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판을 들여다보면 참 현실적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굿이라는 것을 그저 무당들이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쯤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다보니 자연 세상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무당들에 대한 선입견이 달라지게 된 것. 하지만 그 속을 잘 알고 보면 전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굿은 총체예술이다. 예술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이다. 굿 안에는 음악, , 소리, 미술, 거기다가 연극적인 희극적 요소까지 골고루 갖추어져 있다. 굿을 하는 무당은 한 마디로 일인극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한 예술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무당이다.

 

 

조상을 천도시키는 지노귀굿

 

흔히 지노귀굿혹은 진오기굿이라 부르는 굿이 있다. 돌아가신 분을 극락왕생을 위한 굿이다. 이 굿은 망자가 세상을 떠난 지 49일 안에 하면 진진오기라고 하고, 49일이 지나거나 탈상을 했으면 묵은진오기라고 부른다. 절차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조상을 천도시킨다는 뜻은 달라지지 않는다.

 

지노귀굿을 할 때는 먼저 안굿이라고 하는 일반적인 굿의 절차가 먼저 진행이 된다. 그러고 나서 조상을 천도시키는 말미가 이어지는 것이다. 먼저 안굿의 절차를 행하는데, 주당물림, 부정청배, 가망청배, 불사거리, 산거리, 조상거리, 대안주, 성주, 창부, 안당뒷전으로 진행을 한다.

 

 

그리고 지노귀굿으로 이어지는데, 지노귀부정으로 시작해, 뜬대왕, 사제삼성, 말미, 도령, 상식, 길닦기(베가르기), 뒷영실, 시왕군웅, 뒷전 등으로 이어진다. 묵은지노귀굿은 조상들을 모두 청배해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굿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굿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산 사람을 위한 이승굿과, 조상을 천도시키는 저승굿으로 구분을 하기 때문이다.

 

해학의 극치 사제삼성

 

지노귀굿에서는 상차림이 다르다. 기본적은 굿상 외에 도령을 돌 때 필요한 조상상과 문밖에 사자상이 차려진다. 사자상 주변에는 망자의 유품과 함께 사자들의 상도 함께 차려진다. 이 말미에서 나타나는 굿거리 제차 중 가장 뛰어난 해학적 요소를 갖는 것이 바로 사제삼성이다. 사제삼성은 한 마디로 저승사자놀이이다.

 

굿판에 온 저승사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망자의 혼을 잡아가려고 올가미를 던지며 난리를 핀다. 머리에는 베로 꼬아 만든 끈을 질끈 동이고, 손에는 역시 베로 만든 올가미를 들었다. 사자상에 있는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하면서, 혼을 잡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 여보 내가 망자를 모시고 가려고 이렇게 왔소.”예 고이 잘 모셔가세요

그런데 망자를 등에 업고 가야하는데 거꾸로 업고가야 망자가 좋아하겠지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똑바로 업고 가셔야지저승부터 그 먼 길을 망자를 모시고 가려고 왔는데 여비는 주어야지

 

 

손에 들고 있는 북어 한 마리를 망자라고 하면서 발로 밟는 시늉을 하거나 때리는 시늉을 하면, 굿을 하는 제가집 사람들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여비를 달라고 하면 주는 수밖에.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사자가 끝으로 말을 한다.

 

내가 이렇게 여비도 두둑하게 받았으니 망자를 잘 모셔 가리다. 그 먼 저승길을 가다가 망자가 배가 고프다고 하면 국수도 사 먹이고, 목이 마르다고 하면 시원한 막걸리도 사 드리면서 잘 모시고 갈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난 가오.”

 

속이 후련해지는 걸판진 굿판

 

그렇게 북어 한 마리를 등에 업은 후에 베 끈으로 잘 묶어 빠트리지 않게 하고 사자가 굿상을 벗어난다. 이러한 사자놀이는 압권이다. 망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키는 사람들과 빼앗으려는 사자의 실랑이. 그리고 사자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면서 하는 이야기 등. 그 자체가 하나의 무대에 올린다고 해도 빠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단 생각이다.

 

 

18일 수원에서 열린 지노귀굿 현장.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굿은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예전 같으면 더 오랜 시간을 했겠지만, 요즈음은 주변에서 항의가 들어와 오랜 시간은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총체예술인 굿판. 그리고 그 굿을 하는 사람들. 굿판에 모인 무격들과 악사, 그리고 제가 집과 일행. 모두가 속이 후련해지는 한 판이었다.

 

속이 다 후련하네요. 늘 마음속에 앙금처럼 깔려 있었는데, 이젠 편하게 조상님을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굿을 의뢰한 제가 집의 말이다. 굿은 그래서 한단다. 굿판에서 조상을 만나 모든 것을 다 풀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마음을 졸이며 저승사자와 한 판 승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굿판이 들썩인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에 앉은 사람들의 어깨가 절로 출썩인다. 그 중에는 잘한다’, ‘좋다라고 추임새를 넣는 사람들도 있다. 18일 오후 6시부터 수원시 장안구에 소재한 만석공원에 마련된 수원시 제2야외음악당에서는, 경기안택굿보존회(회장 고성주)가 주관하는 경기안택굿한마당이 열렸다.

 

오후 6시부터 3시간이 넘게 계속된 경기안택굿의 각 거리와, 고 운학 이동안 선생에게서 전해진 제인청 춤이 무대에 올랐다. 경기도 안택굿에서는 굿을 하기 전에 먼저 대문 앞에서 풍물패들이 지신밟기를 한다. 풍물패들이 한바탕 무대 위에서 풍장을 치며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버나잽이의 접시돌리기로 한껏 달아올랐다.

 

 

쌀쌀한 날씨에도 구경꾼들 신바람 나

 

낮에는 조금 덥다고 느끼는 날씨지만 아침저녁으로는 찬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계절이다. 하지만 객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긴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자리를 뜨지 않는다. 순서가 연이어 계속되면서 시간이 흐른다. 오후 830분 경. 날은 더 차갑게 느껴진다. 안택굿의 굿거리 제차 중에 창부거리가 시작이 되었다.

 

창부는 무격들이 섬기는 예능의 신이다. 무격들에게 재주를 주고, 노래와 춤을 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신격이다. 하기에 창부거리에서는 재미난 재담과 소리로 흥을 돋운다, 경기도 안택굿은 재미있다. 각 거리마다 딴 굿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 보인다. 이렇게 뛰어난 예능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안택굿이지만, 전통 경기도 안택굿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되지 않는다.

 

 

요즈음은 그저 대충 굿이 유행한다. 지역적 특색도 별로 없고, 소리나 춤 등도 없다. 거의 공중으로 껑충껑충 뛰며 악이나 박박 쓰는 그런 굿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에는 각 지역마다 굿이 특징이 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을 해서 굿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도, 그렇게 지역적으로 특성이 있는 굿을 지키고자 함이다. 굿을 종교가 아닌 전통문화예술로 접근하자는 시도이다.

 

관중을 사로잡는 창부굿

 

잽이라는 악사들의 음악이 흐드러지게 울려댄다. 피리, 대금, 해금과 장고, 바라 등이 조화롭게 흥겨운 가락을 만든다. 먼저 무대에 창부의상을 입은 임영복(. 54) 무녀가 등장을 했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흥겨운 노랫가락조로 소리를 뽑아댄다. 잠시 후 남무인 고성주(, 60)가 술상을 차려들고 무대로 나왔다.

 

 

경기도의 안택굿이 딴 굿과는 다르다는 것은 창부거리에서도 구별이 간다. 경기도 안택굿의 창부굿에서는 창부가 둘이다. 남창부와 여창부가 서로 재담을 풀어가면서 관중을 흥이 나게 만든다.

 

거기 창부는 어디로 오셨소?”

난 저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재주를 배우러 가려고 천안삼거리를 거쳐 이곳까지 왔소.”

한양은 무엇 하러 가시오.”

거긴 춤 선생도 소리선생도 많다고 하기에 재주 배우러 가오.”

그 양반 참 몰라도 너무 모르네. 여기 수원이야 말로 효의 도시요. 예능의 도시요. 거기다가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이 있소. 산 좋고 물 맑은 이런 곳에 어찌 재주 많은 선생이 없단 말이요. 굳이 한양까지 갈 필요 없소

 

 

남녀가 풀어나가는 대화에 관중석에서는 맞소라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두 무격은 꽹과리를 치면서 소리를 멋지게 풀어나간다. 경기도의 안택굿에서만 볼 수 있는 굿의 모습이다.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김헌선 교수의 사회로 세 시간이 넘게 진행된 경기안택굿한마당. 한 관람객은 연신 소리를 치면서 구경을 하는 바람에 목이 아프다고 한다.

 

경기안택굿이 이렇게 재미난 줄은 몰랐네요. 그리고 굿을 하는 사람들의 춤과 노래 등이 아주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고요. 창부거리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으면서 하는 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았어요. 우리 지역에 이렇게 대단한 굿이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이렇게 재담이 뛰어나고, 춤과 소리가 어우러진 안택굿은 하루 빨리 문화재로 지정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제는 이런 굿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2~3명에 불과하다고 하니, 얼른 지정을 해서 보존해야죠.”

가끔은 사람들이 무료할 때가 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갑자기 이상한 것이라도 하나 볼작시면 그것에 재미를 들이기도 한다. 그래서 무료한 세상이 즐거워지기도 하고 말이다. 일을 마치고 피로를 풀거나 취재하고 기사 쓰느라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 할 때는, 그저 간단하게 한 잔 하고 잠을 푹 자두는 것이 제일이다.

 

딱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그것이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 보면. 결국엔 만취가 되는 것이 세상사. 이럴 때는 미쳐 주머니 사정을 헤아리지 못했음을 후회하기도 한다. 술을 입에 대면 ‘두주불사(斗酒不辭)’인고로, 술집 문을 나설 때쯤이면 주머니가 비어 외상을 하기도 하는 것이 주태배기들의 공통된 생활인 듯도 하다.

 

 

관할지구대 대장님 동의서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 아주 웃기는 집이 있다. 술집에 붙여 놓은 문구가 정말 사람을 환장하게 만든다. 외상을 하려면 서류를 갖추어서 신청을 하라는 것인데. 헉 그 문구를 보다가 그만 배를 잡고 굴러버렸다. 외상을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는 서류가 자그마치 수백통이다. 그 중 가장 웃기는 대목이 ‘관할지구대 대장님 동의서’란다.

 

외상 한 번 하는데 가족관계 등록부 121통, 보증인 130명, 재산세납부증면서 10통, 등기부 등본 111통을 제출하란다. 그런데 그래도 여기까지는 참아줄만 했다. 밑으로 내려 갈 수록 점입가경이다. 건강진단서에 건축물관리대장, 관할지구대 대장님 동의서도 필요하단다. 이걸 어찌 받아갈꼬 거 참.

 

그 밑에서는 그만 숨이 넘어가는 줄 알았다. 자동차등록원부 25통이 있어야 하는데, 중형차 이상이어야 한단다. 그리고 또 하나 이장님 친필 추천서가 55통이나 있어야 한다고. 외상값보다 서류준비를 하는 비용이 훨씬 더 들어갈 듯하다.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이런 문구를 보고 외상을 하겠다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난 아무래도 지구대 대장님 동의서와 이장님 친필 추천서가 안 될 듯해서 포기해야겠다. 세상 살다가 보니, 참 별 일을 다 본다.

눈을 감은 맹인이 산통 대신 손에 대추알을 잡고 흔든다. 점을 보아준다는 것이다. 굿판에 아닌 대문간에 앉아 장고잽이와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재담이 일품이다. 그것 하나만 갖고도 책 한권은 넉넉히 나올 것만 같다.

“이보 오늘 점이나 한 번 보시려우”
“점은 머 할라고 봐요. 눈도 못 보는 양반이 점인들 잘 볼 수 있겠수”
“이보셔, 내가 이래도 장안에 제일가는 점바치여“
“그걸 누가 안답디까?”


경기도 안택굿의 뒷전은 해학의 극치

경기도 안택굿에서 뒷전은 재담의 극치를 보인다. 뒷전은 굿판에 모여든 각종 잡귀들을 잘 대접해서 보내는 굿거리이다. 굿판에는 항상 무속신을 따라 다니는 많은 잡귀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잡귀들은 신령들을 다 돌려보낸 후에도 굿청에 남아 집안을 소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하기에 이 뒷전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많은 잡귀들을 한바탕 흥겹게 놀고 보내지 않으면 집안에 탈이 난다고 한다.



경기도 안택굿의 '뒷전거리'는 타 지역의 굿에서는 볼 수 없는 재담과 해학이 넘친다. 무격이 지팡이를 들고 온다. 맹인굿을 하는 광경이다.


과거에는 밤새 굿을 하고나면 뒷전무당이 아침에 장고재이를 데리고 굿판에 나타난다. 뒷전무당은 각 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고, 뒷전만 맡아하기 때문이다. 이 뒷전무당의 존재는 그 굿판을 좌우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사람들은 일부러 뒷전무당에게 줄 돈을 쓰지 않고 간수를 할 정도였다고 하니, 뒷전 무당의 입담이 얼마나 좋은지 알만하다. 뒷전무당은 굿청이 아닌 대문간에 마련한 뒷전 상 앞에서 굿을 한다. 평복에 지팡이를 들고 하기도 하고, 고작해야 무구라는 것은 부채와 방울을 사용 할뿐이다. 뒷전무당이 맹인 굿을 할 때쯤 되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뒷전을 하는 곳으로 몰려든다. 맹인 굿에서 산통 대신 성냥 통을 흔들어대며 주는 점사가 재미있기 때문이다.


재담이 뛰어난 안택굿판은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안택굿판에는 누구나 다 들어갈 수가 있고,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나도 점 한 자리 봐 주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뒷전을 하는 무격을 바라보다가 배를 잡는다. 하는 표정과 재담이 어느 코미디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굿판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더하다보니 사람들이 발길을 떼지 못한다.

“나도 점 한 자리 봐 주소”

굿판 구경을 하던 구경꾼이 한 수 거둔다.

“점은 무엇하러 보시려고 하슈. 봐 봤자 뻔한 것을”
“무엇이 뻔하다는 것이요”
‘뻔하잖우. 당신이 남자인데 그걸 제대로 하겠수, 아니면 돈을 잘 벌어다 주겠수. 그저 이것도 저것도 다 부족한데 점괘라고 잘 나오겠수“
“아니 내가 그렇다는 것을 어떻게 아시우”
“떡 하면 삼천리라고, 복채도 안내고 점을 보자는 양반인데 먼 재주가 있겠우”


맹인 굿을 하는 고성주씨가 산통 대신 대추를 손에 잡고 흔들며 점을 본다.(위) 맹인 굿을 마치고 난 뒤 끝으로 수비영산을 노는 모습. 수비 영산은 못 먹고 헐벗은 잡귀들이다.


사람들이 ‘맞다’를 연발하면서 웃는다. 점을 보아 다라라는 사람도 떠날 갈 듯 웃어댄다. 그저 재미로 하는 농지꺼리들이다. 이렇게 밤을 새운 굿판이다. 밤새 웃고, 떠들고, 마시고, 소리하고. 그런 굿판을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다.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의 장’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뒷전거리’ 하나만 갖고도 예술적인 가치를 보이는 경기도 안택굿판. 언제쯤 다시 볼 수가 있으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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