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의 명승인 광한루원 일원에서 매년 열리고 있는 춘향제가 올해는 지난 416일 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참사에 대한 국민적 애도에 동참하고자 잠정 연기하였었다. 당초 51일부터 5일까지 열릴 예전이었던 제84회 춘향제는 날짜를 미뤄 612일 미스 춘향선발을 시작으로 17일까지 6일간 열린다.

 

12일 비로 인해 개막식 행사는 13일로 연기가 되었으나 미스 춘향선발대회는 예정대로 마쳤다. 올해 미스춘향에는 진에 임하늘, 선에 박우정, 미 강아랑, 정 김재은, 숙 양소연, 현 정윤주가 선정되었으며, 6명의 미스춘향은 13일 오전 10시 남원시청 방문을 시작으로, 남원과 춘향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널리 홍보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13일 광한루원을 찾아가다

 

미스 춘향선발대회로 시작으로 문을 연 제84회 춘향제는 17일까지 엿새 동안 춘향전을 소재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13일 일직 남원을 찾았다. 그동안 몇 번인가 벼르고 있던 춘향제를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해보고자 마음을 먹은 것이다. 광한루원 앞 길가 요천가에는 수많은 부스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전통 먹거리부터 수많은 기념품들, 그리고 남원시의 각 읍면과 동, 단체들이 마련한 먹거리촌, 행사장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는 각설이패, 광한루원 특설무대에서 펼쳐 진 개막공연과 함께 여기저기 볼거리, 즐길거리가 넘쳐났다. 더구나 요천 둔덕에 줄지어선 벚꽃나무들은 그대로 터널을 이루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다.

 

 

오후가 되자 모여 든 사람들로 인해 걷기가 힘들 정도이다. 오후 2시부터 광한루 옆에 마련한 특설무대에서는 춘향의 정절을 기리는 춘향제향이 시작이 되었다. 유림을 대표해서 참석을 한 사람들로부터 미스 춘향, 그리고 각 사회단체에서 참석을 한 일행, 남원시민 등 30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향이 시작되었다.

 

춘향사당에 들려 정절의 마음을 기리다

 

한낮의 더위는 숨이 가쁘게 만들 정도이다. 전날 비가 내렸다고 하지만 가뜩이나 더운 날씨에 모여든 사람들의 열기까지 더해 광한루원은 후텁지근하다. 물가에 자리하고 있는 광한루원은 보존을 한다고 출입을 막아놓았다. 먼저 광한루원 옆에 있는 춘향의 사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춘향제를 찾아왔으니 사당에 들려 정절을 지킨 춘향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연신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는 춘향 사당을 돌아보고 바로 제향이 시작되는 무대를 찾았다. 중앙에는 춘향의 영정이 놓고 그 앞에 상을 차렸다. 남원국악원의 단원들이 소리와 춤으로 제향을 시작했다.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춘향을 기리는 소리를 하고 난 뒤 한 여인이 하얗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살풀이 수건을 날리면서 살풀이춤을 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런 모습을 담아내느라 열심이다. 그 뒤로 6명의 미스춘향이 상 앞에 도열을 해 자신들이 춘향의 정신을 본받아 많은 홍보를 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리고 제향이 시작되었다.

 

 

엿새 동안 많은 행사 이어져

 

주말인 14일과 휴일인 15일에는 성악과 오케스트라가 하모니를 이루는 '세기의 사랑가',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인 광한루연가 '춘향', 오페라 춘향 갈라쇼, 신판 춘향 길놀이, 방자 프린지(마당놀이) 등이 열린다. 이밖에도 12년 만에 재현되는 용마놀이의 길놀이를 비롯해 K-뷰티콘테스트, 춘향시대 속으로, KBS 전국노래자랑, JTV '와글와글 시장가요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행사는 광한루원 특설무대와 밖에 마련한 무대, 그리고 광한루원 안에 마련한 마당놀이 마당, 광한루원 건너편에 있는 무대 등 요천가 곳곳에서 열리게 된다. 많은 행사와 먹거리 즐길거리가 풍부한 제84회 남원 춘향제. 그동안 세월호 참사로 인해 침체되어 우울하기만 했던 표정들이 모처럼 환하게 바뀐 모습들을 만났다.(남원 공한루원에서)

남원하면 사람들은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일까? 아마 십중팔구는 ‘춘향이’라고 할 것이다. 때로는 ‘추어탕’이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요즈음 한창 각광을 받고 있는 ‘지리산 둘레길’이란 대답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춘향이를 이야기 할 것이고, 그래서 남원을 ‘춘향골’이라고 부른다.

남원에는 춘향이에 대한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상당히 많다. 우선 지리산 입구에 가면, 계곡 가에 육모정 맞은편 계단위로 ‘춘향묘’가 자리한다. 전주에서 남원으로 들어가는 우측 길가에는 춘향이와 이몽룡이 이별을 했다는 ‘오리정’도 있다. 떠나는 임을 차마 못 떠나 보내고 버선발로 쫓아갔다는 ‘춘향이 버선발’이라는 곳도 있다.


광한루의 연정을 느낄 수 있는 또 한 곳

그러나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이야기는 광한루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 광한루를 연인들과 즐겨 찾는다. 아마도 이몽룡과 춘향이의 사랑처럼, 그렇게 깊은 사랑을 엮어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그렇게만 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한 가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 사랑 뒤에는 변학도라는 지저분한 인간 하나가 또 있다는 사실 말이다.

광한루에서 요천에 걸린 춘향교를 건너면 사랑의 광장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춘향이 테마공원이 자리한다. 춘향이 테마공원. 연인들은 이곳을 찾아 춘향이처럼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그네를 타면서 춘향이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 역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춘향이가 신관 사또의 수청을 거절하고 옥에 갇힌 장면이며, 동헌의 앞마당에서 주리를 틀리는 모습도 보인다. 돌아다니다가 보면 이런저런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만, 글쎄다 과연 춘향이와 이몽룡의 사랑이야기가 그렇게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다섯 부분으로 나뉜 테마공원

춘향테마공원은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분이 된다. 그 첫째는 만남의 장이다. 춘향이와 이몽룡의 만남을 주제로 한다. 둘째는 맹약의 장이다. 이곳은 춘향이와 이몽룡이 서로가 사랑을 언약한 것을 주재로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사랑과 이별의 장이다. 두 사람이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고 네 번째는 동헌과 옥이 있는 시련의 장이다. 이몽룡이 한양으로 가고난 후, 신관사또에 의해 수청을 종용 당하고 옥살이를 하는 춘향이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축제의 장이다. 과거에 급제한 이몽룡이 내려와 옥중 춘향이와 다시 만나고, 춘향이를 가마에 태워 한양으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춘향전은 지금 세상을 미리 내다 본 소설이었다.

사람들은 신관사또 변학도를 나쁜 남자로 몰고 간다. 탐관오리에 여색이나 탐하는 그런 인간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춘향전이 지어진 시기를 조선조 영조 때로 보고 있다. 이때는 조선후기로 계급타파와 사회개혁사상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이다. 춘향전에서 보이 듯, 퇴기 월매의 딸 춘향이와 당시 사대부가의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은, 이미 사회에 팽배한 계급타파를 은연 중 내포하고 있다.

또한 신관사또를 징벌하는 내용으로 보아도, 당시의 사회개혁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을 때란 생각이다. 이런 춘향전과 같은 소설이 민초들에 의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은, 그만큼 당시에는 이미 민초들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어찌 보면 당시의 사회가 춘향이와 이몽룡, 그리고 변학도라는 신관사또를 연적으로 설정을 해놓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기 위한 소설이었다는 생각이다. 조선조 말엽의 양반사회에 대한 부패상의 풍자와, 관료 봉건 제도에 대한 반항을 관기의 딸인 성춘향의 수절을 빌어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1700년대 중반에 300년 뒤의 세상에서 멋대로 방종을 일삼는 사람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춘향전은 판본의 이본이 5종, 사본이 약 20여종, 활자본이 50여종에 번역본이 6 ~ 7종 정도가 있을 정도로 당시의 베스트셀러였다. 그 수많은 책들과 판소리까지 전해지면서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십장가로 본 여인의 일부종사, 듣고 깨우쳐야

‘십장가’가 있다.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불려나가 형장에서 태형을 맞는 장면이다. 태형을 맞는 춘향이는 절규에 가까운 소리를 한다. 그것이 유명한 십장가이다. 지금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심장가. 그것은 바로 열녀 춘향이가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뜻이오니, 일개 형벌 치옵신들 일 년이 다 못가서 일각인들 변하리까?"

이 때 남원부 한량이며 남녀노소 없이 구경할 제, 좌우의 한량들이, "모질구나 모질구나. 우리 골 원님들이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왜 있으며, 저런 매질이 왜 있을까? 집장 사령놈 눈 익혀 두어라. 삼문밖 나오면 급살을 주리라." 보고 듣는 사람이야 누가 아니 낙루하랴"
둘째 낱 딱 부치니, "이부절을 아옵는데, 불경이부 이내 마음이 매 맞고 죽어도 이 도령은 못 잊겠소."
셋째 낱을 딱 부치니, "삼종지례 지중한 법 삼강오륜 알았으니, 삼치 형문 정배를 갈지라도
삼청동 우리 낭군 이도령은 못 잊겠소."
넷째 낱을 딱 부치니, "사대부 사또님은 사민공사 살피잖고 위력공사 힘을 쓰니, 사십팔방 남원 백성 원망한을 모르시오. 사지를 가른대도 사생동거 우리 낭군 사생간에 못있겠소."
다섯 낱 딱 부치니, "오륜윤기 그치잖고 부부유별 오행으로 맺은 연분 올올이 찢어 낸들 오매불망 우리 낭군 온전히 생각나네. 오동추야 밝은 달은 임계신데 보련마는, 오늘이나 편지 올까 내일이나 기별올까. 무죄한 이내 몸이 오사할 일 없사오니, 오결 죄수 마옵소서. 애고애고 내 신세야." (하략)



어찌보면 추냥전은 이 시대를 예고한 소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자 미상에 남원이라는 곳에 한 여인과 사대부가의 도령을 설정한다. 그리고 변학도라는 여인을 참닉하는 인간 하나를 덧붙인다. 이 내용을 잘 보자. 있다고 해서 여인과의 스캔들로 심심찮게 인구에 회자가 되고 있는 가진자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의 변하도가 아닐까? 

그리고 또 하나,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사회가 막장이요, 방송이 막장이다. 막장을 종용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래도 꿋꿋하게 일부종사를 하는 춘향이는 바로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을 질타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신분적 차이를 부수고 천기의 딸 춘향이를 끝까지 지켜내는 이몽룡이라는 남자는, 이 시대 많은 남자들에게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춘향전이 지금 시대에 들려주는 진실. 그것은 무엇이엇을까? 난 이 춘향전을 보고 들을 때마다, 이 책은 지금 시대를 예견한 책이었다는 생각읗 한다.  열여섯 살의 춘향이도 죽음을 불사하고 자신의 사랑하는 임을 지켰다는데, 요즈음 사람들 과연 이렇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몽룡이는 그러한 춘향이를 믿고 멀리 남원까지 내여가 재회를 하였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그렇게 한 여인만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묻고 싶다.

적의 침입을 신속히 제압하거나, 적을 교란시키기 위한 작전 중에 ‘패스트로트’가 있다. 헬기강하라고 하는 이 패스트로트는 헬기를 이용해 작전지역에 신속히 하강하여 적을 제압하는 것이다. 10월 1일 남원 요천가. 헬기 두 대가 군민한마당큰잔치 개막을 하기 전 나타났다.

행사장 앞에 도착한 헬기로 먼지가 일자, 아이들이 환호를 하고 난리법석이다. 먼지가 나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관람객을 메운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이 진기한 장면을 보려고 까치발을 딛는다.



줄 하나로 의지한 채 하강하는 특수부대

헬기에서 줄이 내려지자, 그 줄을 타고 특수부대원들이 신속하게 하강을 한다. 그리고 사주경계에 바로 들어간 후, 이동을 한다. 패스트로트는 바로 신속한 적과의 대응이나 진압을 위한 것이다.


작전지역에 도착한 헬기에서는 줄이 내려졌다.



줄을 이용해 강하한 특수부대원들은 바로 사주경계에 들어간다. 그리고 신속하게 작전지역으로 이동을 한다. 적의 진압이나 휴방교란 등을 할 때 패스트로트를 이용한다. 

특수부대원들을 작전지역에 내려 놓은 헬기는 바로 줄을 걷고 이동을 한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오늘 남원 요천가 사랑의 광장에서 열린 제63주년 군국의날 '남원 민군한마당큰잔치'에서는 이런 특수부대 및 특공무술 등이 선을 모여 시민들의 마음을 든든히 했다.

이제 행사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엄청 피곤하네요. 출연 인원만 300여명에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지는 행사였습니다. 다행히 날이 쾌청한 주말이라 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아 함께 즐거워했습니다.

다양하게 펼쳐진 행사는 2,0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행사장을 찾아 즐겼으며, 아무 탈 없이 기분좋은 마무리를 하였습니다. 행사를 걱정해 주신 이웃님들 고맙습니다. 편한 시간되시고, 내일부터 이모저모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남원 시내를 가로지르는 요천이 흐르고, 뒤로는 금암봉이 솟아 있다. ‘금수정(錦水亭)’은 그렇게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요천을 바라보면서 금암봉을 오르는 중턱에 자리한 정자 금수정. 말 그대로 물 맑고 산세가 수려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팔작지붕이다.

남원 광한루원에서 요천을 가로지르는 승사교를 건너면, 금암봉을 오르는 나무 계단이 끝나는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금수정이 있다. 금수정은 1936년에 이현순, 조광엽, 서봉선 등이 주축이 되어, 시를 읊고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정자라고 한다. 세월이야 그렇게 물 흐르듯 70여 년이 훌쩍 지나버렸지만, 새롭게 단청을 한 정자는 갓 조성을 한 것처럼 보인다.



남원 요천 가에 서 있는 금수정과 정자 안에 걸린 퍈액

비안정은 사라지고 금수정이 자리 잡아

금암봉이란 이름은 요천의 물가에 커다란 반석에 붙인 이름이다. 족히 백여 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은 바위인데, 주변 경관이 빼어나 많은 사람들이 천렵을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한다. 용성 팔경 중에는 ‘금암어화(金岩漁火)’라고 하여, 밤에 고기를 잡는 불빛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것을 알려주고 있다.

비안정은 요천가 금암봉 아래 있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현재의 금수정 인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금암봉의 부근에는 비안정, 혹은 비오정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 이름이 정자 명칭에서 비롯한 것이란 생각이다. 옛 시구에는 이 비안정에 대한 글이 보인다.


금암봉을 오르는 나무계단과 정자 앞으로 흐르는 요천

사방 십리에는 저녁 안개 피어나고
소나무 대밭 속에 작은 정자 하나.
필마로 찾아오니 날은 이미 저물고
외로운 여정 속에 새벽에야 닿는구나.
오작교 가로질러 광한루에 당도하니
교룡산을 둘러싼 옛 산성이 보이네.
이곳에서 그대와 노년을 마칠까
늙어 요천가에 낚시나 드리우세.

광해군 1년에 공조참판을 지낸 현곡 조위한의 시이다. 조위한은 글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주생면 제천리에 도산정을 건립하였다. 이렇듯 요천가에 서 있었던 비안정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기에 빠짐이 없었나 보다.



아름다운 조각과 단청

금수정은 민족정신이 깃든 정자

금수정이란 현판의 글씨는 1935년에 조정훈이 썼다. 조정훈은 남원 광한루의 ‘호남제일루’의 현판을 쓰기도 했다. 금수정을 지을 때는 일제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이 한창 펼쳐졌던 시기였다고 한다. 그리고 금암봉 정상에는 남원의 신사가 세워졌는데,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맞서 이곳에 정자를 새웠다고도 전한다. 즉 이곳에 금수정을 짓고 신사참배를 하러 간다고 오르다가, 이곳에서 멈추었다는 것이다.

정자는 주심포계로 배흘림기둥을 놓았다. 연등 천정에 우물마루를 깔고, 난간을 밖으로 내어돌렸다. 당시의 정자치고는 상당히 화려하게 지은 건축물이다. 아마 신사보다 더 잘 짖겠다는 마음이 정자에 배어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정자에 올라 내려다보는 요천과 교룡산성, 그리고 광한루원은 예전과 다름이 없다.


금수정 현판과 벼랑 위에 선 금수정

가파른 절벽에 앞으로 기둥을 내어 정자를 내어지었다. 이 정자에 올라 시 한수 읊으며, 나라 잃은 슬픔을 가신 것은 아니었을까? 요천 물가에 한 다리를 들고 서있는 새 한 마리가, 무엇인가를 잡았나보다. 큰 날개를 퍼덕이며 멀리 날아간다. 그 새 등에 마음을 실어 따라갈 수만 있다면. 아마 그런 마음들이 금수정을 이곳에 지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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