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의 청년이 내림을 받고 신의 제자가 되던 날

 

어머니도 목 놓아 울고 아들도 세상에 목이 터져라 울었다. 가슴 속에 뭉쳐있던 응어리가 터지는 순간이다. 28, 의정부시 의정부3139-1 건물의 2층과 3층에서 벌어진 내림굿’. 한 사람의 인생이 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이 열린 날이다. 오준범은 올해 29살이다. 호주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다가 신이 오는 바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천궁맞이를 하기 전에 어머니 이경희씨가 사용하던 무구(巫具)를 아들 오준범에게 전해주었다. 자신의 전안과 신명을 아들에게 넘겨주는 의식이다.

내가 3월에 이미 들어왔어. 그런데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렸지. 벌써 몇 달을 기다리다가 이제야 나를 좌정을 시켜주네. 그래도 고맙지 고마워.”

진눈깨비가 내리는 날, 건물 3층 옥상에 청궁맞이 상을 차려놓고 그 안에서 모든 신을 맞아들이는 천궁맞이를 하다가 오준범에게 빙의된 신령이 하는 말이다.

 

내림굿은 신이 들린 사람이 한 사람의 신제자(神弟子)가 되기 위한 의식이다. 과거에는 신병을 앓고 있던 사람이 굿판으로 뛰어들어 자신이 내림을 받을 날을 잡기도 했다. 요즈음의 내림굿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요즈음은 신이 들지 않은 사람까지도 내림굿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신명(神明)을 이은 오준범

 

오준범의 어머니는 이경희씨이다. 이경희씨는 동 장소 1층에 해동불교만물사를 운영하면서, 3층에는 전안(신을 모셔놓은 곳)을 차려놓고 있었다. 남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무당이다. 5년 전에 자신의 몸주를 모신 신주단지만 모셔놓고 있다가, 3년 전에 내림을 받고 전안을 차렸다고 한다.

 

이경희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착한 아들들(슬하에 2남이 있다)이 되게 해달라고 수없이 비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큰 아들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일식집 직원으로 일을 하다가 호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일식집을 차려 5년이나 장사를 했다고 한다. 5년 동안 한 번도 한국에 나오지 않았는데, 국제면허를 갱신하기 위해 한국에 나온 것이 화근이 됐다.

 

아이가 국제면허를 재발급하기 위해 올 3월에 한국으로 나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전안에 들어가더니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거예요. ‘내가 소문나게 잘 불리던 5대 할머니라고 하면서요. 그때까지 전 아이들 집안에 무당의 부리가 있다는 것을 몰랐어요. 아이 아버지를 수소문해 알아보니, 정말 5대 조 할머니 한 분이 유명한 만신이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신명으로 세습된 신의 사제 오준범

 

신명세습(神明世襲)’이라는 것이 있다. 선대의 무당이 모시던 신을 자손에게 물려주는 것이다. 이 신명세습은 우리나라 전역에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30년 간 무속을 연구하고 굿판을 다니면서 그 동안 몇 집을 보았을 뿐이다. 선대가 모시고 있던 신명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나면, 선대는 그 이상 무업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오늘부터 어머니는 신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저 오준범 어머니인 기주 이경희씨일 뿐이죠. 이제는 아들에게 전안과 모든 신령을 물려주셨으니 새로운 제자를 위해 도와주시고, 손님들이 오면 아들에게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마시고 제자로 대우를 해주셔야 해요.”

 

이날 내림굿을 주관한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은 오준범에게는 신아버지가 된다. 신의 부모와 자식들 사이는 나이와 관계없이 계보가 형성이 된다, 고성주 회장 역시 집안으로 4대째 대물림을 하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할머니인 남양 홍씨로부터 그의 딸이자 고성주 회장의 고모인 제주 고(고명길)씨에게로 대물림을 했고, 제주 고씨의 신딸인 경주 최(최영옥)씨에게로 전해졌다가 다시 고성주 회장에게로 넘어 온 집안이다.

 

 

 

 

 

오늘부터 이유진(고성주 회장의 신딸)은 네 누나가 된다. 너희들은 신의 세계에서 맺어진 남매지간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남매관계는 깨어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제자란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 제자들이 자기 욕심을 내면 신이 저버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고성주 회장은 오준범에게 친어머니인 이경희씨에게 절을 하라고 시킨 후, 이유진과 맞절을 시켰다. 두 사람은 신으로 맺어진 남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굿에 함께 동참을 한 임영복 무녀에게도 큰 절을 하라고 시켰다. 내림굿에 함께 동참한 어른들은 신의 부모와 동격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 시간부터 시작한 내림굿은 밤 9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다. 세상에서는 그들을 무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역사 속에서 제정일치 사회의 군왕이자 신의 말을 대신 전하는 제를 주관하는 집제자였다. 이제 새롭게 신의 제자로 첫 걸음을 띠는 오준범, 신아버지인 고성주 회장처럼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을 위래 나누고 봉사하는 신 제자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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