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문을 지키던 동남각루엔 정조의 마음이 있다
벌써 새해가 며칠이 훌쩍 지났다. ‘살 같은 세월’이란 말이 실감이 간다. 그렇게 시간이 가면서 주변도 변하기 시작한다. 눈이 오고나면 화성은 변화를 시작한다. 사철 어느 계절에 화성을 돌아보던지 화성은 늘 새롭다. 철에 따라 느끼는 바가 틀리기 때문이다. 누군가 화성을 백번만 돌아보면 숨어있던 화성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꽤 많이 내린 눈이 녹기 전에 화성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각루란 성곽의 비교적 높은 곳에 설치한다. 주변을 잘 살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정자와 같은 건물을 지을 때 ‘정(亭)’과 ‘루(樓)’로 구분을 한다. 정은 땅의 지면에 붙여지은 건물을 말하고, 루는 아래로 사람들이 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중층으로 된 건물을 말한다.
남수문에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동남각루가 있다. 이 동남각루는 남수문을 지켜내기 위한 구조물이다. 동남각루는 남공심돈(지금은 유실되어 버린 화성의 구조물 중 하나이다)과 마주하고 있으면서 주변을 감시하고 휴식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화성에는 모두 4곳의 각루가 있으며 그 중 동남각루가 가장 규모가 작다. 이 작은 동남각루가 그 어느 각루보다 중요한 위치에 세워졌다. 동남각루는 화성에 설치한 각루 중에서 가장 시야가 넓은 곳으로 비상시에는 군사지휘소로도 사용한 곳이다.
동남각루에 깃든 정조의 애민정신
화성을 돌아보면 정조의 애민정신을 알 수 있다. 화성을 축성할 때 정조대왕은 성을 일부러 설계번경까지 해가면서 주민들을 성 안으로 끌어들였다. 또한 화성을 쌓는 노역자들에게 인건비를 지급한 점이나 척서단. 제중단 등의 환약을 내려준 것 등은 모두 정조의 애민정신이 얼마나 대단했는가를 알 수 있다. 심지어 무더위와 인건비 미지급으로 인한 공사의 일시 중지 등도 정조의 애민정신의 하나이다.
노역자들이 더위에 일을 한다고 더위를 물리칠 수 있는 척서단이라는 환약을 지어 공사를 하는 인부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왕이 어디 있단 말인가?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은 그런 하나하나에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남각루라는 건조물 하나를 보아도 정조대왕이 얼마나 화성을 지키는 장용외영의 군사들을 자식처럼 생각했는가를 알 수 있다.
온돌방을 드린 동남각루
남수문에서 가파른 계단을 올라 동남각루로 향했다. 동남각루의 중층 누각의 문을 열어 놓으면 안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사방을 돌면서 동남각루를 촬영한 후 그 밑에 있는 벽돌로 쌓은 곳을 살펴본다. 동남각루 한 편에 굴뚝이 서 있다. 연도는 땅에 묻혀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벽돌로 삼면을 쌓은 곳이 바로 온돌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궁이도 보인다. 여름철에는 시원한 누각 위에서 쉴 수 있고, 날이 찬 겨울이 되면 온돌방에서 장용외영의 군사들이 따듯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화성의 건축물들은 대개가 이렇게 온돌방이 마련되어 있다. 지금과 같은 시절에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을 정조대왕은 꼼꼼하게 따져 계절에 따라 병사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마련한 것이다.
화성을 다 돌지 않고 동남각루 하나만 보아도 정조의 애민정신을 알 수 있다. 모처럼 돌아보려고 마음먹은 화성. 가장 먼저 눈에 띤 동남각루 앞에서 한참을 머무른다. 과연 이 시대에 정조대왕과 같은 지도자가 있다면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날이 춥고 눈이 내리는 날 동남가루는 정조대왕의 애민정신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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