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입춘(立春)입니다. 말 그대로 오늘부터 봄이 시작되는 것이죠. 며칠간 혹독한 추위를 우리는 흔히 ‘입춘추위’라고 합니다. 아무리 추워도 봄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봄을 세운다.’ 우리 선조님들은 참 말을 멋지게 표현을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입춘에는 ‘춘축(春祝)’이라고 하여 좋은 글귀를 대문이나 기둥 등에 써 붙이기도 합니다. 이는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첫 절기인 입춘에 글을 붙여, 그 해에 그런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것을 춘축, 혹은 ‘춘첩자’라고 했으며, 상중에는 이런 글을 붙이지 않습니다.


입춘축대로 되소서.

입춘에 많이 사용하는 글귀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혹은 ‘국태민안(國泰民安) 가급인족(家給人足)’을 많이 써 붙입니다. 조금 글께나 읽은 선비님들은 이보다는 조금 글귀가 많은 것을 좋아했는지,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만복래(開門萬福來)’나 ‘부모천년수(父母千年壽) 자손만세영(子孫萬世榮)’ 등의 글귀를 붙이기도 합니다.

이런 좋은 글귀를 써 붙이고 나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들이, 새해의 첫 절기를 편안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입춘일에 여러 가지 일 년의 운세를 미리 알아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한 해를 세운다는 뜻을 가진 입춘이니, 우리의 심성에서는 이 날이 바로 새해의 첫날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날 무가(巫家=무당집)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차려 놓고, 신자들을 위한 축원을 합니다. 이것을 ‘입춘굿’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입춘일에는 일 년의 운세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무가를 찾아들기도 합니다.

보리뿌리 점도 치고

입춘은 저리 중 가장 첫 번 째 절기입니다. 실제적으로 농촌에서는 입춘을 맞이해 농사가 시작됩니다. 그동안 얼어붙었던 땅이 해동이 된다고 하여, 이날부터 농기구를 손질하고 농사준비에 바쁘게 움직입니다.

입춘 일에 시골에서는 보리뿌리를 캐어보기도 합니다. 이것을 ‘보리뿌리 점’이라고 하는데, 보리 뿌리를 캐보아 가닥이 세 가닥이면 그 해는 풍년이 든다고 합니다. 두 가닥이면 평년작이고, 뿌리에 가닥이 없으면 흉년이 든다고 합니다.

또한 이 날 오곡의 씨앗을 전이 낱은 솥이나 철판 등에 놓고 볶아보기도 합니다. 그 중 가장 먼저 밖으로 튀어나온 곡식이 그 해에 풍년이 든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설은 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그래도 옛 선조님들의 마음속에 풍년을 얼마나 갈구했는가를 알아볼 수 있는 풍속 중 하나입니다.

역사적으로 흑룡 해인 임진년은 우리나라는 많은 환난이 있기도 했습니다. 올 해 역시 힘들 것이라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런 임진년 입춘 일에 그저 잘 쓰지 못하는 글일망정, 정성을 들여 입춘축 하나 써서 문에 척 붙이시기 바랍니다. 제가 춘축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귀는 바로 ‘부여해 수어산(富如海 壽如山)’이라는 글귀입니다. ‘복은 바다처럼, 명은 산처럼 ’이라는 글이죠. 그 뜻대로 이루어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의 민속은 정월에 중점적으로 연희가 된다. 이렇게 모든 기원성 민속이 정월에 몰리는 것은, 일 년을 시작함에 있어서 풍농과 가내의 안과태평 등을 얻기 위한 뜻이다. 정월 초하루가 되면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난 뒤, 초이틀은 ‘귀신 날’이라고 하여서 문밖출입을 삼가고 집안에서 근신을 한다.  

초사흘서 부터는 하늘에서 ‘평신’이 내려오는 날이라고 하여서, 마을의 풍장패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그렇게 지신밟기를 하는 풍장패들이 길에서 만나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싸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월 열나흘날 밤에는 횃불싸움, 석전, 줄다리기 등이 이웃마을과 벌어진다. 또한 달이 뜨기를 기다려 달집태우기를 한다. 이렇듯 정월 초사흘부터 시작하는 놀이는 정월 열나흘에 정점에 오른다.

풍농을 유도하는 의식인 볏가리 대 세우기

논 가운에 세우는 볏가리 대

정월 열나흘날 낮이 되면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마친 마을의 풍장패가, 먼저 대동우물에 찾아가 우물고사를 드린다. 그 사이 마을 사람들은 널따란 논 한 복판에 높이 짚으로 감싼 대를 세운다. 그 대의 끝에서 논바닥까지 짚으로 엮은 줄을, 세 갈래나 다섯 갈래를 늘인다. 그리고 그 갈래가 진 줄에는 벼, 기장, 수수, 콩 등 오곡을 봉지에 넣어서 매달아 놓는다.

마을마다 이 볏가리 대를 만드는 방법은 약간씩 다르다. 그렇게 줄을 늘여놓은 다음, 볏가리 대 밑에는 쌀가마를 갖다가 놓는다. 모든 준비가 끝나면 제상을 준비하고, 마을에서 선정된 제관이 제를 지낸다. 정월 열나흘날의 볏가리 대를 세우는 의식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리고 음력 2월 초하루가 되기를 기다린다.

영등 날에 내려 풍농을 기원하다

음력 14일에 세운 볏가리 대는 음력 2월 초하루에 내린다. 2월 초하루는 영등할미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날이라고 한다. 이날 바람이 많이 불면 그 해는 가뭄이 든다고도 한다. 이날 마을 주민들은 모두 볏가리 대 주변으로 모여, 볏가리 대 주위를 돌면서 풍장에 맞추어 흥겹게 춤을 춘다.

그런 다음에는 제상을 차리고 제를 올린다음, 볏가리 대를 내린다. 주머니 안에 있는 곡식을 꺼내 싹이 얼마나 자랐는가를 보고, 그 해의 풍농을 점치기도 한다. 내린 볏가리 대에서 떼어낸 주머니는 ‘천석이요, 만석이요’라고 외치면서 가마니 안에 집어넣는다. 이런 행위는 모두 천석만석의 소출을 내게 해달라는 기원이다.  

2005, 2, 9 한국민속촌

태안군 이원면 관리에서는 마을에 있는 무속인이, 볏가리 대를 세우는 날 우물에 가서 축원을 한다. 그리고 대나무에 한지를 오려 붙인 신장대를 마을주민이 잡으면 경을 읽는다. 신장대는 마을 돌아다니면서 마을에 있는 사악한 귀신들을 쫒아낸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정월의 민속은 기원성을 띠고 있다

‘가리’란 단으로 묶은 장작이나 볏섬 등을 차곡차곡 쌓은 것을 말한다. 또한 곡식이나 장작 따위를 세는 단위이기도 하다. 한 가리는 스무 단을 말하는데, 볏가리 대란 이렇게 곡식을 쌓아놓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월에 연희가 되는 민속은 대개가 기원적 성격을 띤다. 줄다리기, 장치기, 볏가리 대 세우기 등 이 모든 것은 다 풍농을 얻기 위한 방법이다.

한국인의 생활에서는 풍농이나 풍어, 혹은 마을과 가내의 평안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풍년이 들어서 모든 식솔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런 사고가 이렇게 다양한 정월의 놀이문화를 창출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농촌에서는 그러한 마음속의 바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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