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장은 5, 10일 장이다. 아침 일찍 김장장을 취재하기 위해 여주장으로 향했다. 50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여주장은 경기도 지역에서는 성남 모란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장으로 알려져 있다. 1960년대만 해도 여주에는 11곳의 5일장이 있었으나, 5일장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현재는 여주장을 비롯 가남장과 대신장만 그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예전과 같지 않은 5일장에는 한숨만 나돌아

 

김장장이라고 하지만 예전 같지가 않다. 예전 장이 들어섰던 골목에는 장사꾼의 노점 대신 차들이 주차가 되어 있다. 한편에서 깨며 조, 찹쌀, 기름 등을 파는 아주머니 한 분은 흥정을 하다가 말고 한숨을 내쉰다.

 

"이것들 다 집에서 농사 지으신 거예요?"

"아니지. 마을에서 사람들이 팔아달라는 것도 있고, 내가 농사를 지은 것도 있고."

"장사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어요?"

"한 30년이 넘었네. 벌써 그렇게 지나버렸어."

"예전 같지가 않은가 봐요."

"턱도 없어. 그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루에 10만원은 쉽게 벌어갖고 들어갔어. 그런데 요즈음은 일당 벌기도 힘들어."

"일당을 얼마나 치세요?"

"3만원."

 

참 간단한 물음과 대답이다. 하지만 그 안에 예전과는 다른 장 분위기가 담겨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눈속임은 하지 않는다는 아주머니는, 연신 지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사라고 소리를 지르지만 정작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은 많지가 않다.

 

  
▲ 깨, 팥, 기장, 보리 등 각종 곡물류 하루 종일 팔아도 일당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지나는 사람들을 불러보지만 흥정이 되지 않는다

  
▲ 기름 술병에 담은 기름. 들기름은 직접 짠 것이고, 콩기름은 수입 콩을 썼다고 하신다. 양심을 속이지는 않는다고 강조를 하시면서

 

그놈의 대형마트 때문에

 

장을 돌다가 김장거리를 파는 장사꾼에게 물어보았다. 어째 김장장인데도 물건이 많이 나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팔리지 않는데 잔뜩 쌓아놓기만 하면 뭘 하겠느냐는 대답이다.

 

"예전 같지가 않네요. 김장장이라는데."

"말도 말아요. 요즈음 사람들 김장 잘 안하잖아요. 여기저기서 김치를 만들어 판매를 하지를 않나. 이젠 김장도 한 겨울 양식이 아닌가 봐요."

"그래도 김치들은 먹어야 되지 않나요?"

"요새는 대형마트인가 무엇인가에서 배추 몇 포기만 사도 다 배달을 해주는데, 굳이 장에 나오겠어요. 앞으로 이 장사도 집어치워야 할 것 같아요."

 

답답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장 풍속도가 변해감을 알 만하다. 그 오랜 세월 서민들 먹을거리를 해결해 주던 5일장이 그나마 버티다 이제는 대형할인점에 밀려 더 빠르게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 김장장 예년에 비해 물량이 많이 줄었다

  
▲ 마늘 마늘을 팔고 있지만 정작 판매는 부진하다고 한다. 이젠 사람들이 집에서 김치를 담그는 것조차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란다

  
▲ 썰렁한 장거리 예전 장이 들어서 발디딜 틈이 없던 장거리는 주차장이 되어버렸다

 

마늘을 까는 손에서 어머니를 느끼다

 

철물점 앞을 지나는데 시끄럽다. 물건을 샀는데 중국 것이라며 바꾸어 달라고 할아버지 한분이 역정을 내신다. 요즘 중국 것 아닌 게 어딨냐는 말에 씁쓰레하다. 주변을 둘러본다. 정말 중국제 철물, 중국제 그릇, 중국제 옷, 중국제 신이다. 중국 어느 시장을 방불케 한다. 세상이 점점 우리 것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할머니 한 분이 마늘을 까고 계시다. 남들은 장갑이라도 끼는데, 그나마 맨손으로 마늘을 까신다. 그 손을 보면서 갑자기 코끝이 찡해온다. 투박하기만한 손. 굳은 살이 박인 마디. 까맣게 때가 낀 손톱. 어릴 적 찬물에 손이 시린지 호호 불어가며 김장을 담그시던 어머니가 그 손에 계셨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가 살만한 물건은 없다.

 

"많이 파셨어요?"

"아직 개시도 못했어."

"언제 다 팔고 가신데."

"그러게 말야. 오후에는 비가 온다고 그러는데. 하나라도 팔아야지."

 

그 하나라도 말에 가슴이 답답하다. 연세가 꽤 드신 것 같은데, 새벽 일찍 장에 나오셔서 아직도 하나도 팔지 못하셨다니.

 

 

"좀 일찍 나오셔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셨으면 많이 파셨을 텐데."

"아무 자리나 차지할 수가 없어. 이 자리도 다 임자가 있는 것이니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집에서 만든 두부라고 하기에, 두부 두 모를 사들고 돌아선다. 속으로는 그저 '오늘 다 팔고 가세요'라고 생각하지만 밖으로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어머니 생각이 나서다. 괜히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정이 넘치던 5일장은 그렇게 어머니 모습만 느끼게 만들고 말았다. (출처 : 오마이뉴스 / 2009,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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