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6일, 오후까지 일을 보고 잠시 광한루원에 들렸다. 걸어서 20여분, 카메라 하나를 걸머메고 천천히 걸어 광한루원까지 가는 길에, 은행잎이 떨어져 온통 세상이 노랗게 변해버렸다. 광한루원은 명승으로 지정이 되어있는 곳이다. 광한루원이야 유명한 곳이고 수많은 소개가 된 곳이니, 구태여 여기서 또 다시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광한루원 한편에는 ‘월매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언제 적에 조성한 것인지는 몰라도 춘향전에 나오는 정경을 본 따 축조를 했을 것이다. 담벼락 한편에 은행나무가 서 있어. 초가 위에 노랗게 떨어진 은행잎이 아름답다. 월매의 집은 대문채와 안채, 그리고 춘향이와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별채인 부용당으로 꾸며져 있다.


전형적인 민가를 잘 나타내고 있어

물론 월매의 집이 문화재는 아니다. 그리고 예부터 있던 집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이 집을 돌아보면, 예전 민가의 형태를 잘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월매의 집 앞에는 이런 안내판이 서 있다.


월매(月梅)집 - 조선시대 우리나라 고전 <춘향전>의 무대가 된 집이다. 남원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광한루 구경 길에 올랐을 때, 그네를 타고 있던 성춘향에게 반하여 두 사람이 백년가약을 맺은 집으로 춘향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월매집이라고 하였다.

이 집은 돌담 위에 짚으로 이엉을 올렸으며, 대문은 네 칸이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우측 한 칸은 대문채인 하인의 방이고, 대문, 그리고 좌측 두 칸은 광으로 사용을 한다. 그 옆에는 한 칸으로 지은 측간이 자리한다.

그 측간위에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어 노랑 은행잎이 떨어져 가을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누가 가을은 붉다고 하였는가? 이 노랑 은행잎이야말로 가을을 알리는 가장 멋진 색이 아닐까 한다.

다섯 칸으로 구성한 안채 훌륭하네.

월매의 집 안채는 대문채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자리한다. - 자로 서 있는 안채는 모두 다섯 칸으로 구성이 되어있다. 집을 바라다보면서 좌측으로부터 부엌이 자리하고, 부엌 옆에는 두 칸의 안방이 있다. 그리고 한 칸의 마루방과 맨 우측에 한 칸의 건넌방이 있다. 건넌방 앞으로는 높임마루를 놓고 정자와 같이 난간을 둘렀다.

뒤편으로 돌아가면 안방과 대청까지 연결하여 툇마루를 놓았다. 그리고 건넌방 뒤로는 문을 달아 불을 땔 수 있는 아궁이를 놓은 듯하다. 문마다 잠겨있어 안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이정도 집이라면, 민초들의 집 치고는 상당히 좋은 집이라는 생각이다.

안채의 앞면이다. 가끔은 앞에 굴뚝을 놓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 사진 좌측 부엌쪽에도 없다





이런 세상에 집을 돌아보니 굴뚝이 없네

옆에 서 있는 ‘부용당’은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이 대문채와 안채만 갖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초가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집을 돌아보다가 그만 실소를 하고 만다. 그래도 명승에 마련한 집이고, 더욱 춘향전에 나오는 대목으로 꾸민 집이다. 그런데 대문채를 들어서면 대문채 방 앞에 <행랑채 - 방자가 식사하는 장면입니다>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방자가 왜 월매네 집의 행랑채에 묵고 있을까? 그것이야 이도령이 부용당에서 춘향이와 사랑 놀음에 빠져있으니, 이 대문채 행랑방에서 방자가 밥을 좀 먹기로서니 무엇이 문제이랴. 그런데 안채를 돌아보다가 정말 어이가 없는 경우를 본다.

뒤켠에도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연도도 없다. 만일 연도가 있다면 축대와 비슷하거나 조금 아래로 내려가 지나가는 것이 보여야만 한다



안채 부엌에는 향단이가 불을 때고 있는 모형이 보인다. 이 안채의 구성으로 보아서 적어도 굴뚝이 두 개가 있어야 한다. 안방에서 나오는 굴뚝과 건넌방에서 나오는 굴뚝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연도도 없고 굴뚝도 없다. 이런 모습을 보다가 피식 웃고 만다. 불 때는 향단이가 아마 질식해서 죽을 것이라는.

측면에도 역시 굴뚝이 보이지 않는다. 이 집에는 두 개의 굴뚝이 서 있어야 한다. 안방에서 나오는 굴뚝과 건넌방 아궁이에서 불을 때면 나오는 굴뚝. 그런데 굴뚝이 없다. 보일러를 옛날에도 썼는지?


명색이 명승 안에 마련한 집이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 곳 안에 마련한 집에 굴뚝이 없다니. 굴뚝 하나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 이런 경우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그저 건성으로 대충 만들어 놓고 보여주는 전시행정. 참으로 멋진 월매네 집의 ‘옥에 티’란 생각이다.

  1. 로앤티프16 2011.11.07 12:21 신고

    안타깝군요.
    굴뚝 한 두개 만드는게 그리 어려운일도 아니였을텐데 말입니다.
    전시행정의 진수군요.

  2. 온누리 온누리49 2011.11.07 13:20 신고

    일보러 갑니다
    편안한 시간들이시기를.....

  3. 새라새 2011.11.07 13:28 신고

    사소한 부분을 소홀하였다 온누리님한테 딱~~ 걸렸네요..
    아마도 월매네는 수입산 보일러를 사용했을지도..ㅋ

  4. 꽃보다미선 2011.11.07 14:34 신고

    일반인이라면 생각지도 못했을 굴뚝을 ㅎㅎ 온누리님에게 딱 걸렸네요 정말 ㅎㅎ
    옥의티 안타깝네요 ^^

  5. 로즈힐 2011.11.07 14:52

    정말 전시행정의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6. 클라우드 2011.11.07 15:10

    지붕이 노랗게 지붕계량 했어요.^^
    전시행정 이지만,마음에 정겨움을 듬뿍 안겨 줍니다.
    행복하세요.^^

  7. Zoom-in 2011.11.07 17:28 신고

    옥에 티지만 온누리님만 발견할 수 있는 옥에 티입니다.

  8. 아랴 2011.11.07 18:27 신고

    ㅎㅎ
    윗님 말씀하신대루 ~~ 누리님만이 볼수있는 ,,,발견할수있는 .....그런 대목
    아마두 저두 구경하고 했다면 전체벅인 분위기만 살짝 훔쳐보고 지나쳤을꺼예욤
    많은것들을 보고 ,,배웁니다 .
    늘 감사해요~
    담에 요런거 발견하면 ...옆짝지에게 아는체좀 해야겟어요
    '굴뚝이없군 ,,쩝 ;;;이래서야 ㅉ ㅉ ㅎㅎ

    그나저나 은행잎들을 보니 ...누가 가을을 붉디붉은색이라 햇는가~~~
    너무 시적인 표현이예욤 ~~~~~
    울 아파트 앞 풍경도 노란은행잎들이 길바닥천지에 깔여있어 ~
    오늘에서야 가을정취 흠뻑 느끼며 작업실로 갔지요 ^^

    맞아요~~가을은 노란은행잎들로부터 전해져옴을 ^^

  9. 행복한다니엘 2011.11.07 18:58 신고

    정말 아쉬운 부분 이네요..첨에 봤을때 참 예쁘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참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10. 파리아줌마 2011.11.07 21:16

    신경을 세심하게 쓰지 않은듯하군요,
    온누리님이시니깐 아셨겠지,
    전 굴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둘러보았을것 같습니다.

  11. 2011.11.07 21:47

    비밀댓글입니다

  12. 아빠소 2011.11.07 21:56 신고

    사극 드라마 한편 촬영해도 철저한 고증이 필요하듯 이런 옛집 하나 조성할때도
    많은 신경을 썼으면 좋았겠네요. 저도 파리아줌마 말처럼 굴뚝 없다는 생각도 못했는데! ㅡㅡ;

  13. 예또보 2011.11.07 23:07 신고

    아 그렇군요
    옥의 티라고 해야할까요 단순히 무성의라고 해야 할까요 ㅎ
    좀더 성의 있게 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잘보고 갑니다

  14. 저녁노을 2011.11.08 05:35

    시골집....하면 굴뚝이 떠오르는데 말이죠.ㅎㅎ

    잘 보고가요

  15. 바닐라로맨스 2011.11.08 07:29 신고

    아... 디테일하시군요!+_+
    저는 이상한점을 몰랐는데...ㅎ

  16. 2011.11.08 08:07

    비밀댓글입니다

  17. 돈재미 2011.11.08 08:12 신고

    난방은 예나 지금이나 핵심중에 최곱니다.
    단순히 불때서 난방이 아니라 옛날에는
    식구들의 밥을 만드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굴뚝이 없다는 것은 밥도 않해먹고
    겨울에 난방도 않했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현재로 설명하면 집은 그럴싸 하게 지어놨는데
    보일러를 않놓고 싱크대와 가스를 설치 하지 않은것과
    같은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들이 공무원을 하니 이런 결과가 나온것 같습니다.

  18. 실비단안개 2011.11.08 08:54

    잘 읽었습니다.
    토요일에 남원쪽으로 가기에 시간이 나면 춘향골에 들려볼까 하고 클릭했더니 온누리님의 포스트네요.
    남원 문화관광과 뜨끔하겠습니다.

    건강 하시지요?

전남 무안군 심향면 유교리 698에 소재한 나상열 가옥은, 중요민속문화재 제167호이다. 마을에서는 이 집을 ‘천석지기의 집’ 이라고 부른다. 천석지기라는 실감이 나지 않는 나로서는 그것이 어느 정도의 부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대농의 집이라고 부르는 이 집을 돌아보고 나서야, 그 부의 척도를 알았다.

나상열 가옥을 찾아가 보았다. 약 90여 년 전에 지은 안채와 일제 때 지은 창고, 그리고 문간채와 중문채가 자리를 하고 있다. 나상열 가옥은 전체적으로 3단의 구조로 축조되었다. 맨 위에는 안채가 있고, 계단을 내려 맞은편에 창고와 중문채가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 맨 아래편 3단에는 대문과 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부호답게 많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고 하는데, 집의 전체적인 구조로 보아 예전의 건물에서 사라진 부분이 있는 듯하다.


대문도 창고로 사용한 부호의 집

나상열가옥의 대문은 일반적인 집과는 다르다. 커다란 대문을 갖고 있을 경우, 그 양편은 문간채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높고 큰 나상열 가옥의 대문은 다르다. 문 앞과 안 편이 모두 판자문을 만들어 놓았다. 담벼락 위에 낸 들창으로 안을 들여다보니, 바닥 등이 이것도 곡식창고로 이용했음을 항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집에는 여기저기 곳곳에 곡식창고를 만들어 놓았다는 소리다. 그만큼 천석지기의 집에는 다양한 창고가 필요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 대문에 붙은 창고는 원 곡식창고에서 곡물을 밖으로 운반하기 전에 사용한. 중간 창고 역할을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행랑채는 대문 안을 들어서면서 좌측으로 나 있다. 이곳도 너른 광을 만들고 그 한편 구석에 방을 들여 놓았다. 너른 공간을 최대한으로 확보를 한 형태다. 나상열 가옥이 오밀조밀한 멋을 벗어나 시원하게 보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부엌과 연결된 마루의 용도는?


나상열 가옥에서 눈에 띠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안채에 딸린 부엌이다. 이 부엌은 안쪽과 문쪽에 작은 방을 두었다. 아마 안채에서 일을 하는 집안의 부녀자들이 이용한 듯하다. 그런데 그 방 사이에 마루가 있다. 앞을 문을 단 것으로 보아 대청은 아니다. 마루방의 한편에는 벽에 붙여 계단식으로 짠 것이 보인다.

가만히 보니 그곳을 부엌에서 사용하는 용기를 보관하는 곳인가 보다. 집에서 일을 하는 많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있었을 테니, 그만큼 집안에서 사용하는 용기도 많았을 것이다. 많은 용기를 보관하기 위해, 부엌과 방 사이에 별도로 장식장처럼 꾸며놓았다. 그런 것들을 보관하기 위한 마루방을 만들 정도로 세심한 배려를 하고 지은 셈이다

안채 뒤편에 있는 석빙고

나상열 가옥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집안에 석빙고가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축대 안에 만들어 놓는 석빙고는 많은 인원이 기거하는 절집 같은 곳에서 볼 수 있다.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만큼 음식을 만들 때도 많은 양의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그 많은 양의 음식재료를 날마다 사들이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러한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해 안채의 뒤편에 굴을 파고 석빙고를 만들었다. 이 석빙고는 음식을 보관하는 용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의 적당한 숙성까지도 도왔을 것이다. 결국 이 집안의 음식은 항상 신선한 것을 먹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우물 안에서 자라나는 나무의 정체는?

우물에는 도르래를 달아서 사용을 한 흔적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많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물의 사용양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다보면 음식을 조리하는 집안 아낙네들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런데 사용하는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우물의 양편에 기둥을 세워 도르래를 달았다.


우물을 보기 위해 가까이 갔다. 안을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우물 안에 등나무와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다. 왜 이 안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을까? 저 나무는 어떻게 저곳에서 자라게 된 것이고, 언제부터 저렇게 자라고 있는 것일까? 무성한 잎이 싱싱해 보인다. 그 밑에는 물이 있다는 소리다. 나상열 가옥을 돌아보면 여기저기 수수께끼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


반전의 미학, 아름다운 돌담장

집안의 전체를 돌담장으로 쌓은 나상열 가옥. 그래서 전체적으로 무거운 집의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또한 그 무거움을 덜어내는 하나는 담장의 한편이 열려있기 때문이다. 안채를 보고 좌측의 담장 앞으로는 계단이 아닌 비탈로 조성을 하였다. 곡식을 나르기 위한 수레가 다니던 길이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너른 대지위에 시원하게 조성된 나상열 가옥에서, 정감이 가는 유일한 축조물이 바로 돌담장이다. 이 담장은 담장에 붙은 대문과 행랑채까지도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에는 수레를 끌 수 있는 비탈로 여유를 부렸다. 천석지기 집이라는 나상열 가옥에서 보이는 전체적인 여유. 그것은 생활의 여유이기도 하다.

  1. 모과 2011.11.05 14:47

    엄청부자였던게 여기저기서 보입니다.
    만석지기 의 집은 어땠을 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돌담을 한 집에는 뱀과 지네가 있다고 하는데
    그말이 맞나요?
    우리 시골집이 돌담인데 뱀이 마당까지 나왓고
    이불을 펴니 속에 지네가 있었어요.

  2. Eco_Hong 2011.11.05 16:10 신고

    세월의 흔적이 많이 묻여 있어서 고향 생각이 납니다. :)

  3. 광제 2011.11.05 16:25 신고

    대단한 규모의 가옥이네요...
    거느린 식솔이 얼마나 많았으면...ㅎ
    우물에 피어난 식물은 양치류의 잡초 같은데요...
    오랫동안 방치해서 생겨난....ㅎ
    즐건 주말 보내시구요^^

  4. 클라우드 2011.11.05 16:32

    주말 오후,마음에 여유로움으로 쉬어 갑니다.
    하늘이 흐려져만 가는 주말 오후,마음만은 쿨 하시길 바래요.^^

  5. 행복한다니엘 2011.11.05 17:12 신고

    석빙고 까지 갖추었네요. 규모를 짐작케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6. 핑크윤자 2011.11.05 17:30 신고

    잘 보고 갑니다. 건강 잘 돌보시는것 잊지마시고 좋은 주말 보내시길 빌겠습니다.

  7. 해바라기 2011.11.05 18:31

    우물안에 등나무가 자란다니 기이하네요.
    천석지기의 집이 담도 다르네요. 그 시대를 생각해 봅니다.
    잘 보고 갑니다.^^*

  8. pennpenn 2011.11.05 19:06 신고

    돌 당장이 참 멋집니다.
    토요일 저녁을 편안하게 보내세요~

  9. Zoom-in 2011.11.05 22:29 신고

    집안에 석빙고가 있다는 걸 봐도 살림의 규모를 엿볼 수 있네요.
    천석지기의 부를 조금은 짐작할 만 합니다.

  10. 예또보 2011.11.05 23:05 신고

    정말 대단한 부자의 집이네요
    석빙고를 집안에 들여놓을 정도로 대단하네요

  11. 이츠하크 2011.11.05 23:29 신고

    오늘은 답사를 나가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아아~ 남부지방에 비가 온다고 했지요. 지금도 내리나 모르겠네요.
    간만히 휴식할 수 있는 주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12. 빠리불어 2011.11.05 23:34

    천석지기면... 엄청난 부자네여

    긍까 만석지기 천석지기.. 감은 안오지만 부자라고 했던 건 기억난다는 ㅎㅎ

    행복하고 편안한 주말, 온누리님 ^^*

  13. 소인배닷컴 2011.11.06 00:57 신고

    오오~ 대단하군요.
    잘 보고 갑니다.

  14. 대한모 황효순 2011.11.06 10:15

    관리가 안되서 그런지~
    으스스에 귀신 나올것 같아요.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를 지극한 효심으로 모신 효자였다. <난중일기>에는 이러한 이충무공의 내력을 적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3년 6월에서 12월 사이에 팔순에 가까운 어머니를, 여수 웅천동 송현마을 정대수 장군의 집에 모셔다 놓고 수시로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하루는 노모를 뵙기 위해 일찍 배를 타고 송현마을로 문안을 드리러 왔는데, 기운이 많이 떨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장군은 어머니를 뵈러 갈 때는 흰 머리카락을 모두 뽑고는 했는데, 이는 늙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어머니께서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해서였다고.


장군의 모친이 살던 집터를 찾아가다.

10일 아침 일찍 여수 수산시장에 볼일이 있어 내려갔다. 여수에 사는 지인을 만나 함께 장을 보고 오는 길에, 장군의 어머니께서 사셨다는 집터를 찾아갔다. 길가에는 ‘이충무공 어머님 사시던 곳’이란 푯말이 붙어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요즘 주변 정리를 하느라, 한창 공사 중이다. 전남 여수시 웅천동 송현마을 1420-1번지. 옛 집터 인 듯한 곳에는 거북선에 비를 세운 형상물이 있는데, 이 근처 어디인가 이충무공의 모친이 5년간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거북비가 서 있는 안으로 들어서면 정면 7칸 정도에, 측면 두 칸 반 정도의 팔작 겹처마 지붕으로 된 집이 있다. 현재 이 집은 사람들이 거주를 하고 있는데, 현재 거주를 하시는 분은 정평호(남, 79세)로 임지뢔란 시 활동을 하던 정대수 장군의 후손이라고 한다. 이분은 임진왜란 때부터 선조들이 대대로 이 터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고택다운 옛집, 1930년대 지은 것으로 전해져

현재의 집주인도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고 한다. 임진왜란 이후 조상 대대로 이 집터에서 살았다는 분들. 집터는 옛집 터지만, 집은 그동안 여러 번 개축을 한 것인지 옛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재 이 집은 예전 충무공의 어머니께서 사시던 집은 아니다. 당시 발굴을 할 때 대들보 등이 발굴된 곳은, 현재 정대수 장군의 후손인 정평호옹이 살고 계시는 집의 부엌과 장독대에 걸쳐 있다고 전한다.

현재 주인이 거주하고 있는 집이 옛 선조들이 살던 집터에 나중에 보수, 개축을 했다고 보면,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는 아마 사랑채나 별채에 기거를 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당시 이 집에는 정대수 장군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문 앞에 선 안내문에 보면 「1972년 옛 집이 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에서 대들보, 마룻대, 세살창문과 같은 집 구조물과 맷돌, 디딜방아용 절구, 솥 같은 세간들을 찾아냈다」고 적고 있다.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 주변으로는 수령 300년이 넘는 팽나무가 서 있다. 보호수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팽나무는 수고가 25m에, 나무의 둘레는 5.2m나 되는 거목이다.



문화재 발굴조사 후 문화재지정도 고려 해

집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사집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주춧돌은 원형으로 다듬었으며, 그 위에 팔각기둥을 세웠다. 사방에는 처마 끝에 활주를 받쳐 놓았으며, 전체적으로 보아도 고택의 멋스러움이 그대로 배어있다.

여수시 문화재 관련 담당자는 내년에 발굴에 필요한 예산 신청을 했다고 한다. 발굴 후에 이 터가 정확하게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가 살던 집이라고 밝혀진다면, 이곳에 복원계획도 고려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현재의 집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만일 이 터가 발굴조사 후에도 정확한 고증이 들어나지 않는다면, 관광자원으로 활용을 할 것이라고 한다. 어차피 난중일기에 밝혔듯이, 송현마을에 어머니를 모셨다고 기록이 있고, 현재의 집이 당시 정대수 장군의 집터이기 때문이다. 충신이요 효자인 이충무공의 어머니가 살았다는 집터. 그곳에는 충무공에 관한 역사를 안내판을 통해 배울 수 있지만, 아직 발굴이 끝나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크다.

  1. 이전 댓글 더보기
  2. 행복한다니엘 2011.10.11 06:49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3. garden0817 2011.10.11 06:51 신고

    저곳에서 자라나셨겠군요 오 너무나 신기합니다 ㅎ
    잘보고갑니다 좋은하루되세요

  4. 주리니 2011.10.11 06:54

    그렇네요.
    엊그제 충무공의 명량해전에 관한 부분을 4D로 보고 와선지
    더 애잔한 맘이 있는데 이렇게 방치 돼 있군요...

  5. 산들강 2011.10.11 07:04 신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생각납니다.

  6. 해바라기 2011.10.11 07:16

    옳은 말씀입니다. 옛집을 복원해야 겠네요.
    이순신 장군을 다시 한번 불러보는 아침이었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7. 참교육 2011.10.11 07:28 신고

    충무공 어머님이... 처음 알았습니다.

  8. 온누리 온누리49 2011.10.11 07:28 신고

    아침부터 복지관에 계신 어르신들 500분에게 짜장을 해 드리는 날이라서
    부산합니다
    천상 다녀와 뵈야할 것 같습니다
    좀 이따 떠납니다. 좋은 날들 되세요^^

  9. 유키No 2011.10.11 07:28 신고

    복원이 되었으면참 좋을텐데요 흠.

    잘보고 갑니다.

  10. 아이엠피터 2011.10.11 07:34 신고

    어설픈 축제에 쓰는 예산보다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문화유산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욱 필요하고 현 시대 어른들의 몫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11. 파리아줌마 2011.10.11 08:19

    400년전 모습 그대로 간직해서 유물전시관으로 사용하면
    좋을것 같습니다. 복원할수 있으면 좋겠어요~

  12. 朱雀 2011.10.11 08:27 신고

    그러게요. 옛집을 복원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네요...

  13. 원초적한량 2011.10.11 08:32

    관리가 잘안되어 있는것이 안타깝네요..충무공 어머님 흔적이 남은 곳인데..
    글 잘보고 갑니다

  14. 꽃보다미선 2011.10.11 08:41 신고

    여수에 연고지가 있어 자주가는곳인데
    아직까지 저런곳이 존재하는줄 몰랐네요. 세상에 -_-;;
    이런 귀한 정보는 어디서 구하시는지 ^^;;
    꼭 한번 가봐야겠네요. ㅎㅎ

  15. 박씨아저씨 2011.10.11 09:09

    맞는말씀입니다~~~ 공감합니다~

  16. 아빠소 2011.10.11 09:35 신고

    저도 여수에 한참을 살았지만 잘 알려지지 않는곳이라 방문한 적이 없네요.
    근데 고향이 충남예산 쪽이라던데, 이곳은 그저 충무공이 좌수영에 재임시 따라와서
    잠시 사셨던 곳 아닙니까? 문화재적인 가치는 좀 떨어지지 않을까요?

  17. ★안다★ 2011.10.11 09:40 신고

    충무공만큼 소중한 존재가 그의 어머니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정말 소중한 곳을 답사하고 오셨군요..
    정말 멋지십니다,온누리님~!

  18. @파란연필@ 2011.10.11 10:00 신고

    이순신 장군님의 모친께서 사셨던 터가 보존되어 있네요..
    잘보구 갑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9. J.mom 2011.10.11 11:04 신고

    위인도 위인이지만..위인을 키워내신 그 부모님이 진정한 위인이 아닌가 싶어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by 아내-

  20. Zoom-in 2011.10.11 11:15 신고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 충무공이 있겠지요.
    지금 누가 살고있군요. 잘 보전되었으면 합니다.

  21. Moncler Jackets Sale 2011.10.12 12:59

    깨돌이가 앞을 볼 수 있도록
    좋은 분이 치료해 주셨으면 합니다.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55번지에 소재한 사적 제346호 ‘무장현 관아와 읍성’. 몇 번이고 찾아가고 싶었던 길을 번번이 뒤돌아서야 했던 곳이다. 고창군 답사를 서너 번을 했지만, 이상하게 이곳까지 갈 수가 없었다. 답사 중 날이 저물어서이다. 지난 9월 4일 마음을 먹고 찾아간 무장읍성.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무장읍성은 한창 공사중이었다.

무장읍성은 1991년 2월 21일에 사적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성의 남문인 진무루에서 무장초등학교 뒷산을 거쳐, 해리면으로 가는 도로의 좌편까지 뻗어 있는 성이다. 성의 둘레는 약 1,4km 정도이며 넓이는 43,847평이다.


토성과 석성으로 쌓은 무장읍성

조선 태종 17년인 1417년에 병마사 김저래가 여러 고을의 백성과 승려 등, 주민 2만여 명을 동원하여 흙과 돌을 섞어 축조하였다고 하는 무장읍성. 성내에는 객사, 동헌, 진무루 등 옛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 주변에는 여러 가지 유구들이 산재해 있다. 여기저기 복원과 보수 공사를 하느라 파헤쳐진 무장읍성. 진무루를 지나 객사를 거쳐 뒤편에 있는 동헌건물인 취백당으로 향한다.

만 4개월 동안 2만 여명을 동원하여 축성을 하였다는 무장읍성의 동헌. 동헌은 관아에서 업무를 처리하던 중심 건물로, 당시 무장현감이 집무를 보던 곳이다. 조선 명종 20년인 1565년에 세웠으며 한때 무장초등학교 교실로 사용하기도 하여 변형이 된 것을, 1989년 원형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정면 6칸, 측면 4칸 규모의 무장동헌은 멀리서 보아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팔작 지붕으로 지은 동헌 건물은 겹처마로 구성해, 전체적으로는 장중한 느낌을 주는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동헌은 현재 전라북도 지정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동헌 취백당

무장읍성의 동헌건물은 객사 뒤편에 자리한다. 동헌 뒤편으로는 토성으로 쌓은 성이 있으며, 동한으로 들어가는 길은 아름드리나무들이 줄 지어 서 있어, 무장읍성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동헌을 찾았을 때는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정면 6칸인 동헌 건물의 중앙에는 <취백당>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아무리 동헌 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넘치는 취흥을 이기지 못해 붙인 이름인가 보다. 대청 안에는 많은 시판들이 걸려있는데, 그 중에는 최집의 취백당기를 비롯해 김하연의 찰미루기, 정곤의 아관정기, 우여무의 동헌시, 이덕형의 동헌시, 정홍명의 동헌시, 기준의 동백정시가 보인다.

이런 시판으로 보아 동헌을 동백정이라고도 불렀는가보다. 무장은 무송과 장사를 합한 고을이라 하여 동헌 이름을 ‘송사(松沙)’라 하였는데, 영조 때 최집이 부임을 해와 ‘취백(翠白)’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장중한 느낌을 주는 취백당

단 한 동의 건물이 사람에게 주는 느낌이 이리 장중할 수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마도 뒤편에 있는 토성이나, 주변에 늘어선 아름드리나무들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다. 날렵하게 솟아오른 처마 끝이 살아있는 듯하다. 아래는 넓고 위가 좁게 마련한 주초위에는 두리기둥을 사용하였다.




그러고 보니 두리기둥의 길이가 길어 건물 전체가 장중한 느낌을 주는 듯하다. 대청은 세 칸으로 마련하였으며 뒤편에는 판문을 달아냈다. 건물을 바라보며 좌측은 두 칸의 방을 한 칸 뒤로 밀어서 드렸으며, 우측은 마루 끝까지 방을 드렸다. 우측방은 따듯하게, 좌측 방은 시원하게 계절을 보낼 수 있을 듯하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면 뒤편전체를 복도마루로 마련한 것도 취백당의 특징이다. 아무래도 뒤편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한 배려로 보인다. 단 한 동의 건물이면서도 장중함을 느끼게 하는 취백당. 그 이름 속에는 솔처럼 푸른 기상을 지니고, 힌 모래처럼 그렇게 민초들의 삶 속에 녹아들어 고고함을 지키라는 뜻이 있는 듯하다. 취백당은 450년 세월을 그렇게 자리를 지켜오면서, 늘 푸른하늘을 동경했는가보다.

  1. 이전 댓글 더보기
  2. 귀여운걸 2011.09.27 07:58 신고

    와~ 푸르름과 깨끗함의 조화가 참 멋져요~
    온누리님 덕분에 언제나 편안히 구경 잘 하고 갑니다^^

  3. 세미예 2011.09.27 07:59 신고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를 오롯이 느낄 수 있어 참 좋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4. 朱雀 2011.09.27 08:06 신고

    정말 우리선조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좋네요.
    늘 건강하세요~^^

  5. 온누리 온누리49 2011.09.27 08:18 신고

    아침에 모처럼 잠시 틈을 냈습니다
    이제 나가야겠네요
    틈틈이 들려 문안드리겠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날 되세요
    오늘은 특별초대전을 준비합니다^^

  6. 2011.09.27 08:30

    비밀댓글입니다

  7. 무릉도원 2011.09.27 08:52 신고

    가을이라 그런지 한결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마음이 차분하게 정화되는 느낌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8. 워크뷰 2011.09.27 09:25 신고

    가을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원한 사진들 잘 보고 갑니다^^

  9. 카이사르l 2011.09.27 09:42 신고

    자연과 잘 어울리는것이 정말 아름답워요~

  10. 미스터브랜드 2011.09.27 09:45 신고

    이렇게 숨겨진 우리의 유적들이 너무 많은데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지내는 것 같습니다.
    저두 저 번달 고창 갔다가 선운사만 휙 댕겨왔네요.^^

  11. 광제 2011.09.27 09:50 신고

    주변의 풍광과 잘 어우러진 취백당의 모습이네요..
    덕분에 잘보고갑니다... 기분좋은 하루 보내시구요^^

  12. 솔브 2011.09.27 10:01

    시원한 하늘과 푸르른 나무와 풀, 그리고 아름다운 느낌의 문화재까지!
    정말 기분 좋은 풍경입니다^^

  13. 주리니 2011.09.27 10:16

    바라보기만 할뿐
    딱히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던 곳인데...
    조금 더 헤아려짐이 옵니당^^

  14. ♣에버그린♣ 2011.09.27 10:18 신고

    주변이 이쁜데요~
    잘 보았습니다.

  15. J.mom 2011.09.27 10:37 신고

    온누리님 포스팅 보면서 항상 전국팔도를 여행하는 기분이예요~^^
    덕분에 눈이 호강하고..감사드려요~^^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by 아내-

  16. 아빠소 2011.09.27 10:44 신고

    깨끗한게 저정도면 잘 보존되고 있는거라고 봐야겠지요?
    어떤곳은 낙서천지에 청소도 안돼있고, 마당에 잡초가 무성한곳이 태반이니~

  17. @파란연필@ 2011.09.27 11:09 신고

    단아한 풍경이 참 운치있고 좋아 보이네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18. 코기맘 2011.09.27 11:32 신고

    왠지 사람없을꺼같아요.저런곳좋죠...ㅎㅎ
    대청마루에앉으면 너무 시원할꺼같아요 ㅎㅎㅎㅎ
    유적지 가끔 놀러가는데 사람들 많으면 싫더라구요..이상하게 인적드문 곳이 더 운치있어요..ㅋㅋ

  19. 박씨아저씨 2011.09.27 11:50

    ㄱ런데 주변에 잡초가 무성한것이 전혀 관리를 안한듯한데요~
    관리하시는 분이 없나요?

  20. 굴뚝 토끼 2011.09.27 15:08 신고

    저런 멋진 건물이 사또님이 호령하던 관아라니 믿어지지 않습니다...^^

  21. 클라우드 2011.09.27 16:10

    모든것이 예쁨으로 와 닿습니다.
    청명한 가을이라서 그럴까요..?^^
    행복하세요.^^

전북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에 소재한 중요민속문화재 제26호인 김동수 가옥. 호남 부농의 상징인 이 가옥은 김동수의 육대조인 김명관이 정조 8년인 1784년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흔히 아흔 아홉 칸 집으로 불리는 김동수 가옥은, 처음으로 집을 지은 해수로 따지면 226년이 되었다.

청하산을 배경으로, 앞으로는 정읍의 젖줄인 동진강의 상류인 맑은 하천이 흐르고 있다. 김동수 가옥에는 대문채인 바깥사랑채, 사랑채와 중문채, 그리고 안채와 아녀자들이 외부의 여인네들과 만나서 담소를 즐기는 안사랑채가 별도로 있다는 점이다. 그 외에도 우리가 알 수 없는 외측이라는 건물과, 담 밖으로 지은 초가인 노비들이 묵는 '호지 집'이라고 하는 집이 여덟 채가 집 주위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중 두 채만 남아있다.

고택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건축미를 보인다는 정읍 김동수 가옥 사랑채 

부의 상징인 김동수 가옥

고택 답사를 하다가 만난 김동수 가옥. 참으로 대단한 가옥이라고 생각이 든다. 동서 65m, 남북 73m의 장방형 담장을 둘러, 그 안에 곳곳에 건물을 지었다. 한 채의 가옥이 이렇게 넓게 자리를 한 집은 많지가 않은 점도 이 집안 부의 내력을 알만하다.

김동수 가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담밖에 자리한 호지집이다. 솟을대문을 약간 비켜서 한 채가 있고, 담 밖 전후좌우에 모두 여덟 채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두 채만 남아있다. 호지집이란 말이 생소하다. 김동수 가옥을 방문하기 전에 수많은 고택을 답사했지만, 호지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동수 가옥 담 밖에 여덟채가 담장을 둘러 있었다고 하는 호지집.

노비가 살던 집이라고, 글쎄 그럴까?

이 호지집은 노비들이 기거를 하던 집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집이 자리하고 있는 형태를 본다면 단순히 노비집이라고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하다. '호지(護持)'란 수호하고 지켜낸다는 소리다. 또한 이 집들의 자리 배치를 보아도, 단순히 노비집이라고 하기에는 맞지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전후좌우에 두 채씩 배분을 해서 지었을까?

김동수 가옥은 부농의 상징이다. 집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을 보면 인근에 곡창지대가 자리하고 있다. 김동수 가옥을 둘러보면 이 집 안에 많은 곳간과 헛간들을 볼 수가 있다. 그만큼 많은 재물들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집안에 대문채나 중문채에도 방들이 있어, 굳이 담 밖인 외부에 몇 채의 집을 지어, 노비들을 그곳에 살게 했다는 것도 설들력이 부족하다.


김동수 가옥의 안채와, 대문채와 중문채 사이 한편에 자리한 외측

많은 양의 곡식과 재물이 있는 김동수 가옥은, 늘 도적을 맞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재물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집을 짓고, 집을 수호하는 사병들을 기거하게 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기에 단순히 ‘노비집’이라는 하지 않고, ‘호지가(護持家)’라고 했을 것이다.

즉 이 호지집에 묵는 노비들은 일을 하기 위한 노비이기보다는, 집을 지키는 경계의 업무를 지니고 있었던 사병들이 묵었다고 볼 수 있다. 사병을 양성한다는 것은 금지가 되어있는 시대에, 대신 노비라고 신분을 숨겼을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호지집에 사는 사람들은 기실 노비가 아닌, 노비로 가장한 김동수 가옥을 지키는 ‘사병(私兵)’이었을 확률이 더 크다.

  1. 온누리 온누리49 2011.08.01 19:50 신고

    오늘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쁘네요.
    저녁시간도 편안하시기 바랍니다^^

  2. †마법루시퍼† 2011.08.01 20:00 신고

    김동수의 권세가 대단했는 거죠..^^

  3. 아빠소 2011.08.01 20:18 신고

    히야~ 정말 대단한 세도가였겠군요. 유사시를 대비해서 평상시에도 그 많은 호지,노비들을 먹여
    살려야 했을테니.. 하긴 먹여살린게 아니지요. 그들이 김동수 일가를 먹여 살린거겠지만..

  4. 해바라기 2011.08.01 20:23

    김동수의 남아 있는 가옥 '호지집" 비교적 깨끗하게 보존이 되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8월 첫날 좋은 밤 되세요.^^

  5. 하늬아범 2011.08.01 23:00

    호지집
    잘 보고 갑니다
    즐겁고 행복한 8월 만드세요^^

  6. 파리아줌마 2011.08.02 09:30

    사병을 둘 정도로 대단한 부자였군요,
    호지 집 잘보았습니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