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 맞이굿을 열다

 

수원시 팔달구 창룡문로 56번길에 거주하는 경기안택굿보존회 고성주 회장은 사회적 약자와 장애인들에게 남다른 정성을 쏟고 있는 사람이다, 늘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고성주 회장은 18살에 신이 내려 무속인이 된 강신무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강신무와는 달리 가계로 전해지는 세습강신무로 4100년 이상을 무가(巫家)로 전해진 집안이다.

 

이런 고성주 회장은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신도(수양부리)들을 위한 맞이굿을 연다. ‘진적굿이라고도 하는 맞이굿은 하늘에 있는 신령을 맞아들여 모든 사람들의 안녕과 수명장수 등을 축원하는 굿으로 천궁맞이라고도 부른다. 그런 고회장의 가을맞이굿인 단풍맞이굿이 24일 고성주 회장의 전안(신을 모셔 놓은 신당)에서 열렸다.

 

경기도 강신무계열의 굿은 많은 문서(무가)와 춤(거성), 기능, 음악(장단 및 소리) 등 뛰어난 재능을 필요로 한다. 그런 강신무들이 경기도의 굿을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한 때 일제의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한 미신(迷信)’이라는 해괴한 억누름과 개신교의 우상숭배라는 배척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전승되어졌다.

 

 

하지만 강신무들의 수난은 그런 외향적인 것보다 오히려 조선조 말에 재인들의 집단인 재인청(才人廳) 소속의 세습무계열인 화랭이들에게 더 많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화랭이들은 강신무들의 굿 행위를 막기 위해 굿으로 번 돈을 모두 압수하는가하면 심지어는 곤장을 치기도 해 강신무들은 조선조말부터 일제치하까지 지하실 등에 숨어서 굿을 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온 굿이 바로 경기도안택굿이다. 화려한 소리와 춤, 재담 등으로 이루어진 경기도안택굿은 음악과 춤, 많은 국문학적 자료인 무가 등 종합예술로 가장 훌륭한 우리의 문화유산이지만 아직도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러한 종합예술인 경기안택굿으로 이루어지는 고성주 회장의 맞이굿을 하는 날은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고성주 회장은 맞이굿을 열기 위해 일주일 전부터 준비를 한다. 그것은 맞이굿을 열기 위해 상을 차라는데 들어가는 많은 음식들을 직접 준비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편하게 모든 것을 사다 사용하지만 고 회장을 일일이 집에서 직접 준비를 한다. 또한 맞이굿을 할 때 2~3백명의 손님들이 먹을 음식장만도 직접 집에서 준비하기 때문이다.

 

 

올해 고성주 회장의 가을맞이인 단풍맞이굿은 음력 107일인 1124일에 행해졌다.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부정굿부터 시작이 되었다. 부정굿은 굿이 열리는 장소에 모인 모든 인간과 제장을 정화시키는 의식이다. 산바라기굿을 미친 후에는 고성주 회장이 가사장삼에 고깔을 쓰고 부채와 방울을 들고 천궁맞이를 진행했다.

 

천궁맞이는 신계에 있는 모든 신령들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그런 후에 경기도굿 12거리를 차례로 신복을 갈아입으며 진행한다. 올 고회장의 맞이굿에서는 고회장이 직접 가르친 춤꾼들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마당에 자리를 펴고 불을 밝힌 후 경기재인청에서 전해진 각종 춤을 추어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11시까지 계속된 고성주 회장의 맞이굿의 끝은 도깨비대감굿이다. 고회장의 맞이굿은 모든 신도들이 다 함께 흥겹게 뛰어노는 도깨비굿이 일품이다. 얼굴에 검정 칠을 한 참여자 모두가 집을 한 바퀴 돌아 지하로 내려가 지하에 마련된 무용연습실에서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누가나 춤을 추고 누구나 소리를 하고, 누구나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진정한 열린축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43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맞이굿을 봄, 가을 두 차례씩 열어온 고성주 회장.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굿이 아닌 대동의 축제인 경기안택굿이 하루 빨리 문화재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선사시대부터 전해진 맞이굿의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굿이 단절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우리 굿은 미신도 우상숭배도 아닌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대동의 열린축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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