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꿩을 말하는 것이다. 화성에는 치라고 부르는 시설물이 있다. 성벽을 쌓다가 일정 간격을 두고 밖으로 튀어나온 시설물들이다. 이 치는 꿩이 자신의 몸을 숨기고 주변을 돌아보듯, 그렇게 자신을 숨기고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구조물이다. 밖으로 돌출된 이 치는 여장을 두르고 총안을 내어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막을 수 있도록 했다.

 

세계문화유산이요 사적 제3호인 화성을 따라 돌다보면 성곽의 부분, 부분에 돌출되어 나온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치(). 치는 성곽의 안에서 보면 밖으로 삐죽이 나와 있다. 성곽 위에는 누각 없이 여장만을 쌓고 몇 군데의 총안을 내 놓았다. 여장과 여장 사이에는 빈틈이 있다. 이 여장의 빈틈은 경사지게 되어 있어 안에서 밖을 살피기에 적당하다. 밑으로는 경사지게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치의 목적은 군데군데 이 치를 만들어 성벽에 접근하는 적들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수원 화성에는 10개소의 치가 있으며 각기 서일치, 서이치, 서삼치, 용도서치, 용도동치,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남치, 북동치가 있다. 치는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에 의하면 50타 마다 한 곳씩 둔다고 했다. 1타가 3~4보쯤 된다고 치면 일보가 80cm이니 150m에 한 곳씩 치를 둔 셈이다. 단순히 치만을 둔 곳이 있지만 지형에 따라서는 치를 응용하여 공심돈, 포루(砲樓)와 포루(鋪樓), 적대(敵臺) 등을 세워 적의 침략을 방비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원래 화성에는 11개소의 치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화성에서 볼 수 있는 치는 열 개다. 화성 동문에서 시작해 좌측으로 성을 한 바퀴 돌면, 동일치서부터 만나기 시작한다.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남치가 있고, 산 위로 오르는 용도라고 불리는 길에 용도동치와 용도서치가 있다. 그리고 서장대를 지나 동문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서삼치, 서이치, 서일치와 북동치가 있다.

 

 

다양한 기능을 갖는 화성의 치.

 

성 밖으로 돌출된 구조물을 단순히 치만을 생각하면 안된다. 치성을 쌓은 후에 그 위에 포루와 적대 등을 설치했기 때문에, 기실 화성의 치와 같은 기능을 갖고 있는 구조물은 그 배나 많기 때문이다. 이 치는 일정한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형지물을 이용해 축조한 화성이기에, 그 지형에 맞는 곳에 치가 있다.

 

치의 총안을 통해서 성벽을 보면 성벽 전체가 보인다. 치와 치, 혹은 치와 포루 사이에서 성벽을 오르기란 불가능하다. 성벽을 타고 오르려고 한다면, 앞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등을 막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공성무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성, 그곳이 바로 화성이다.

 

열 곳의 치성은 그 크기가 같은 것이 아니다. 지형에 따라 크기가 다르고, 총안의 각도가 다르다. 한 마디로 이 치성 안에 숨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하기에는 가장 적합한 시설물이다. 치성 안에 들어가 총안으로 밖을 본다. 건너편 포루가 보인다. 저 포루와 이곳 치성 사이에는 성벽이 한 곳도 그늘진 곳이 없다. 그만큼 완벽하게 쌓은 성이다.

 

화성을 돌아보면서 늘 하는 생각이다. 만일 이 성에서 정말로 전쟁을 했다고 한다면, 아마 그 누구도 이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총안을 통해 적의 뒤를 공격하고, 치성으로 오르려고 하면, 치의 바닥에 나 있는 구멍에 끓는 기름을 붓거나 끓는 물을 부어 적을 덤비지 못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화성의 치

 

화성을 한 바퀴 안팎으로 돌다보면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성곽이 아닌 자연과 어쩌면 저렇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게 축조를 했을까 감탄을 하게 된다. 치는 화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의 성곽에 보면 보편적으로 치가 보이지만 화성만큼 그렇게 조화롭게 치를 이용한 곳은 없는 것 같다.

 

치는 성과 같은 높이로 쌓았고 그 위에 여장을 둘러놓았다. 치는 성곽에서도 확연히 돌출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치 위에 오르면 좌우를 바라다 볼 수 있으며 성곽을 오르는 적이 한 눈에 들어온다. 가히 화성을 왜 성곽의 꽃이라는 대명사로 부르는지 알만하다.

 

화성의 치 위에 세운 포루에서 총안을 통해 바라다 본 성곽. 적이 성곽을 기어오르면 그 뒷부분을 볼 수 있다. 적은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에 공격을 하지 못한다. 화성은 치 위에 적당히 포루 등을 배치해 화살이나 총을 쏘아도 그 사정거리 안에 적이 들도록 배치해 놓아 뛰어난 성곽 축조 기술을 엿 볼 수 있다.

 

지형이 높은 곳에는 치 위에 포루(鋪樓)를 세워 놓았다. 멀리서 움직이는 적도 모두 관찰할 수가 있어 적은 시야에서 벗어 날 수가 없다. 그리고 이곳에서 적을 공격할 때는 사방이 모두 막혀있어 적의 공격을 안전하게 피할 수 있다. 그야말로 꿩이 풀 속에 숨어 밖을 내다보는 그런 형태와 같다고 하겠다.

 

 

치 위에 세운 구조물들의 놀라운 효과

 

화성의 북문인 장안문의 양편에는 치를 만들고 그 위에 포를 배치했다. 바로 장안문 양편에 마련한 적대이다. 장안문은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에서 내려오는 적이 장안문으로 공격할 것을 대비하는 세심함을 보인 듯하다.

 

요소마다 밖으로 돌출되어 나온 치 위에 누각을 짓고 여장을 둘러놓은 포루와 적대 등이 있어 적은 어디에도 성곽을 기어오를 수 없도록 하였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단순히 적을 공격하고 최선의 방어만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자연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다시 한 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봉화를 올리는 봉수대 역시 치 위에 올려놓았다. 봉수대는 성 동문인 창룡문과 남문인 팔달문 사이에 놓여있다.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축조된 화성은 그야말로 자연 위에 세운 거대한 미술품을 연상하게 한다. 방화수류정이나 서장대 같은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는 화성.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감성과 나라사랑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누구도 성벽을 탈 수 없다.

 

이렇게 완벽한 성은 없다. 이런 치의 용도로 인해 화성이 더욱 더 난공불락의 성이 되는 것이다. 그저 성벽을 쌓다가 돌출을 한 것이 아니고, 성의 방어하고 적을 섬멸하게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이다. 이 치성을 한 곳 한 곳 돌아보면 화성의 동선이 그대로 들어난다. 꼭 있어야 할 곳에 치가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죽음을 각오하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치가 있어 적어도 화성에서 전투를 한다고 하면, 성안의 군사들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고 적을 공격할 수가 있다. 그래서 꿩이라고 하는 치성(雉城)’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인가 보다. 적에게 나를 들어 내놓지 않고, 적을 살피는 꿩과 같이.

 

열 곳의 치와 포루와 적대. 그 모든 것은 꼭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다. 일정한 거리가 아닌,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한다. 화성이 제일의 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작은 구조물인 치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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