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슬이 퍼런 작두위에 올라섰다. 그리고 많은 단골들에게 별상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다들 도와주마 어려워도 걱정하지 마라

6, 수원시 팔달구 창룡문로 56번길 18호에서 이른 아침부터 맞이굿이 열렸다. 맞이굿이란 신을 모시는 무당이 자신을 따르는 단골들의 일 년간의 안녕을 위해 신에게 정성을 드리는 굿을 말한다. 맞이굿은 제물을 쌓아놓고 신에게 드린다고 해서 진적굿이라고도 한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은 밤 11시가 넘어서 끝났다. 그 안에 들락거린 단골들만 해도 족히 200명은 넘을 듯하다. 전안(무당들이 신을 모셔 놓은 곳)에서 시작한 굿은 마당에 차려놓은 천궁맞이 상으로 이어진다. 천궁맞이란 선계인 하늘에 있는 신령들을 맞이하는 자리이다. 여기서 무당은 용사슬을 탄다. 용사슬이란 물동이에 물을 가득 담고 그 위에서 뛰는 것이다. 무당 스스로 제물이 되는 행위이다.

 

 

날선 작두 위에서 주는 공수는 영험하다고

 

전안으로 들어가 굿을 이어간다. 하루 종일 사람들은 상을 받는다. 굿판에서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그저 누구라도 들어오면 한 상 차려 내어놓는다. 굿은 열린축제라고 한다. 굿판을 찾은 사람들은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따지지 않는다. 그만큼 열러있는 곳이다. 지금은 이렇게 차리고 굿을 하는 집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고성주(, 60)씨의 굿은 남다르다. 넓은 전안의 수미단(신령들을 모셔 놓은 곳의 앞에 조성한 단으로 음식 등을 놓을 수 있는 곳)에는 온갖 과일 등이 차려져 있다. 그 제물만 해도 엄청나다. 누구라도 이렇게 차리기가 쉽지가 않은데, 일 년에 두 번을 봄, 가을로 차리고 굿을 한다.

 

 

전안의 굿이 끝날 때쯤 별상이 접신이 되었다. 밖으로 나가 작두 위에 오른다. 날이 시퍼렇게 선 작두는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그 위에 올라서 오방기를 뽑게 하고 공수를 준다. 굿판에서는 작두 공수가 가장 효험하다고 한다. 한 사람씩 공수를 주고 난 다음 마당에 모인 단골들에게 내가 도와주마 걱정하지마라라고 한다.

 

열린 굿판 축제가 따로 없네.

 

사람들은 수없이 들락거린다. 그 많은 사람들이 올 때마다 일일이 상을 차려 내어 놓는다. 굿판에서는 배불리 먹어야 한단다. 신령이 좋아하는 일이란다.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힘이 들만도 한데, 모두가 얼굴에는 미소가 가시지 않는다.신령이 참 좋기는 합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하면서도 어떻게 저렇게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인지. 저 분들 모두 복 받으실 겁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단골 한 사람이 하는 말이다. 그만큼 고성주씨의 맞이굿판에는 먹거리가 넘쳐난다.

 

굿판에는 장고, 피리, 대금. 아쟁을 연주하는 악사 4, 그리고 고성주씨와 신딸들을 비롯해 8명이 참여를 했다. 이들이 돌아가면서 굿을 한다. 밤이 되자 텃대감거리가 시작되었다. 이 집의 텃대감님은 참 드세단 생각이 든다. 단골들이 모두 대감쾌자를 입고 얼굴에는 검뎅칠을 하고 지하로 내려간다.

 

 

안택굿의 보존을 위해 문하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고성주씨의 집에는 지하실에 24, 2층에 34평의 연습실이 있다. 이곳에서는 꽹과리를 치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를 않는다. 마음껏 뛰고 난리들을 친다. 그리고 다시 전안으로 들어와 서낭과 뒷전을 한다.

 

아침부터 시작한 굿이 밤 12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그리고 전안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모두 싸서 단골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복을 골고루 나누어준다는 의미가 있단다. 사람들은 그렇게 봉송이라는 제물을 나누어 갖고 돌아가면서 흐뭇해한다. 열린축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한 굿판이다.

“참 굿판 한번 후련하다. 한바탕 뛰고 났더니 가슴에 케케묵어 뭉친 덩어리가 시원하게 뚫려버렸네”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얼마나 신이 나게 뛰었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참 그리고 보면 이런 굿판을 잊은 지가 참으로 오래되었다. 방송을 하면서부터 찾아들어간 굿판. 전국을 다니면서 정말 오랫동안 굿판에서 생활을 했다. 웬만한 굿판은 안 다닌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도 내노라하는 굿판은 빠트리질 않았으니 말이다.

 

흔히 우스갯말로 ‘굿’은 ‘good' 이라고 한다. 좋다는 뜻이다. 그 굿이 좋지가 않았다면 지금까지 그 오랜 시간을 존속이 되어 왔을리가 없지 않을까? 혹자는 우리 굿을 종교적으로 박해를 하기도 한다. ’미신‘이나 ’혹세무민‘이라는 것이다.

 

 

일제의 잔재를 이용하는 인간들

 

종교란 각자의 심성대로 가는 것이다. 어떤 종교를 선택하든지 그것은 각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가 아니라고 해서 폄하하거나 박해를 할 필요는 없다. 알고 보면 우리 굿은 참 많은 시대를 박해를 받았다. 제정일치 사회에서는 그들이 바로 하늘을 위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위치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들의 위치가 이 땅 밖에서 유입된 종교로 인해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했다. 고려 때와 조선조 때는 도성 밖으로 축출되기를 여러 번 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것이 바로 우리네의 굿이다. 일제 때는 ‘미신’이라는 용어를 써서, 우리 굿을 박해했다. 굿은 일개인의 치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을굿도 있고 나라굿도 있었다.

 

 

 

일제는 1920년대에 문화말살 정책을 펴면서 수많은 우리 마을의 제당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근대에 들어서는 ‘새마을 운동’을 한다고, 많은 마을의 제장들이 훼손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민족의 마음속에는 끈끈하게 굿이 자리하고 있다. 굿은 곧 ‘좋은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속풀이 굿, 이것이 정말 굿이다.

 

2012년 3월 28일(수). 수원시 팔달구 지동 271-124번지에서는 ‘고성주의 봄맞이 진적굿’이 열렸다. 진적이란 자신이 모시고 있는 신령들을 위하는 굿이다. 대개는 1년에 한 번이나 3년에 한 번을 하지만, 고성주는 일 년에 봄, 가을 두 차례씩을 한다. 봄에는 ‘꽃맞이 굿’으로 가을에는 ‘단풍맞이 굿’으로 행한다.

 

 

고성주의 맞이굿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벌써 이 맞이굿은 오래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방송이 되기도 했다. 며칠 전부터 준비를 해온 맞이굿은, 28일 아침 일찍부터 집안에 웃음소리와 음악으로 넘쳐났다. 피리, 대금, 해금의 악기소리와 장고, 징, 바라 등의 타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이 맞이굿의 하이라이트는 텃대감을 놀 때이다. 아마 이런 굿은 전국 어딜 가도 볼 수가 없다. 마당에는 돼지족발과 떡시루, 그리고 막걸리를 한 동이 갖다 놓았다. 그 앞에는 종이를 태워 물에 풀어 놓는다. 검뎅이다. 이 집 텃대감 놀이에서는 모두가 서로 얼굴에 검뎅칠을 한다. 그리고 서로 쳐다보고는 웃어댄다.

 

 

 

수양부리들도 다 대감이 되는 굿판

 

이집의 텃대감을 놀릴 때는 희한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모두가 다 남쾌자 하나씩을 걸치고 나온다. 모두가 다 대감쾌자를 하나씩 입고 있다. 이 집의 맞이굿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굿을 주관하는 무녀의 인도에 따라 집을 한 바퀴 돌아서 지하실로 내려간다. 지하실은 평소에 고성주가 제자들을 가르치는 연습실이다.

 

이 지하 연습실로 들어간 일행들은 온통 난리를 친다. 소리 지르고 춤추고, 징과 바라, 잘고 장단에 맞추어 너 나 할 것 없이 온통 뛰어논다. 과거 우리네 맞이굿인 부여의 영고, 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등에서 ‘답지저앙’을 하고 ‘수족상응’을 했다는 것이 바로 이런 형태가 아니었을까?

 

 

이렇게 뛰고 났는데 어찌 속풀이가 안 되었을까? 전안으로 들어온 일행들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가 되었다. 그리고 이마에는 땀이 맺혀있다. 모두가 한 마디씩 한다. 한 마디로 잘 놀았다는 것이다.

 

“올 일 년도 이렇게 시원하게 속풀이를 했으니 잘 될 것 같네요. 그저 굿판에서 이런 재미가 없으면 무슨 재미로 굿판에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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