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장이나 지역 나름의 독특한 먹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바닷가에 가면 당연히 해산물류의 음식이 많을 것이고, 산 속 깊은 곳에서는 산채나물 등이 지역 먹거리로 자리를 잡는다. 도심인 수원 역시 군데군데 지역의 독특한 먹거리들이 자리를 하고 있다.

 

사람들은 수원의 대표적인 먹거리를 들라고 하면 ‘수원갈비’를 꼽는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역시 매향교 아래편으로 줄을 지어 성업 중인 ‘통닭거리’를 들 것이다. 그러나 이곳 말고도 수원에는 권선시장의 ‘족발집’과 수원 지동시장의 ‘순대타운'이 유명하다. 순대타운은 팔달문 앞의 상권이 밀집되어 있는 곳에 자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을 하고 있다.

 

순대와 곱창, 그리고 야채가 수북하니 먹음직스러운 순대곱창볶음이 1인분에 8,000원이다

 

팔달문 시장을 중심으로 늘어난 상권

 

현재 수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 앞에는 각기 독특한 몇 개의 시장이 모여서, 남문 앞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팔달문시장은 화성 축성 이전부터 이주를 한 백성들과 노역자를 상대로 장시가 개설되었을 것으로 본다.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하기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조 이산이 직접 6만 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이산 정조의 ‘팔달문’에 실린 큰 뜻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장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팔달문이란 말의 뜻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사통팔달’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보다 더 깊은 정조의 뜻이 숨어있었을 것이다.

 

정조는 화성의 북문을 ‘장안문’이라고 했다. 장안문은 바로 도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정조는 이 팔달문 앞에 세계적인 유통망을 갖춘 상권을 조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왕이 직접 투자해 만든 팔달문 앞의 상권, 그것이 바로 이곳에 각기 다른 특색을 갖춘 많은 시장들이 몰려들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장 110여년의 지동시장과 순대타운

 

수원천 물길이 흐르는 수원화성의 남수문에서 동편을 바라보면, 장거리 입구에 화성을 닮은 구조물이 서 있다. 이곳이 바로 개장한지 110여년 정도가 된 ‘지동시장’이다. 이 지동시장은 요즈음 ‘순대타운’으로 인해 유명세를 티고 있다. 상가 1층 전체가 순대집으로 들어선 이곳 말고도 순대집은 20여 곳을 넘는다.

 

 

인심좋은 '남문곱창'의 사장님이 서비스를 해준 순대국과 양념장

 

모처럼 해갈을 시켜주는 비가 뿌리는 날 저녁에는, 술 한 잔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가 않다, 이런 날 찾아갈만한 곳이 바로 순대타운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저마다의 간판을 내건 순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저 이웃하고 있는 순대집들이 정겨운 곳이다. 요즈음에는 외지에서 온 손님들도 이곳을 한 번은 거쳐 가고는 한다.

 

어느 집을 들어가나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 안에 모여 있는 순대집들의 가격은 모두 동일하다. 다만 업주들이 손님들에게 얼마나 친절하게 대해주는가는, 자주 가는 사람들이라야 알 수가 있다. 물론 어느 집을 골라 자리를 잡던지, 손님들에게 정성껏 대하는 것은 매 한가지이다. 그만큼 이 순대타운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고, 저녁시간이 되면 좀처럼 빈자리를 찾기가 쉽지가 않다.

 

 

“순대국물 달라면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8월 12일, 하루 종일 비가 뿌린다. 일과를 마치고 순대타운을 찾았다. 특별히 어느 집을 정해서 다닐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문 앞에 빈자리에 그저 속 편하게 앉기만 하면 되는 곳이 바로 이 순대타운이다. 순대곱창볶음 2인분을 주문하고,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순대와 곱창은 미리 익혀놓은 것이니, 그 위에 야채 등을 푸짐하게 놓아주기만 하면 된다.

 

네모난 철판 위에 가득한 음식. 불 위에서 끓고 있는 음식만 보아도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푸짐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이곳을 찾아와 주문만 하면 된다. 술을 몇 잔 먹다가 보니 팍팍하다. 순대국을 한 그릇 달라고 하니 “한 그릇 그냥 드릴께요.” 란다. 이런 인심이 바로 이곳 지동시장 순대타운의 인심이다.

 

 

그저 편안하게 지인들과 모여 술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 순대곱창볶음 1인 분에 8,000원, 순대국밥은 5,000원이다. 소주 두병을 마시고도 계산은 22,000원이란다. 이곳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혹 화성을 돌아볼 기회가 있다면, 빠트리지 말고 지동시장을 찾아보길 권한다. 사람이 사는 정이 묻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사적 제3호인 수원화성은 그 축성을 규장각 문신 정약용이, 동서양의 기술서를 참고하여 만든 「성화주략(1793년)」을 지침서로 하였다. 재상을 지낸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총괄아래 조심태의 지휘로, 조선조 정조 18년인 1794년 1월에 착공에 들어가 1796년 9월에 완공하였다.

 

화성은 정조 이산이 당쟁에 의한 당파정치 근절과, 강력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포부가 담긴 정치구상의 중심지로 축성되었다. 또한 아버지인 장헌세자를 향한 효심과, 수도 남쪽의 국방요새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축성 이전부터 몰려든 상권

 

성을 쌓기 위해서는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하다. 화성은 축성을 할 이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축성이 시작되자 그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생필품은 물론, 물자조달을 위한 장거리가 형성이 되었다. 팔달문 앞에 있는 상권은 이미 정조 이산이 화성을 축성하기 이전부터, 이곳을 기점으로 난전을 형성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수문을 복원하고 있는 곳에서 그 위편 매향동 방향으로 수원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개울가에 세워 놓은 그림을 그려 넣은 안내판이 눈에 띤다. 팔달문시장에서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그림안내판은, 팔달문시장의 개장배경과 함께 정조 이산의 꿈이 이곳 상권에 함께 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정조 이산이 직접 6만냥이라는 밑천을 대주어 이룩한 시장. 남문인 팔달문 앞에 전국 각처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몰려들어 시장을 일으킨 것은, 바로 이러한 정조의 전폭적인 지지 때문이었다. 정조는 이 시장으로 인해 경제를 살리고 더욱 강한 왕권을 형성할 수 있도록 노력을 한 것이다.

 

전국의 선비상들이 몰려든 수원

 

유상, 일반적인 장사치들이 아니다. 유상이란 수원 팔달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선비들이었다. 물론 이 유상이란 말은 버드나무를 심은 수원을 ‘유경’이라 부른데서 비롯한 용어이다. 이들을 새롭게 조명해서 부르는 용어가 바로 유상이며, 전국 각처에서 모인 선비들로 이루어진 장사치들을 뜻한다. 그래서 이 유상들은 정조의 효심과 장조의 강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뜻에 동참을 한 사람들이었다.

 

 

 

그 유상들 중에는 윤선도 가문의 후손들을 비롯하여, 전국의 내노라하는 선비들이 참여를 하였다. 정조는 이들에게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주었다. 갓과 인삼의 유통권을 갖는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수원 팔달문 시장의 우리나라 시장경제의 중심에 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유상의 근거지인 수원의 팔달문 시장. 지금도 이곳은 팔달문시장을 중심으로 주변에 7~8개의 시장이 모여 있는 상권의 중심지이다. 수원시는 이곳을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사업비 12억원(국,·도비 포함)을 투자해, 유상박물관과 팔달문시장 문화센터, 조형물 설치, IT 콘텐츠 제작 등 1차 사업을 완료했다. 또한 2차 사업은 12월까지 10개월에 걸쳐 추가로 진행될 예정이다.

 

 

 

팔달문 시장 등 재래시장 경쟁력을 키워주어야

 

그러나 이런 제반의 행위들이 의미가 있는 것인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수원시는 수원역사의 AK백화점을 비롯하여 역세권 상권을 조성한다며 대형 롯데쇼핑물 등을 허가를 내주었다. 거기다가 호매실 등에는 대형 매장인 홈플러스 등이 속속 입점을 위한 공사에 착수를 했다. 이러한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과연 기존의 상권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어찌보면 시가 스토리텔링을 통하여 ‘유상선포식’ 등을 하고 재래상권을 살리겠다고 하지만, 이곳에 있는 상인들은 그리 마음이 편치가 않다고 한다. 아무래도 그러한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대형마트 등의 영업시간을 한 달에 두 번정도 쉬는 날을 제정하고, 영업시간을 단축한다고 하지만, 그도 '눈 가리고 아웅' 이라는 것이다. 집집마다 대형 냉장고 등을 갖추고 있는 작금에 하루 정도 대형마트 등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재래시장으로 상권의 중심이 옮겨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근본적인 재래시장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조치가 준비되지 않는다면, 이산 정조의 꿈은 220년이 흐른 지금 끝이 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세상은 변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지켜져야 할 것은 지켜져야 하지 않을까? ‘유상선포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유상들이 옛 선조들의 당당함을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단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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