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에 불이 났다고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번에는 정읍시 내장동 590, 내장산에 소재한 내장사 대웅전에 불이나 전소가 되었다. 10월 31일 정읍시 소방당국에 의하면, 오전 2시 10분께 내장사 대웅전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신고를 받은 소방당국은 14대의 소방차와 경찰 및 시청직원 등 90여명이 현장에 출동해 진화를 했으나, 두 시간 만에 전소되었다는 것.

 

이번 화재로 목조건물인 대웅전이 전소되고, 대웅전 안에 모셔졌던 탱화 3점과 불상 1점, 소북 1점이 완전히 소실이 되었다. 다행히 내장사에는 당시 사부대중 10명이 있었으나, 대웅전에서 떨어진 곳에서 잠을 자는 바람에 인명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내장사 대웅전의 과거 모습

 

백제 때의 고찰인 내장사 대웅전

 

내장사는 백제 무왕 37년인 636년 영은조사가 백제의 신앙적 원찰로 삼아, 처음에는 ‘영은사’란 이름으로 창건한 절이다. 그 후 고려 숙종 3년인 1908년 행안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중창하였고, 조선 명종 22년인 1567년에 회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 중창하였다.

 

대웅전은 조선조 정조 3년인 1779년 영은대사가 시왕전과 함께 중수하였고, 요사를 크게 증축하였다. 이러한 대웅전은 1951년 한국동란으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1958년에 정읍시 입암면에 있던 보천교의 보화문 건물을, 다천스님이 그대로 옮겨 대웅전을 중건한 것이다.

 

  전소된 대웅전 - 사진제공 정읍소방서

 

화재로 전소한 대웅전, 아직 원인 규명 못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픔을 당한 내장사의 대웅전은, 최근에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내장사 대웅전 전소와 관련해 소방당국의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내부 CCTV를 확보해 분석한 결과, 전기난로 주변에서 불꽃 발화가 확인됐다’며 그 이상은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전한다.

 

아무리 지정문화재가 아니라고 해도 그렇다. 문화재 등록을 추진 중에 있었다고 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전각이라는 뜻이다. 그런 대웅전이 완전히 소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문화재의 안전에 대해 불감증 환자가 되어야만 할까? 이렇게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한 것을 보면서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

 

 단풍철을 맞아 많은 사람들이 찾아드는 내장사

 

더구나 지금은 내장산이 아름답게 단풍이 들 계절이라,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장산으로 찾아드는 절정의 시기이다. 이렇게 불에 타 전소가 된 내장사의 대웅전을 보면서, 무슨 생각들을 할 것인지. 좀 더 문화재와 비지정문화재를 따지기 이전에 세심한 주의를 해야 할 때이다.

참 어이가 없다. 어제 저녁 절 사무일을 보고 있는 사무장이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인가 해서 나가보았더니, 누군가 법당 안에 놓아 둔 저금통을 털어갔다는 것이다. 손에는 부서진 저금통 3개와 검은 비닐봉투 안에 든 10원짜리가 있다. 누군가 법당 안에서 저금통을 들고 나가, 절 근처에서 돈을 빼가고 버린 것이다.

선원사는 ‘스님짜장’을 하는 곳이다. 일 년이면 거의 3만 그릇에 가까운 짜장봉사를 한다. 그렇기에 그 재원의 일부라도 마련하고자 생각한 것이, 바로 작은 저금통이다. 하나를 꽉 채워보아야 2만 원정도가 들어간다. 그래도 저금통 하나를 꽉 채워주면, 80명 정도에게 짜장 공양을 할 수가 있다.

스님짜장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저금통. 많은 분들이 이 저금통을 채워 함께 동참을 하신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데

어제는 절집 사람들이 모두 김제 금산사에 ‘모악산금산사개산대제’에 참석을 하느라 절이 비어있는 시간이 있었다. 아마 그 시간에 누군가 돈을 탄 것 같은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번에도 누군가 손을 탄 적이 있었다.




골목 길가에 버려진 저금통. 찢고 태워서 안에 있는 돈을 다 꺼내고 10원짜리만 버리고 갔다.

동전통을 들고 가 안에 있는 돈을 다 꺼내고, 10원짜리만 근처에 버려 놓았다는 것이다. 근처에 사시는 분이 골목길가에 버려진 저금통을 보고 연락을 해 주셨다는 것(어제 파르르님이 요즈음 아이들은 10원짜리를 돈으로 알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이 도적님 이런 것을 보면 아이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그런데 이 도적님이 하나 모르는 것이 있다. 바로 선원사에는 CCTV가 7대나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원사에는 보물인 철조여래좌상이 계시다. 절마다 의무적으로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CCTV를 설치하게 되어있다. 선원사 경내에 설치된 이 카메라는 20일 동안 녹화가 가능하다. 지난번에도 이 카메라가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이 카메라를 피해 절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다. 그저 보고도 못 본체 하는 것일 뿐.


선원사 경내에 설치된 CCTV화면. 7대나 되어서 경내로 들어오면 모두 다 찍히게 된다. 확대도 되기 때문에 누군인지도 알 수 있다. 20일 분의 녹화도 가능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다르다. 하나가 셋이 되었다는 것은, 손이 타는 일이 그만큼 늘었다는 것이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데. 그냥 넘어가면 딴 곳에 가서 더 나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2일 분만 돌리면 카메라에 누가 이런 짓을 했는지 다 알아낼 수가 있기 때문에 잡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절집 안 분들도 의견이 갈린다. 당장 잡아서 벌을 받게 해야 한다는 분들과, 이번까지는 용서를 해 주자는 분들이다. 아마 이렇게 사람이 없을 때를 노리는 것을 보면, 근처에 있는 사람의 짓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공고를 하기로 생각을 했다.

“저금통 들고 가신 도선생. 48시간의 여유를 주겠습니다. CCTV로 바로 누군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제 발로 걸어와 잘못을 빌면 용서를 하겠습니다. 48시간이 지나면 바로 화면 캡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잘 아시겠죠?”

어제 뉴스를 보니 국보 제147호인 울주 ‘천전리각석’에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난리들이다. 낙서를 한 추정시기가 지난 3월에서 7월 사이로 추정하고 있다는데, 벌써 한참이나 지난 다음에야 관할 지자체에서 포상금 1,000만원을 걸고 낙서범을 찾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각석 주변에 CCTV 있는데도 불구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다 녹화도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울산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10에 소재하는 ‘울주 천전리각석’은 태화강 줄기인 내곡천 중류 기슭 암벽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이다. 위와 아래 2단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내용이 다른 기법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전체적으로 조각이 가득하다.

사진출처 / 울산포커스의 사진을 인용했습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을 매번 말로만
 

국보를 비롯한 각종 문화재에 대한 낙서가 어디 어제 오늘 일이던가? 수도 없이 많은 문화재들이 낙서와 훼손에 멍이 들고 있다. 그런데도 관계당국은 매번 가중처벌이니 무엇이니 해대면서, 이런 일이 왜 자꾸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문화재청에서는 숭례문 화재 후 재난 예방 및 대응체계강화를 위해 목조문화재 방재시설 구축 예산을 증액하였으며, 중요목조문화재 150건에 대한 안전경비인력을 558명으로 증원 배치했다고 한다. 또한 '문화재보호법' 등을 개정하여 문화재 훼손범 가중처벌 규정과 문화재별 화재대응 지침서를 마련하였다고 하는데, 어째서 국보인 천전리각서에는 CCTV가 멀고, 녹화도 안된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어른 가슴 높이에 돌멩이로 긁은 듯한 방법으로 ‘이상현’이라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경찰에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지난 8일에 수사에 착수를 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렇게 낙서를 하는 인간들을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수백 년에서 천년 이상을 지켜온 소중한 문화재이다.


국보인 김제 금산사 미륵전에 적힌 낙서들. 파고 쓰고 별 짓을 다했다. 국부는 마음대로 보수를 할 수도 없다. 밑에 '문화재가 아파해요'라는 글이 속이 아리다.(2006, 5, 26 답사자료)


낙서나 훼손이 되면, 그것은 다시 원상태로 되돌릴 수가 없다. 복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과거의 장인의 혼이 깃들어 있을 것인가? 단지 외형적인 모습만 흉내를 낼 뿐이란 생각이다. 진정한 복원이란 장인의 혼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수도 없이 문화재보호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쇠귀에 경 읽기일까?

어느 누구도 그런 심각한 문화재 훼손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지 않은 듯하다. 그런 무관심이 불러온 결과가 바로 이런 것이다. 오래 전에 블로그에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때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사람들. 그들도 방관자라는 생각이다. 그 글의 일부를 다시 보자.

부끄러운 낙서 천국 대한민국

(전략)김제 금산사의 미륵전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 벽을 보면 정말 가관이다. 남녀 두 사람이 이름을 적어 놓고 영원히 사랑을 하자고 부언을 달았는가 하면 언제 자신이 다녀갔다고도 파 놓았다. 어느 것은 문화재를 일부러 훼손시키기 위한 문구도 있다. 종교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그저 파 놓고 간 것도 있다. 도대체 낙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면 저희 집으로 가서 벽에 대고 마구 그리거나 마룻바닥 혹은 거실에라도 파 놓던지 왜 꼭 문화재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다가 낙서를 하는 것일까?

(중략)전국 어디를 가나 여기저기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낙서는 그 도를 넘고 있다. 문화재고 머고 가리지를 않는다. 이런 낙서의 버릇은 무속적 사고에서 시작된 것으로 본다. 과거 사람들이 많은 질병으로 목숨을 잃거나, 재앙으로 인해 사고가 잦을 때는 커다란 암석이나 단단한 쇠붙이 등에 이름을 적어 놓으면 그 바위나 쇠붙이처럼 오래 간다고 하여 명산의 바위에다 이름을 새겼다고 한다. 그런 후에는 많은 치성을 드렸겠지만 그런 곳에 이름을 적고 오래 살았는지, 아니면 출새를 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자신의 이름을 그 곳에 적고 출세를 하고 싶다거나 사랑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거나 하는 발원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아마 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한마디씩 안 좋은 소리를 하고 지나간다면 오히려 좋아지라고 한 짓이 더 나빠질 것만 같다. 우리는 흔히 ‘입 살이 보살’이라는 속담에서 그런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보물인 완주 화암사의 우화루 벽에 가득한 낙서. 어른의 팔을 뻗쳐도 닫지 않는 높이에도 낙서가 되어있다. 도대체 어떻게 그 높이까지 낙서를 한 것일까?(2008, 3, 27 자료)

사람들의 입에는 살이 있다는 소리다. 악담을 들으면 그만큼 자신에게 해롭다는 사실이다. 낙서를 한 것을 보고 한 마디씩 모두 악한 말을 하고 간다면 그 자신들에게 결코 좋은 일이 생길리가 없다. 욕을 많이 먹으면 명이 길어진다고 하는데 그도 괜한 소리다. 지지리 궁상을 떨면서 명만 길어지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는 제발 어디를 가나 버릇처럼 하는 낙서에서 좀 벗어나자. 어느 아는 분이 이런 소리를 하셨다. 낙서를 아무 곳에나 하는 사람들은 세상살이가 낙서판만큼이나 편하지가 않고 시끄러워진다고 말이다. 이젠 해외에까지 낙서를 하는 짓거리가 비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한다. 말로는 문화민족이니 어쩌니 운운하면서 속내는 비문화적인 일을 일삼는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정말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자숙하였으면 좋겠다.

내 나라의 문화를 내가 지키지 않으면 과연 누가 지켜낼 것인가? 아름다운 내 강산을 낙서투성이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준다면야 후에 무슨 지탄을 받을 것인가? 낯부끄러운 짓일랑 이제 그만하고 있는 그대로 자연과 문화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져보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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