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할미 오는 날 며느리와 오면 진눈깨비, 딸과 오면 바람 불어

 

우리나라의 절기는 음력으로 이루어진다. 올해 224일은 음력으로 2월 초하루다. 이 날은 영등할머니가 땅으로 내려오는 날로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한다. 영등할머니는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려왔다가 음력 215일에 세상을 두루 돌아보고 올라간다고 한다. 영등할머니가 내려올 때는 수비(=수배)들이 함께 따라온다고 속설에 전한다.

 

수비는 수배(隨陪)’라고 표기되기도 한다. 서울·경기지역의 옛 재수굿에서는 굿의 본거리를 모두 놀고 난 다음, 뒷전거리에서 다른 여러 잡귀잡신과 함께 수비를 반드시 놀렸다. 이는 굿을 아무리 잘해도 뒷전에서 먹을 것을 찾아 떠도는 잡귀인 수비를 잘 풀어먹이지 않으면 굿이 영험을 얻지 못한다는 속설 때문이다.

 

1930년대 오산(烏山) 박수 이종만(경기재인청 도산주)무가를 보면 상청(上廳) 서른여덟 수비, 중청(中廳) 스물여덟 수비, 하청(下廳)은 열여덟 수비, 우중간 남 수비, 좌중간 여 수비, 벼루 잡던 수비, 책 잡던 수비, 군웅왕신 수비, 손님별상 수비, 해산영산에 간 수비, 수살영산에 간 수비, 먼 길 객사 수비, 언덕 아래 낙상 수비, 염병질병에 돌아간 수비, 쥐통객사에 간 수비, 고뿔감기에 간 수비, 열삼애삼에 간 수비, 여러 각 항 수비들아, 많이 먹고 네 가거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많은 수비들이 음력 21일 영등할머니가 내려올 때 함께 따라온다는 것이다. 영등할머니가 내려오는 1일과 올라가는 15일에는 정화수를 떠놓고, 소반에 떡을 해서 놓은 후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영등제>라고 한다. 영등할머니는 주제가 여성이므로 영등제는 남자들은 관여하지 않고 주부들이 제를 지낸다. 영등할머니가 내려오는 음력 21일에는 물을 동이에 떠놓고, 그 이후에는 15일까지 접시에 물을 떠 놓는다.

 

 

볏가리대 허물며 풍년기원도 염원

 

영등할머니가 내려오는 날 진눈깨비가 오면 <물영등>이 들어 그 해에는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 와는 달리 바람이 많이 불면 그 해는 <바람영등>이 들어 흉년이 든다고 한다. 이날 진눈깨비가 오는 것은 딸을 하늘에 두고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영등할머니가 며느리의 다홍치마가 비에 젖게 만들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와는 반대로 바람이 부는 것은 딸을 데리고 내려오기 때문에 딸의 다홍치마가 바람에 날려 자랑을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영등할머니도 며느리보다는 딸이 남들에게 잘 보이기를 바란다는 인간다운 면이 보여 재미있다. 지금은 사라진 풍습이지만 예전에는 어전에서 신하들에게 <중화척>이라는 자를 내려주기도 했다.

 

정월 대보름에 시골에서는 커다란 대에 곡식주머니를 단 <볏가리대>를 세운다. 이 볏가리대는 음력 21일에 내리게 되는데, 볏가리대를 내리면서 그 대에 달린 곡식주머니를 가마에 넣으면서 천석이요 만석이요를 외친다. 그 해에 풍년이 들어 농사의 소출이 천선, 만석이 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 볏가리대에서 내린 쌀로 흰떡을 해 먹는다. 이 흰떡은 솔잎 위에 놓아 쪄서 만들므로 이 떡을 <솔떡>이라고 한다. 이 떡은 콩과 팥을 안에 넣고 찐다. 솔떡은 큰 것은 주먹만 하고 작은 것은 계란만 하게 만든다. 이 떡을 집안의 노비들에게 나이수대로 먹이는데 이때부터 농사일이 시작하게 되므로 기운을 북돋기 위함으로 보인다.

 

 

집집마다 콩을 볶는 음력 2월 초하루

 

농촌에서는 음력 2월 초하루에 집집마다 콩을 볶았다. 솥에 콩을 넣고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타지 않도록 주걱으로 잘 지으면서 달달 볶아라. 콩알을 볶아라. 새알도 볶고, 쥐알도 볶아라.”라고 한다. 이날 콩을 볶아먹으면 쥐와 새들이 곡식을 축내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음력절기로 보는 우리의 풍습. 지금은 전근대적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음력절기는 우리 선조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였다고 본다. 이런 지혜를 다 잃어버린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주체성도 함께 잃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옛 풍속을 되돌아보는 것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나 고칠현심제(古七現三制)’라는 말이 허황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은 볏가리대를 용인 한국민속촌이나 찾아가야 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당에 세워놓은 후 영등할머니가 내려온다는 음력 21일에 내렸다. 볏가리대를 내릴 때는 주머니 안에 넣어놓은 쌀, 수수, 기장, , 밭 등을 볏가리대 밑에 놓은 가마니에 넣으면서 천석·만석을 외치는 풍속이 있었지만, 이제는 볏가리대를 보기도 쉽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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