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0년도에 발행했던 글입니다.
문화재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기 위해 가끔 옛 기사들을 하나씩 재송고 하려고 합니다. 이점 유념해 주시고 오해 없으시기 비립니다. 

 

사람들은 절이 있는 곳은 잘 찾아가지만 사지를 찾는 경우는 거의 드물다. 그런 사지를 찾아보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남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소중한 문화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철안마을. 청룡사지 입구에 도착하면 주차장이 있고, 우측으로 가파른 길을 올라가면 청룡사가 있다. 이곳이 예전 청룡사가 자리 잡고 있었던 곳인가는 확실치가 않다. 청룡사는 고려 말 청계산 중턱에 작은 암자가 있던 것을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국사인 보각국사가 은거하였으므로, 태조가 큰 사찰을 세우도록 했다고 한다.

 


사찰은 간곳없고 문화재만 나란히

주차장에서 앞으로 난 개울가를 낀 길을 따라 들어가면 문화재들이 있는 청룡사지를 만나게 된다. 당시의 웅장했다고 전하는 청룡사는 사라지고 이곳에는 국보 제197호인 보각국사의 부도탑인 정혜원융탑과 보물 제656호인 석등, 그리고 보물 제658호인 정혜원융탑비 등이 남아 있다.

석등과 사리탑, 그리고 탑비가 나란히 서 있는 청룡사지. 국보 제197호인 청룡사보각국사 정혜원융탑은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탑이다. 보각국사가 세상을 떠나자 태조 이성계가 왕명으로 탑을 짓게 하여, 권근이 비문을 짓고 탑명을 정혜원융이라고 하였다. 이 탑은 무너져 있던 것을 1968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청룡사지에 자리한 보물 제656호 사자석등과 보물 제658호 정혜원융탑비

 

흔히 장명등이라고 하는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보물 제656호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융탑전사자석등’이란 긴 명칭을 갖고 있는 이 석등은 사리탑에 있는 보각국사의 사리를 지킨다는 뜻으로 조성이 된 듯하다. 석등은 조선시대 석등의 기본형인 평면정사각형으로, 아랫부분에 한 마리 사자가 힘찬 모습으로 조성이 되어있어 사자석등이라고 부른다.

보물 제658호인 정혜원융탑비는 보각국사를 기리기 위한 비로 고려 우왕 9년에 국사가 되어, 73세에 입적한 사실과 보각국사의 덕과 지혜를 기린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융탑 뒤편에 자리한 이 탑비는 윗부분의 장식물인 지붕돌인 개석이 없는 대신에, 비신 양 끝 부분의 모서리를 깍은 귀접이 양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국보 융탑의 조각 솜씨를 보고 숨이 멎다.

 

국보 제197호 청룡사지보각국사정혜원융탑. 크지 않은 그 탑을 보고 숨이 막힌다. 아래 기단을 부풀려 놓고 그 위에 몸돌을 올려놓았다. 지붕돌의 합각마루에는 용머리와 봉황이 장식되어 있다.

이 융탑의 몸돌은 항아리처럼 부풀려 있는데, 팔각의 몸돌을 이용해 많은 조각들을 해 놓았다. 모서리에는 기둥을 놓고 그 기둥마다 용이 기어오르고 있는 형상을 조각하였다. 그리고 사천왕을 새겨 넣어 이 탑이 특이함을 보인다. 사천왕의 모습은 힘이 있고, 금방이라도 돌을 박차고 튀어나올 듯한 기세다. 조선 초기 석조미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히는 것도 이러한 조각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 융탑은 몸돌 뒤편에 사리공이 있어 이곳에 사리 및 옥촛대, 금망아지, 금관 등이 있었다고 하나, 일제 때 도난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많은 문화재들을 수탈을 당했으면서도 아직도 수난이 거듭되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들. 언제나 온전하게 이 땅에서 지켜질 수가 있으려는지. 절로 한 숨이 나온다.

  1.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08.05 10:40

    좋은 아침 맞으셨어요?
    여울목님처럼 울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걱정 없을텐데요..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려나 봅니다...
    시원한 하루 되세요~~

  2. 김천령 2010.08.05 10:50 신고

    오늘도 후덥지근합니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할 텐데요.

  3. pennpenn 2010.08.05 11:54 신고

    국보급 문화재를 잘 보존해야 하겠습니다.

  4. 탐진강 2010.08.05 12:23 신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가 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일제 수탈의 문화재를 되찾아야 할텐데요

  5. 익명 2010.08.05 15:36

    비밀댓글입니다

  6. mami5 2010.08.05 16:53 신고

    소중한 문화재를 다루시는군요..^^*
    사실 사지는 잘 찾지 않으니..
    여울목님 덕분에 공부 잘 해봅니다..^^

전주 남고산성에 가면 정몽주의 암각서가 있다. 푯말에는 ‘만경대 암각서’라고 이정표가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남고산성 안에 있는 남고사 조금 못 미처 길 가에 서 있다. 50여m 정도 바위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남고산성이 늘어서 있고, 상벽 바로 안 바위에 적혀져 있는 글이다. 이 근처는 지형으로 보아 남고산성의 두 곳의 장대 중 한 곳인 남장대 인근으로 보인다. 이곳에 왜 정몽주의 시가 암각서로 남아 있는 것일까?

 

이성계의 잔치에 화가나 말을 달린 정몽주

 

고려 우왕 때인 1380년 9월. 이성계는 황산대첩에서 왜구를 물리치고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가던 중, 조상의 고향인 전주에 들른다. 이곳 오목대에서 종친들을 불러 환영잔치를 베풀면서, 자신이 고려를 뒤엎고 새 나라를 세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다.

 

 

당시 종사관이 되어 황산대첩에 참가했던 정몽주(1337 ~ 1392)는 이 말을 듣고 노여움을 참지 못해 잔치자리를 빠져나와 말을 달려 남고산성의 만경대에 오른다. 남고산성에는 남인문지 근처에 천경대가 있고, 남고사 인근에 만경대가 있다. 그리고 남고사 뒤편 산 정상부근에는 억경대가 자리하고 있다.

 

말을 달려 이곳까지 온 정몽주. 선죽교에서 방원의 철퇴에 맞아 숨이 지면서도 고려에 대한 충절이 변하지 않았던 충신답게, 스스로 고려를 생각하면서 근심을 이어간다.

 

 

千仞崗頭石逕橫 천길 바위머리 돌길로 돌고 돌아

登臨使我不勝情 홀로 다다르니 가슴 메는 근심이여

靑山隱約夫餘國 청산에 깊이 잠겨 맹서하던 부여국은

黃葉檳紛百濟城 누른 잎은 어지러이 백제성에 쌓였도다

九月高風愁客子 구월의 소슬바람에 나그네의 시름이 짙은데

百年豪氣誤書生 백년기상 호탕함이 서생을 그르쳤네

天涯日沒浮雲合 하늘가 해는 지고 뜬 구름 덧없이 뒤섞이는데

矯首無由望玉京 하염없이 고개들아 송도만 바라보네

 

정몽주의 나라 걱정하는 마음이 그대로 들어나 있는 시구이다. 이곳 만경대에서 송도를 근심하던 정몽주. 이렇게 글을 남겨놓고 개선장군이 되어 당당하게 송도로 돌아가는 이성계와 함께 이곳을 떠났다.

 

 

 

김의수가 각자한 정몽주의 글

 

당시 시를 지은 정몽주가 이곳 만경대 바위에 각자를 한 것은 아니다. <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영조 22년인 1742년 진장인 김의수가 각자를 한 것이다. 예전에는 바위 앞에 수풀이 우거지고 나무들이 많아 암각서를 보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주변을 정리하고 철책을 둘러놓았다.

 

바위를 어렵게 내려가 만경대라고 음각을 한 바위 앞으로 다가갔다. 만경대라는 글씨는 알아볼 수가 있는데, 그 내용은 마모가 되어 글씨조차 판독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다만 글 말미에 보니 각자가 된 글씨보다 조금 크게 병인년에 진장 김의수가 각자를 했다는 글이 보인다. 진장 김의수는 왜 정몽주의 이 길을 이곳 만경대 바위에 새겨 넣었을까? 진장이란 조선 인조 때 각 도의 지방군대를 관할하기 위해 설치한 진영의 장관을 말한다.

 

아마 진장 김의수는 정몽주의 불사이군의 충심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시대를 뛰어넘어 300년 가까이 지난 다음이지만, 김의수는 그러한 글을 이곳에 각자를 함으로써 스스로의 충심을 일깨웠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수많은 세월이 지난 각자마저 흐릿하지만 정몽주의 충심과, 그 충심을 아는 진장 김외수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영웅의 교감은 세월을 뛰어넘는 것인지.

  1. 돌이아빠 2012.05.31 07:29 신고

    남고산성 암각서. 전혀 몰랐던 문화재..
    충신 정몽주와 관련된 것이로군요.
    오늘도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2. 주테카 2012.05.31 07:36 신고

    100인 닷컴에 악성코드가 있는 모양입니다.
    들어올까 말까 하다가 들어와봤습니다.

  3. 코리즌 2012.05.31 10:57 신고

    남고산성에 이런 역사의 비사가 숨어 있었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어른들과 어린이들 모두 하나가 되어 활 시위를 당긴다. 활을 떠난 화살이 30m 앞에 놓인 곰두리 표적을 향해 날아간다. 사람들은 저마다 함성을 지른다. 누구의 화살이 과녁을 맞춘 것인지 정확지가 않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이 쏜 화살이 맞았다고 즐거워 한다. 

11월 27일 오후. 수원에 소재한 사적이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의 동장대인 연무대 앞에는 국궁체험장이 있다. 주말과 휴일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 국궁체험을 즐기기 위해서이가. 하절기에는 오후 5시 30분까지, 동절기에는 오후 4시 30분까지 활을 쏜다. 30분에 한 번씩 사대로 올라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즐겁게 국궁체험을 하는 것이다.





각궁은 고려 때부터 사용

우리가 일반적으로 국궁이라 부르는 각궁은, 삼국시대의 맥궁에서 기원하였다고 전한다. 우리나라의 활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각궁이 언제부터 널리 보급되었는지 확실치는 않다. 다만 함흥 선원전에 보면 태조 이성계가 사용하던 각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하여, 이미 고려 때부터 각궁을 사용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한 <경국대전>에는 각궁에 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한국의 전통적인 활인 각궁은 참나무, 산뽕나무, 물소뿔과 소의 힘줄, 대나무 등을 이용하여 만든 복합단궁의 형태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는 10여 종 이상의 활이 존재했다고 하지만, 현존하는 것은 각궁 한 종류 뿐이다. 하기에 우리가 국궁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각궁을 일컫는 말이다.




안내를 따라 쏘아보는 국궁

사대에 오른 체험을 하는 관광객들은 활과 화살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선다. 안내자의 설명에 따라 활과 화살을 들고 과녁을 향한다. 시위를 떠난 화살이 날아간다. 소리를 지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국궁체험은 사용료가 10발에 2,000원이며 두 번을 쏠 수 있다. 

국궁체험을 하는 사람들도 가지각색이다. 설명을 듣고도 따라하기가 힘든가 보다. 그 모습이 재미있다. 국궁체험을 하는 김아무개(남, 42세. 서을)는 10발을 다 쏘고 난 후





"정말 뜻 깊은 체험입니다. 이렇게 화성 안에서 활을 쏘니 정조대왕 때 장용위 군사라도 된 기분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홍보를 많이 해야겠네요" 라고 한다.

부모님들과 함께 왔다는 양모군(남, 11세. 초등학생)은

"정말 재미있어요. 우리 활을 쏠 수 있어서 정말 좋아요"

라고 하면서 즐거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화성의 국궁체험.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국궁체험장으로 몰려들 것이란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화성을 찾는 많은 외국인들이 국궁체험을 할 수 있도록 통역관을 배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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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8 07:33

    저거 정말 어렵던데요~

  3. 귀여운걸 2011.11.28 07:34 신고

    오~ 정말 신나보여요~~
    저두 당장 체험하고 싶어요^^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1.28 07:36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것 이름이 깍지던가요?
    예전에 한 번 쏴본 기억이 나는데, 정말 배우기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5. 해바라기 2011.11.28 07:55

    활쏘기는 멋진 스포츠인것 같습니다. 화성에 가면 볼 수있군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한주 되세요.^^

  6. 광제 2011.11.28 08:19 신고

    저도 이거 한번 쏴봤는데..쉽지 않던데요...ㅎ
    힘찬 한주 되시구요^^

  7. 무릉도원 2011.11.28 08:38

    스트레스가 확 풀릴 것 같습니다...
    보기만 해도 이렇게 시원한데....ㅎㅎ...
    잘 보고 갑니다...새로운 한 주도 언제나 건강하세요...*^*

  8. may 2011.11.28 08:41

    화성에서의 국궁체험이라 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군요
    꼬마들의 포즈도 아주 멋있는데요^^*

  9. ★입질의추억★ 2011.11.28 08:51 신고

    오.. 이거 정말 재미나겠어요. +_+
    여기는 잘 알아놨다가 나중에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
    훈훈한 한주 이어나가시구요. 후보 되신것도 축하드립니다.
    아무쪼록 좋은 결과 꼭! 있으시기 바래요

  10. 朱雀 2011.11.28 09:10 신고

    저도 국궁 체험해보고 싶네요. ^^;;;

  11. 그린레이크 2011.11.28 09:18

    예전에 활쏘기 한번해 봤는데
    생각보다 어렵던데요~~
    지금은 팔힘이 쎄니 도전해보고싶어지는걸요~~

  12. 온누리49 2011.11.28 09:52 신고

    아침 일찍 신문사에 출근해 기사를 쓰느라 답방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일정이 빡빡하네요
    대충 마무리를 짓고 찾아뵙겠습니다.
    오늘도 모두모두 행복한 날이시기를^^

  13. 돈재미 2011.11.28 10:08 신고

    활쏘기가 한번 해보면 무지 재미나더군요.
    예전에 선비들이 활쏘기를 즐겼던 것도
    재미가 있었으니 그랬나 봅니다.
    덕분에 임진왜란때는 선비들이 이 활쏨씨를
    보여서 적과 싸우는데 큰 보탬이 되기도 했구요.

  14. pennpenn 2011.11.28 10:42 신고

    최종병기 할 이후에 활쏘기 붐이로군요
    새로운 한 주를 활기차게 시작하세요~

  15. 하늬아범 2011.11.28 10:42

    활쏘기 체험 함 해보고 싶은데요.

    즐거운 한주 되십시요^^

  16. Zoom-in 2011.11.28 10:54 신고

    어제 최종병기활 영화를 보았는데 수원에 국궁체험장이 있군요.
    꼭 한번 해보고 싶네요. 무척 재밌을거 같아요.

  17. 대한모 황효순 2011.11.28 11:07

    이야~재밌겠다.ㅎㅎ
    날아가는 참새도 잡을수 있겠어요.
    의욕충만~^^

  18. 주리니 2011.11.28 11:38

    저거...
    생각보다 힘들던데요?
    멀리 쏴지지도 않더라구요, 그래도 재밌다는^^

  19. 꽃보다미선 2011.11.28 11:44 신고

    정말 재밌겠네요.
    안그래도 영화 활을 너무 재미게 본터라 ㅎㅎ
    꼭 해보고 싶은 체험이네요 ^^

  20. Yujin Hwang 2011.11.28 12:04 신고

    수원에서 본격활동이시군요^^
    후보도 축하드립니다.

  21. 주테카 2011.11.28 15:42 신고

    하하.. 국궁을 양궁처럼 쏘는 분들도 보이고...ㅎㅎㅎ

‘주필대(駐蹕臺)’,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동천리. 전라북도 기념물 제120호인 이산묘의 곁에 서 있는 절벽에 쓰여 있는 글씨이다. ‘주필’이란 임금이 거동 길에 잠시 머무르거나 묵고 가는 것을 뜻한다. 그런데 이곳을 왜 주필대라고 한 것일까? 전라북도 지역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관련이 있는 곳이 상당하다.

남원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친 이성계가 마이산에 올라가 금척과 관련된 시를 읊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24년 이 고을의 선비들이 뜻으로 모아 새긴 글이라고 한다. 그 커다란 암벽 한편에는 ‘마이동천(馬耳洞天)’이라는 글귀도 보인다.


뜻은 달라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아

천마가 동쪽으로 와 형세가 이미 궁하니
흰털 말발굽 더 건너지 못하고 도중에 쓰러졌네.
연인(내시)이 뼈만 사가고 그 귀만 남기니
변하여 두 봉우리 되어 반공중에 걸려있네

아마도 이성계는 남원 운봉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나서, 스스로 나라를 세울 것을 다짐했는가 보다. 전주에 승리 후 전주에 온 이성계는 정자에 인척을 모아놓고 큰 잔치를 베푼다. 이 자리에서도 이성계는 은근히 자신의 마음을 피력하는 시를 읊기도 했다. 그런 이성계가 이곳을 들렸다는 것이다.




이곳 주필대 옆에는 사우가 있다. ‘이산묘(駬山廟)’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곳은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하나의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주필대의 위에는 1907년 ‘호남의병창의동맹단’의 집결지인 황단 터가 있으며, 그 하단부에는 이산묘라는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이산묘는 면암 최익현선생의 제자이자 고종의 스승인 연재 송병선의 제자들이, 연재의 송병선의 제자모임인 ‘친친계’와, 면암 최익현의 제자모임인 ‘현현계’를 구성한 후 건립한 곳이다. 이산묘 안에는 회덕전과 영광사, 영모사, 대한광복기념비 등이 위치하고 있다.



황단 터는 1907년 의병장 이석용을 비롯한 의병들이 집결하여, 호남 최초로 한말 국권 수호를 위해서 창의하였던 곳이다. 현재 창의동맹터 아래 조선 태조의 건국설화가 있는 곳을 택해서 사우를 건립하여, 항일의병의 위패와 그 기념흔적을 모아놓은 곳으로 지정, 보존가치가 큰 곳이다.

쓸쓸한 이산묘와 주필대, 역사속으로 지다

10월 6일 찾아간 주필대와 이산묘. 세월이 지나면 사람들은 역사를 곧잘 잊는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역사에 대해 무관심한 민족도 그리 흔하지는 않은 듯하다. 수많은 역사의 굴레속에서 잘 잊는 방법이 잘 사는 방법이라는 것을 터득한 것이나 아닌지.




쓸쓸한 이곳에는 앞으로 지나는 차량들만 소음을 남겨 놓는다. 주필대라는 각자가 새겨진 암벽으로는 ‘송악’인 듯한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타고 오르고 있다. 이산묘와 주필대를 거쳐 돌아오는 길가에 ‘용바위’라는 바위를 만난다. 바로 ‘호남의병창의동맹지’라는 곳이다. 마이동천의 입구에 있는 이곳 용바위에서 정재 이석용이 해산 전기홍과 함께 500명의 의병들과 규합하여, 황단을 쌓고 천지신명께 국권회복을 빌었다는 곳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들의 형태는 달라도, 이곳은 나라를 위한 구국의 터가 분명한 듯. 주필대, 이산묘, 황단터인 용바위, 아마도 마이산을 들어가는 이 입구는 나라걱정을 하기에 가장 좋은 터가 아니었는지. 무심히 지나치는 차량들이 소음을 남겨놓는다. 역사는 그렇게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인지.

  1. *저녁노을* 2011.10.15 06:42 신고

    역사는 늘 뒤안길로 사라지는 법이긴 해요.
    지기님으로 인해....알게되는 게 참 많습니다.ㅎㅎ

    자 ㄹ보고가요

  2. pennpenn 2011.10.15 06:45 신고

    2번째 사진의 표석이 엄청 커군요
    토요일을 편안하게 보내세요~

  3.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0.15 06:52

    잘보고갑니다 좋은주말보내세요~
    바쁘시더라도 건강챙기시구요

  4. 꽃보다미선 2011.10.15 07:02 신고

    온누리님아니면 몰랐을 문화재들 요즘들어 잘 보고 있습니다.
    환절기 감기조심하시구요. ^^

  5. 안달레 2011.10.15 07:06 신고

    그러고 보니 온누리님!!!
    제가 태안 백화산에서 내려오면서 길 옆에 있었던 정자 터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것과 그 옆에 있었던 글자들을 보고 뭔가 했었는데
    왠지 온누리님은 알려주실수 있을것 같아서요. ㅎㅎㅎ
    제가 조만간 사진 찍어서 올려놓을테니 한번 가르침을 주십시오^^

  6.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10.15 07:14

    저 역시 역사를 많이 잊고 등한시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납니다.
    이제부터라도 역사 속으로 치열하게 달려가려고 합니다. ^^

  7. 아이엠피터 2011.10.15 07:33 신고

    가끔 저런 역사 문화재 옆에 작은 집 한 채 지어 주고
    귀농이나 귀촌하는 사람에게 무료로 임대해주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알아서 잘 관리는 물론이고 활용도가 높아질텐데..
    숨겨지고 찾기 힘든 문화재, 그 안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기에 늘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8. 광제 2011.10.15 08:08 신고

    이런곳도 있었군요...
    구국의 터...참으로 의미가 깊은 곳이네요..
    주말...즐겁게 보내시구요^^

  9. 예원예나맘 2011.10.15 08:12

    잘 보고 갑니다.^^*
    날씨가 이젠 많이 추워졌습니다. 좋은 곳 담아오실때 감기 조심하세요~
    행복한 주말되세요!!

  10. 영낭자 2011.10.15 08:16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던 제가 쵸큼 부끄러워지네요.

    온누리님~
    웃음 가득한 주말 되세요.^^

  11. Yujin Hwang 2011.10.15 08:23 신고

    저는 어제 뒷마당에서 불난로 피고 고구마 구워먹고 노느라고...^^
    Have a good weekend!!

  12. 온누리49 2011.10.15 08:24 신고

    모처럼 답방을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월주스님께서 군 부대 행사에 참석하신다고
    사진 촬영좀 해달라는 부탁을...^^
    사진도 별로인데 말입니다..
    다녀오겠습니다^^

  13. 신기한별 2011.10.15 08:38 신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14. 예또보 2011.10.15 09:06 신고

    아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주말 잘보내세요

  15. 클라우드 2011.10.15 13:54

    태극 무늬를 보게되면 마음에서 부터 겸허함이 올라옵니다.
    마음에 고운 주말이 되세요.^^

  16. 감생이 2012.11.12 00:58

    마이산을 들렸다가 우연찮게 길을 잘못들어 이곳을 지나쳤습니다
    일행이 없었다면 좀더 시간을 가지고 역사공부를 할수있는기회인데 .....
    이곳에와서 검색을하니
    많이 아쉬움을 남기는군요
    좋은 자료 스크랩해갑니다(_ _)

태조 이성계가 심었다는 나무가 있다. 물론 정확한 것은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무의 수령이 600년이 지났으며, 전하는 말에 의해 이성계가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면서 공을 들일 때, 심었다는 것이다. 이 느티나무는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대치리 788번지, 한재 초등학교 교정에 자리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84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이 느티나무는 멀리서 보기만 해도 그 위용에 압도당할 만하다. 나무의 높이가 34m, 가슴높이의 둘레가 8.78m나 거목으로 생육의 발달이 좋다. 현재는 대치리가 평지로 변하고 한재초등학교의 교정이 되었지만, 이곳의 옛 지명이 ‘한재골’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산의 골짜기에 해당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조 태조는 왜 이 나무를 심은 것일까?

마을에 전하는 바로는 기도를 마친 이성계가 기념으로 이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그 때도 기념식수를 심는 버릇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전국을 다니면서 보면 많은 옛 사람들이 심었다는 나무들을 만날 수가 있다. 아마도 꼭 그런 일화가 아니라고 해도, 이성계와 연관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느티나무는 보존가치가 상당히 높다.

우선 나무의 크기나 생육이 발달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당당한 위용이 사람을 압도한다. 6월 18일 오후에 찾아간 ‘대치리 느티나무’. 멀리서 보기에도 그 나무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학교 교정에는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공놀이며 각종 놀이를 하느라 소리를 치고 있다. 그런 어린 아이들에게 이 나무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성계 할아버지가 심었다는 대요”

아이들이 나무 밑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을 찍고 있으려니 일부러 카메라 앞으로 돌아다니는 녀석들이 있다. 우리도 예전에 저랬다. 소풍이라도 가서 누가 사진을 찍는다고 하면, 괜히 그 주변을 맴돌다가 앞으로 뛰쳐나가고는 했으니까.

“애들아 이 나무 누가 심었는지 알아?”
“그 나무요 이성계 할아버지가 심었대요.”
“어떻게 알아?”
“거기 적혀있어요. 그렇게요. 그리고 선생님이 알려 주셨어요. 이 나무 상당히 중요한 것이라고요”




입을 모아 떠드는 녀석들 때문에 정신이 없다. 나무는 높기도 하지만, 동서로 뻗은 가지들은 땅에 닿을 듯 늘어져 있다. 버팀기둥을 받쳐 놓았는데도 늘어진 가지가 보기에도 멋들어져 보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조선. 그러나 이 나무는 그 숱한 역사의 아픔을 보듬고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천연기념물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몰지각한 사람들

학교 문 안으로 들어가다가 보니, 천연기념물인 나무 옆에 차가 한 대 서 있다. 좀 빼달라고 부탁을 하려고 보니, 입에 담배를 물고 있다. 그것도 초등학생들이 주변에 가득한 교정 내에서 말이다. 예전 같으면 벌써 한 마디 했겠지만, 날도 덥고 그럴 생각이 없다. 일일이 그렇게 역정을 내다가보니 이젠 내가 지쳐가는 듯해서이다. 아무리 나무 아래 평상을 만들고 쉴 공간이라고 해도, 아이들도 있는데 버젓이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아이들에게 무엇을 잘하라고 이야기 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느티나무를 찬찬히 돌아본다. 세월의 연륜이 그대로 들어나 보인다. 밑동 쪽에 혹처럼 불어난 것들이며, 마치 거북 등짝같이 두텁고 거칠어 보이는 표피가 그러하다. 하긴 말이 600년이지 그 숱한 세월을 바람과 눈 비, 폭염에도 이렇게 버티고 있지 않은가? 이 느티나무를 보면서 갑자기 민초들이 생각이 난다. 아무리 험한 세상일지라도 이 나무처럼만 버틸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을 먹고 산 것만 같은 천연기념물 제284호 대치리 느티나무. 그 웅장한 모습처럼 앞으로 더 많은 세월을 살아갈 수 있을까?

  1. 온누리49 2011.06.20 07:16 신고

    오늘 경기도 전통안택굿을 하는 날이라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밤 늦게나 마칠 듯 합니다. 돌아와 뵐께요
    한 주 동안 모두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2. 노지 2011.06.20 07:22 신고

    앞으로 이 나무가 더욱 웅장하게 계속 이 자리를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ㅎ

  3. 모피우스 2011.06.20 07:46 신고

    와... 느티나무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아주 건강하게 보입니다.

    조심히 출장 다녀오세요.

  4.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6.20 08:03

    좋은 말씀 귀담아갑니다^^

  5.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6.20 08:05

    600년이라니 정말 헉 소리나는것같습니다

  6. 귀여운걸 2011.06.20 08:18 신고

    와~ 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느티나무에게서 웅장함이 느껴지네요ㅎㅎ

  7. pennpenn 2011.06.20 09:31 신고

    나무의 포스가 대단하네요~
    월요일을 화끈하게 시작하세요~

  8. Shain 2011.06.20 09:49 신고

    정말 그냥 보기만 해도 사람을 압도하는 멋진 모습입니다
    역사와 함께 자라온 생명이라니 더욱 남다르게 보이네요 ^^
    학교 학생들도 뿌듯하겠어요

  9. 빈배 2011.06.20 10:11

    600년을 한자리에서 세상을 굽어보았다면, 이미 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10. 라이너스™ 2011.06.20 10:37 신고

    정말 오랜 세월 그곳을 지키고 서있었군요^^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11. 그린레이크 2011.06.20 10:51

    정말 오래된 나무군요~~
    그래서인지 넘 멋진데요~~
    여기도 오래된 나무들이 많아 멋진 녀석들을 자주 만날수 있답니다~~~

  12.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06.20 12:32

    대단하네요.
    저큰나무가 건강하게 600년을 버티고 있다는자체만으로도 태조의 강인함이느껴져요,
    대단하네요.
    한번가서보고싶어집니다.

  13. meryamun 2011.06.20 12:38

    정말 웅장하다고밖에 할말이 없는 느티나무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아서 처음 접하게 되네요...

    그저 지금까지 지나온 세월만큼 오래오래 버티고 있기를 바라네요..

  14. 파리아줌마 2011.06.20 16:50

    아주 귀한 나무네요.
    6백년이라~~ 그 세월을 견디고 버틴
    강인함이 느껴집니다. 숙연해지네요,

  15. 빠리불어 2011.06.20 17:59

    아 정말 오래 된 나무님이네여 ㅎㅎ

    왠지 어른 대접을 해드려야할 것 같아갖구 ㅡㅡ;; ㅎㅎ

    행복한 월요일, 온누리님 ^^*

  16. 워크뷰 2011.06.21 07:12 신고

    정말 나무의 위풍이 대단합니다^^

  17. 모르세 2011.06.21 08:34

    조상에 얼이 들어있는 나무이네요.오늘도 행복한 시간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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