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리를 걷다가 보면 재미난 모습들을 볼 수가 있다. 예전 같으면 그거 그러려니 하고 지나치겠지만, 요즈음은 나이가 먹어서인지 모든 것이 다 반갑고 새롭기만 하다. 이런 나를 두고 아우 녀석은 “형님도 많이 늙었나보네요. 이제 얼마 보지 못할 것 같으니 그런 것이 다 새록새록 재미가 있는 것인가 봅니다.”란다.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3월 17일(토) 오전에 취재를 나갔다가 행궁길로 접어들었다. 행궁길에는 지난해부터 조성한 화분이 길에 놓여있다. 오늘 보니 그 화분에 심겨져 있던 나무들이 다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계절이 봄이다 보니, 딴 꽃으로 갈아 심으려는 것인가 보다. 그런데 그 화분 두 개에 참 낯선 것들이 놓여있다.



이런 풍산개 두 마리가 천연덕스럽게 화분 안에 들어가 있다. 배를 깔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두 녀석. 풍산개인 행궁이(암, 3개월)와 풍산이(수, 3개월)이다. 이 녀석들 안에 넣어두었더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희들끼리 치고 받는다고. 그래서 화분 위에 올려놓았다는데, 이 녀석들 아무래도 저희가 개 꽃인줄로 알거나, 아니면 전생에 꽃이었거나.



이 두 녀석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녀도, 화분 안에서 나오려고 하질 않는다. 토요일 졸지에 행궁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인가가 좋아진 행궁이와 풍산이. 이 녀석들은 인가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누구는 그래도 재물이 있어야 한다고도 할테고, 누구는 건강이 최고라고도 할 것이다. 또 누구는 그래도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도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맞는 말이다. 그 모든 것이 정말로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 하나만을 택하라고 한다면, 과연 무엇을 택할 것인지. 

며칠 전부터 영 몸이 좋지가 않다. 행사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행사를 총 기획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저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두드리고 앉았으니, 무슨 힘이 들 것인가? 라고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준비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과중한지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놀고 먹는 줄 아는가보디.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곁을 지키는 사람

이것저것 행사 준비를 체크하고 관계기관과 수시로 통화하고, 거기다가 행사 당일에나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공연팀이 많다보니, 수시로 참석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또 전시까지 준비를 해야한다. 이 모든 것이 육체적인 부담이 아니라 정신적인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을, 곁에서 보기에는 알 수가 없으니 그냥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밖에.

이런 행사를 해본 사람들 같으면 그 기획이나 진행이 얼마나 힘든 것인줄을 알겠지만, 주변에 이런 행사는 처음 있는 일이니 아무도 받는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목이 따갑고 침조차 삼킬 수가 없다. 기침을 할 때마다 목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절집 안에서 산다는 것이 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바로 몸이 아플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곁에 사람이 필요할 때는 몸이 아플 때라고 이야기들을 쉽게하고는 하지만, 그런 환경에 처해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조차 말하기가 힘들어진다.

왜, 그러고 사나? 라고 물으면 할말이 없다. 바로 인생을 잘 못 살아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에 살가운 사람들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미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면, 지난 세월을 후회를 하는 것이지만 그도 이젠 지쳐버렸다. 한 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닌, 말이라도 걱정을 해주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는다.

나이먹어 사는 삶에도 종류가 있다는데

나이가 먹어 사는 세상은 각기 그 사는 정도에 따라 별칭으로 표현을 한다. 신선처럼 사는 사람은 노선(老仙). 학처럼 여유롭고 기픔이 있게 살면 노학(老鶴), 나이가 먹어서도 젊은이처럼 살면 노동(老童), 그저 평범한 노인네처럼 살면 노옹(老翁)이라고 한다. 노광(老狂)은 말 그대로 미친 것처럼 심술이나 부리고 사는 사람을 말하며, 노고(老孤)는 혼자 외롭게 사는 사람을 말한다. 그리고 늙어서 돈 한푼 없이 궁상을 떨고 사는 것을 노궁(老窮)이라고 하며, 몸도 마음도 병들어 추한 모습으로 사는 것을 노추(老醜)라고 한다,

나는 어디에 속했는가를 곰곰 생각해 본다. 좋은 것은 하나도 없는 것만 같다. 그래서 이럴 때 정말로 곁에서 온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혼자 있어 편하다는 말은 정말 웃기는 말이라고 생각을 한다. 사람은 역시 사람하고 살아야 제대로 삶을 사는 것이란 생각이다. 몸도 마음도 아픈 날, 가을비까지 부슬거리고 내리니, 궁상 한 번 제대로 떨고 싶었나보다. 

나이가 든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바로 곁을 지켜주는 따듯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행복이란 생각이다.   

모처럼 마음 편하게 기차에 올랐다. 그저 단 며칠이지만, 세상 시름 모두 내려놓고 쉬러가는 길이다. 기차에서부터 몸을 축 늘어트린다. 3일간이지만, 세상에서 피곤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다. 잠시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내릴 때가 되었다. 아마도 그동안 이일저일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람을 지치게 만든 것인가 보다.

역에서 내려 차를 타려고 택시 승강장 쪽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다. 뒤를 돌아보니 낯선 남자 하나가 쫒아온다.

“선생님 저 모르시겠어요?”
“잘 모르겠는데요.”
“벌써 한 8년 된 것 같네요. 잘 모르실거예요”
“죄송합니다만 기억이 나질 않아서요. 누구신지?”
“저 예전에 역전에서 노숙하던 사람입니다. 선생님께 매번 술값을 달라던”
“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 그 안에는 별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밥 대신 술을 사달라던 사람이

그렇게 이야길 듣고 보니 얼굴이 조금 떠오르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몰골이 추했을 때고, 지금은 이렇게 멋진 신사가 되어있으니 알 수가 있나. 잠시 이야기를 하자고 근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시면 저는 아마 지금도 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을 겁니다.”
“아니,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나저나 지금 몇 살이세요?”
“저 지금 마흔 일곱입니다. 이름은 ○○○이구요”
“그래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쉴 새 없이 퍼붓는 질문에 이 분 웃어가면서 이야기를 한다. 당시 매년 연말이 되면 내가 하는 일이 있었다. 세상에서 많은 분들게 너무 많이 받았다고 늘 미안한 생각이 들었을 때다. 조금이나마 남에게 베풀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 털목도리와 털장갑, 양말 그리고 과일과 빵 등을 봉지에 담아 50봉지 정도를 준비해, 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것 말고 10,000원만 달란다. 술이나 한 잔 먹겠다고 하면서. 그래서 돈을 주었더니, 이 사람이 역에서 만날 때마다 술값을 달라는 것이다. 노숙을 하면서 오죽이나 힘이 들면 그럴까하고 이해도 하지만, 심한 것 같아 혼을 낸 적이 있다. 나이도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술 먹을 돈으로 밥을 먹고 힘을 내 살아갈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이다.

그 뒤로 그 사람을 역에서 볼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보아도 어디로 갔는지 그 뒤로 보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선생님께서 그렇게 혼을 내시고 난 뒤 처음에는 더러워서 살아보겠다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원망을 하면서요. 그런데 돈이 모이고 방이라도 얻고 보니, 선생님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서 여기저기 찾았는데 영 소식을 듣지 못하겠대요.”

세상은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된다고 했던가? 그 일 이후 난 그곳에서 사람들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 고장을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그쪽으로 몇 년을 발길도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신수가 훤해진 사람을 만난 것이다. 역시 세상은 이래서 재미가 있는 것인지.

아마도 이 사람은 무슨 이유로 노숙을 했는지는 몰라도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나보다. 그렇게 바로 일어설 수가 있었다고 하는 것을 보면, 노숙인들이라고 다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마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도 남들에게 아픔을 당한 것이, 다 이렇게 마음을 아프게해서 나도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그 모든 것이 그대로 받는 업보는 아닐까 모르겠다. 

“선생님 연락처 하나 주세요. 제가 아이들하고 꼭 한 번 찾아뵙고 싶습니다. 제 아내도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어합니다”

명함 한 장을 건네주고 돌아 나오면서, 어쩌면 이것이 올 한가위 선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마도 이 사람이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 아닐는지. 날이 잔뜩 흐렸는데도, 기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맑음이다.

최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