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카페에서 만난 벨에포크 앙상블

 

 

<벨에포크 앙상블>. 6명의 아름다운 여성들로 구성된 벨에포크 앙상블과는 두 번째 만남이다. 먼저는 지난 826, 자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2층 전시실에서 음악회를 열었고, 이번에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창작센터 1층 카페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1시간 조금 넘게 이어진 작은음악회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어떤 음악회보다 더 정감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회였다고 생각한다.

 

4명의 바이올린 주자(정순기, 신경옥, 이연희, 이숙화)와 첼로(정숙형), 클라리넷(김동숙) 6명의 연주자들의 모임인 벨에포크 앙상블은 이제 결성된 지 3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공연을 하기 전 잠시 동안 6명의 연주자들과 대화를 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연주자들의 내력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저희는 6명 모두가 음악을 전공했어요. 대학에서 음악전공자들의 모임인데, 나름대로 사회에서 보람된 일을 하고자 모임을 결성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서 연습을 하고 있고요, 물론 공연이 잡히면 두 번 정도 모이죠. 한 번 모이면 두 시간정도 연습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는 벨에포크 앙상블

 

이제 결성한 지 3년이 채 안됐지만 벨에포크 앙상블의 활동을 놀랄만하다. 그동안 한 달에 두 번 이상 공연을 했고, 많을 때는 4번까지도 공연을 가졌다고 한다. 일 년에 어림잡아 30회 정도의 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공연장소도 다양하다. 봉사활동을 주로한다는 앙상블팀은 고아원, 각종 문화공간 등의 공연까지, 자신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마다않고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추어진 것일까? “저희 회원들이 회비를 내서 운영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딴 직업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출연료를 받아 충당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개는 순수한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죠.” 프로연주자들이지만 봉사활동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오후 2시 반, 카페 한편에 6명의 벨에포크 앙상블 단원들이 자리에 앉았다. 카페라는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지만, 카페에 모인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음악을 이해하고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모인 관객들 모두가 이미 벨에포크 앙상블의 공연에 푹 빠진 사람들이다.

 

 

주옥같은 선곡, 모두가 앙코르 열창

 

모두 11곡이 연주 된 이날 벨에포크 앙상블의 연주는 압권이었다. 사람들은 많은 인원이 출연하는 오케스트라나 합창 등에 큰 비중을 둔다. 물론 그런 웅장함도 좋다. 하지만 난 그런 웅장함보다 오히려 아기자기한 소수의 인원이 만들어내는 앙상블 등에 더 매력을 느낀다. 아마도 내가 음악을 전공했기 때문인가도 모르겠다. 웅장한 것보다 실내악 등에 더 매력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곡을 할 때도 소수의 인원이 감당할 수 있는 소곡(小曲)이나 중주곡 등에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날 벨에포크 앙상블의 공연은 지동 창룡마을 창작센터 근무자이자 기획자인 우경주의 진행으로 이루어졌다. 편안하게 해설을 하가며 들어보는 앙상블. 그 어떤 음악회보다 더 멋진 최고의 음악회였다고 생각한다. 미녀와 야수로 시작한 연주는 캉캉, 시네마천국, 썸머, 마술피리, 인생은 아름다워 등 우리가 자주 접한 곡들이었다.

 

열곡의 연주를 다 마친 후, 관객들은 앙코르를 외치며 박수를 쳤고, 앙상블 연주자들은 가을이 오면이라는 앙코르곡을 연주한 후 이날 작은음악회를 마쳤다. 카페에서 오순도순 마주앉아 연 벨에포크 앙상블의 작은음악회’. 결코 작지 않은 음악회가 준 감동은 즐거움과 환희였다. 부르면 언제라도, 어디라도 달려간다는 6인의 아름다운 여인들. 앞으로 벨에포크 앙상블을 영원히 기억할 듯하다.


허난설헌(1563~1589)은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이며, 호는 ‘난설헌(蘭雪軒)’, 자는 ‘경번(景樊)’이다. 선조 22년인 1589년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난설헌은 명종 18년인 1563년에 강릉 초당 생가에서, 당대의 석학인 초당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허난설헌은 그 재주가 비범하여 오빠가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얼마나 재능이 뛰어났는지 선조 3년인 1570년에는, 불과 나이가 8세 밖에 안 되었지만 '광한전백옥루 상량문'을 지었다고 한다. 15세 때 안동 김씨인 김성립에게로 출가를 한 허난설헌은, 참으로 파란만장한 짧은 생을 마치게 된다. 19세에는 딸을 잃고, 20세에는 아들 희윤을 먼저 저 세상으로 보낸다. 이런데다가 아버지는 상주에서, 난설헌을 가장 아끼던 둘째 오빠 허봉은 금강산에서 객사를 한다.


목포시립무용단 정기공연 창작무용인 '허난설헌'에서 안무자 정란이 허난설헌의 삶을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비운의 여인, 그러나 풍류 속에서 살다간 여인

그런 주변의 아픔 때문일까? 허난설헌은 1589년인 선조 22년, 27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허난설헌은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혀있다. 이러한 허난설헌이 죽음을 담보로 자유를 갈망한 조선의 여인으로 다시 조명이 되어 환생을 하였다. 당시의 기구한 삶과 오늘날의 슈퍼우먼을 요구하는 사회적인 풍조가, ‘워킹맘’이라는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의 기우뚱거림으로 이어진다.

지난 11월 11일(목)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 소공연장에서는 오후 7시 30분부터 목포시립무용단의 제28회 공연이 있었다. 1, 2부로 나누어진 이 공연은 창작과 전통이 만나는 그런 무대였다. 1부는 ‘풍류녀 허난설헌’이라는 제목으로 예술 감독인 안무자 정란의 안무로 무대에 올려졌다.



목포시립무용단의 창작무용 '허난설헌'
 
허난설헌의 슬픔이 가득한 일생이 몸으로 다시 환생을 하는 그런 무대였다. 모두 5장으로 나누어진 40분간의 무대는, 연신 바뀌어가는 허난설헌의 삶이 다시 그려지고 있었다. 숱한 군상들 속의 난설헌, 그리고 홀로 그 많은 고통을 이겨내야만 하는 길고 어두운 시간. 몸부림을 칠수록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삶. 멈추고 싶지도 않고, 멈추어지지도 않는 토해버리고 싶은 가슴속의 응어리.

그러한 허난설헌의 모든 것을 4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에 농축하여 보여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안무자 정란은 몇 년 전인가 이번 무대보다 짧은 ‘새하곡’이라는 춤을 갖고 무대에 오른 적이 있다. 그때도 보았지만, 무대에 오를 때는 이미 ‘정란’이 아닌 ‘허난설헌’ 이 되어 있었다.

정란은 이번 무대에서 ‘전폐, 희문’이라는 종묘제례악을 사용을 했다. 기존의 음악을 탈피해 허난설헌 일가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식들의 죽음과 부모와 형제들의 죽음을 조금 더 승화시켰다. 그런 속에서 무대에 오른 정란은 허난설헌의 고통스런 일생을 풀어내 듯, 한풀이와 같은 춤을 춘다. 마치 살풀이를 현대화시킨 듯한 느낌이다.



목포시립무용단 '풍류녀 허난설헌'

춤은 몸을 필요로 한다. 몸은 마음의 춤이 있어야 함께 움직일 수가 있다.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되어 무대에 서면, 관객들도 그 몸짓에 동화를 할 수가 있다. 이번 무대에서 정란은 스스로 허난설헌이 되어 관객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몸을 빌려 이야기를 했다. 앞으로 더 보완을 해 허난설헌의 일대기를 무용극화 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힌다. 그 무대가 기대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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