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팔달구 화서 2동 산 41번지 일원에는 수원시 향토유적 제15호인 숙지산 화성 채석장이 소재한다. 이 숙지산은 높지 않은 산이지만, 화성을 축성할 때 많은 돌을 이곳에서 채석을 했던 곳이다.

 

화서전철역 부근 구 연초제조창의 건너편 숙지산 여러 곳에 분포하고 있으며, 화성을 축조하기 위한 성돌의 채석이 이루어졌던 유적으로, 팔달산과 함께 중요한 성돌의 공급원이었던 곳이다. 이곳에서 채석을 한 돌은 수레를 이용하여, 화성의 축성 장소까지 돌을 운반하였다. 숙지산에는 채석 당시의 쐐기 자국이 여러 곳에 남아있다.

 

 

많은 화성의 돌을 떠낸 숙지산

 

숙지산 앞에 조성한 숙지공원에는 이곳이 화성을 축성 할 때 돌을 뜨던 곳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하나 보인다.

 

돌 뜨던 터(=浮石所)라고 적어 놓았다. 이곳에서 돌을 떠서 화성의 축성 장소까지 옮겨갔는데, 그 명칭이 재미있다. ‘채석장(採石場)’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부석소(浮石所)’라고 한 것은, 아마도 돌을 떠 옮기는 광경을 묘사한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9월 21일 오후에 숙지산 채석장을 찾아가 보았다.

 

 

 

숙지공원에서 주차장 위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이곳에서 산길을 타고 오르다가 좌측 능선을 따라 오르다가 보면, 소나무 숲이 조성되어 있다. 수원은 어딜 가나 이런 소나무 숲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아마도 정조의 소나무길을 비롯해, 이렇게 소나무가 많은 것도 다 나름의 뜻이 있엇을 것이다.

 

소나무는 양지식물로 다른 나무들이 자라기 힘든 메마른 곳에서도,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바위 틈새에서도 자라나는 소나무들을 볼 수 가 있는 것도, 이렇게 소나무의 자생력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소나무는 사시사철 푸르른 색을 변하지 않으며, 강인한 인상을 주는 줄기 때문에, 대나무와 함께 변하지 않는 절개를 갖는다는 뜻으로 ‘송죽지절(松竹之節)’을 상징하거나 인품이 뛰어난 사람을 가르치는 ‘송교지수(松喬之壽)’라고 했다.

 

 덤불로 인해 접근조차 어려운 채석흔적

 

숙지산은 화성을 축성 할 때인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까지 패석을 한 곳이다. 먼저 정으로 구멍을 파고, 그 구멍 안에 물푸레나무나 밤나무로 쐐기를 박는다. 그런 다음 나무에 물을 부어놓으면, 나무가 부풀어지는 힘으로 돌을 갈라놓는다. 현재 화성을 돌다가 보면, 이렇게 성돌을 뜰 때 사용한 흔적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가 있다.

 

소나무 숲을 지나 동편으로 난 길을 가다가 보면, 그 좌측 아래에 돌을 뜬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곳은 유난히 바위가 많았던 곳이었나 보다. 칼로 자른 듯 암벽이 절개가 되어있는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런데 사진촬영을 하려고 하니, 도대체 앞으로 다가설 수가 없다. 덤불과 쓰러진 나무들로 인해 접근하기가 수월하지 않다.

 

이번 숙지산 채석장 답사도 그렇고, 지난번에 찾아갔던 수원시 향토유적 제4호인 창성사지도 그랬다. 도대체 주변에 잡초와 여러 가지 불필요한 것들이 널브러져 있어. 문화재관리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것일까? 문화재란 그것이 국보거나 향토유적이거나 모두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이렇게 방치가 되어있는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이렇게 관리를 하지 않고 있는 담당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말만 하면 인력이 부족하다느니, 예산이 없다느니 하고 떠들어 댄다. 하지만 정말 우리고장의 문화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한 번 찾아보기라도 했을 것이다. 말로만 떠들어대는 문화재 사랑. 그런 다중적인 마음 씀씀이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은 오늘도 퇴락하고 깨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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