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난으로 인해 잃어버린 반계정의 역사
장수군 산서면 사계리에 소재한 반계정. 소나무에 둘러싸인 이 정자는, 반계(盤溪) 정상규 선생이 지은 정자라고 전한다. 반계선생은 자신도 생활이 어려웠으나, 남을 돕기를 좋아하였다. 항상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남의 어려움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선생이기에, 어려움이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은 정자를 개울 위에 짓고 세상을 피해 살았다고 한다.
장수군의 답사를 하면서 우연히 찾아간 반계정. 반계정은 비지정 문화재로 입간판 하나가 서 있지 않다. 산서면 사계리에 소재한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34호인 창원정씨 종가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정자이다. 반계정 주변에는 키가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자리를 하고 있어 고풍스런 모습이다.
축조한지 100년이 지난 반계정
반계정은 1909년에 지어진 정자로 전해진다. 100년이 조금 지난 세월이다. 일각문 앞으로는 밭이 있고, 뒤로는 작은 내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꽤 많은 물이 흘렀다고 한다. 그만큼 운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이 든다. 반계정은 몇 년 전에 보수를 했다고 한다. 담은 기와와 돌, 황토를 섞어 쌓았는데, 정자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이다.
일각문을 열고 들어가면 정면 두 칸, 측면 두 칸으로 구성된 반계정이 있다. 반계정은 정자에 오르는 계단이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측 편에 장대석을 쌓아 올렸다. 마루는 누마루를 깔고 밑으로는 네모난 돌을 주초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 반계정에는 몇 가지 특이한 것이 눈에 띤다.
모서리에 붙은 한 칸의 방
우선은 반계정 지붕을 받치고 있는 기둥이다. 정면의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한데 반해, 뒤편으로는 네모난 기둥을 사용했다. 그리고 뒤편 우측으로 방을 몰아서 붙여놓았다. 계단을 오르면 바로 우측에 한 칸의 방이 있다. 방은 정자의 마루를 접한 부분에는 두 짝 문을 두고, 외부로는 한 짝 문을 옆으로 뉘여 달아냈다.
정자의 앞부분은 누마루를 깔고 방의 우측 한 칸에도 마루를 깔았는데, 앞쪽의 누마루보다 약간 층이 지도록 하였다. 계단과 벽면을 뺀 남은 부분에는 모두 난간을 둘러놓았다. 방은 온돌방으로 꾸며 한 겨울에도 이곳에서 지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반계 정상규 선생은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전해진다.
도난당한 선생의 일생
반계정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알고 싶었으나, 아무런 안내판이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반계정 옆에서 나무를 심고 계시는 분에게 말씀을 드려보았더니, 마침 반계선생에 대해서 알고 계신다고 하신다.
“저 반계정은 언제 지어졌나요?”
“100년이 조금 지났어요. 정 상자 규자를 쓰시는 어르신이 세상을 피해 이곳에 정자를 짓고 사셨죠.”
“정자 주변 경치가 아주 좋아요”
“예 저 소나무들이 저희가 어릴 적에는 흔들고 놀던 나무였는데, 그동안 저렇게 큰 고목이 되어버렸네요”
“어르신 춘추가 어떻게 되셨나요? 죄송합니다.”
“올해 여든 여섯이 되었네요.”
“반계정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쉽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반계집』이란 선생님의 문집이 세권이 있었는데 도난을 당했어요. 그 책에는 반계정에 대한 내용도 다 들어있다고 하는데.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죠”
더 이상 어르신께 질문을 할 수가 없다. 말씀을 하시면서도 서운한 기색이 역력하다. 괜히 종가집 핑계를 대고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알 수 없는 반계선생의 일생이 더욱 가슴 아프다. 뒤돌아보는 반계정 담 너머로 선생의 송서(誦書)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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