 소유권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 ‘○○○가옥’이란 명칭으로 사용한다. 생가는 그야말로 그 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집을 말하는 것이고, 생가지란 그 집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는데 집의 형태가 당시의 집이 아닐 때 붙이는 명칭으로 보인다. 그동안 전국의 가옥을 돌아다니면서 보니 이런 형태로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이는데, 그 명칭을 어떻게 붙였는가는 정확히 가늠은 되지 않는다. 다만 오래도록 다니면서 본 결과 대개는 이런 형태로 명칭을 붙인 것 같다.
독립만세의 고장 천안
충남 천안은 독립만세의 고장이다. 병천 아우내 장터에서는 유관순이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그 외에도 구국전선에서 열정을 받쳤던 이동녕 선생이 목천에서 태어났다. 목천과 병천은 서로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또 한 분의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유석 조병옥은 병천면 봉두리에서 태어났으니, 이곳은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태어났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유석 조병옥(1894, 5, 21 천안 병천 ~ 1960, 2, 15 미국) 박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또한 정치가로 일생을 살았다. 부통령 출마와 대통령 출마를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선거유세 중 병으로 인해 미국으로 급히 이송이 되어 미국 월터리드 육군병원에 입원 중 6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병옥은 일제 강점기에는 도미유학과 독립운동에 종사하였고,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UN대표단, 내무부와 외무부장관 등을 거치기도 했다.
집안에 있는우물과(위) - 자형으로 꾸민 안채(가운데), 그리고 헛간채(아래)
조촐한 초가집, 그러나 쓰임새 있게 꾸며
유석 조병옥의 생가는 천안시 병천면 봉두리 261-6 도로변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유관순의 생가가 있어, 두 곳을 돌아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이날따라 국지성 호우로 인해 길을 걷기도 힘든데, 다행히 답사를 하는 시간에는 비가 멈추어주었다.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조병옥의 생가는, 조병옥 박사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조병옥 박사가 이 집에 살던 때는 초가였으나 와가로 변형되었던 것을, 문중의 고증을 받아 원형 그대로를 복원하였다고 한다. 그 당시의 원형을 복원하였기 때문에 ‘생가’라는 명칭을 붙인 것 같다. 집은 - 자형의 초가로 지어졌다. 대지 550평에 안채가 15평, 헛간채가 7평 정도의 크기로 자리를 잡고 있다. 사립문을 열고 들어서면 우측으로 우물이 보인다.
좌측 끝에 툇마루를 달아내고(위) 정면으로는 반 칸 정도의 한데공간을 마련했다(가운데)
그리고 툇마루가 달린 방에는 한데부엌을 놓았다(아래)
-자 형으로 꾸민 안채는 모두 네 칸으로 구성을 하였고, 동편으로 반 칸의 툇마루를 놓았다. 이곳을 사랑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집을 보면 우측으로부터 한 칸의 부엌과 두 칸의 방, 그리고 툇마루가 달린 한 칸의 사랑으로 꾸며져 있다. 맨 끝에 툇마루가 달린 방에는 한데 부엌을 놓았으며, 정면에는 반 칸 정도의 빈 공간을 개방형으로 만들어 이동이 편리하게 하였다. 측면은 이러한 개방된 곳 때문에 칸 반 정도로 보인다.
헛간채는 모두 세 칸으로 광 한 칸을 두고 가운데는 헛간으로 꾸몄다. 그리고 끝에 한 칸은 마구간으로 사용을 하였으며, 처마를 길게 달아내 비에 젖지 않도록 한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특별한 것은 없는 초가집이다. 그러나 15평이라는 적은 공간을 아주 짜임새 있게 꾸며 놓았다.
헛간채는 처마를 길게 빼어 눈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하였다(위) 여물통과 안채와 헛간채(아래)
지금은 앞으로 도로가 나 있지만, 어린 시절 조병옥은 이곳에서 자연을 벗 삼아 뛰놀았을 것이다. 비가 오는 날 찾아간 조병옥의 생가. 말끔히 정리가 되어 있는 이 집에서, 나라의 안위를 걱정한 한 세대를 풍미한 인물이 태어나고 자란 것을 생각이니, 괜히 마음이 경건해진다. ‘사람은 죽어서 그 이름을 남긴다.’라는 옛말처럼, 이 작은 초가집에서 그 이름을 남긴 역사의 인물이 살다가 갔다. 그래서 옛집의 순례는 의미가 있는가보다.
나라의 민주주의의 꽃을피우기 위해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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