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마을에서 마국산 줄기가 있는 부처박골로 들어가는 길. 마을을 지나 하천을 따라 500m 정도를 지나면 동물의 분뇨를 갖고 비료를 생산하는 공장을 만난다. 이곳에서 500m 정도를 작은 내를 건너 산 쪽으로 오르다가 보면 '문화재 관리소'란 작은 가건물이 있고, 숲길 안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떨어진 나뭇잎이 발밑에서 바스락거린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어서 그런가, 떨어진 낙엽들이 그대로 쌓여있다. 밟는 촉감이 좋아 이리저리 길을 벗어나 낙엽을 밟아본다. 마을에서 '부처바위'라고 부르는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바위인줄만 알 정도로 희미한 선각처리가 된 마애불. 현재 이 마애여래좌상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9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바위 주변에는 누가 쌓은 것인지 여기저기 돌탑이 쌓여져 있고, 하천도 큰 돌을 이용해 잘 정비가 되어있다. 마애여래좌상에서 조금 떨어진 우측에는 돌로 쌓은 작은 네모난 돌집 안에 부처를 모셔놓기도 했다. 그동안 누군가가 이곳을 관리를 잘 해온 듯하다. 커다란 바위는 주변에 보호책을 쳐놓았다. 불상은 높이 7m 가 넘고 동편을 바라보는 편편한 바위를 다듬어, 부조 한 후 선각처리를 하였다.

 

  
부처바위에 선각한 마애여래좌상. 얼굴 주변에는 7겹의 두광이 있고,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결가부좌한 모습.

 

수인으로 보아 아미타여래상으로 보이는 이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세월이 지난 탓일까? 육안으로도 잘 식별이 되지 않을 만큼 선이 마모가 되어 흐릿하다. 오른손의 수인은 육안으로는 판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희미해졌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다. 두광은 머리주위를 일곱 겹으로 동심원을 둘러놓았고, 몸 주위에도 두 겹의 신광을 표시하였다. 얼굴이 둥글고 눈은 가늘며 입술이 엷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어 자애로운 아미타여래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왜 이곳에 들어와 커다란 바위를 다듬어 이런 마애불을 조성한 것일까? 어떻게 이 호젓한 산중에 이런 커다란 마애불을 새겼을까? 늘 그런 질문을 하게 된다. 무엇이 그리도 간절했기에,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중에 들어와 이런 작품을 조성한 것일까? 쉬지 않고 질문을 해보아도, 알 수가 없다.

 

  
부처바위라 부르는 이 바위에 고려 초기에 선각을 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가까이 가서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확연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는다

 

뛰어난 장인의 솜씨를 보이는 이 마애불을 찾아본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인가 이곳에 들려 마애불을 찾겠다고 비료공장까지 왔다가, 갑자기 내리는 비로 길을 돌아간 적이 있다. 이렇게 선각처리를 해서 육안으로도 확연히 볼 수가 없었다면, 차라리 그때 비를 맞더라도 올라올 것이라는 후회를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것일까? 그때 비를 맞더라도 부처바위 마애불을 보기 위해 올라왔으며, 좀 더 정확한 선을 볼 수 있었을 텐데. 비를 맞으면 선이 더 확연하게 들어나 보이기 때문이다. 답사를 하면서 여러 곳을 다니다가 보면, 늘 후회를 하는 일이 생긴다.    

 

  
누군가 마애불 가까운 곳에 돌로 집을 짓고 부처를 모셔놓았다


부처바위에 선각을 한 마애여래좌상.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 산중에 있었다. 1979년 이천문화원에서 답사를 할 때까지, 이 산중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수많은 시간을 이렇게 바위벽에 앉은 채로 기다려온 마애불을 만나기 위해, 이 호젓한 산중을 찾은 나그네에게 진정 인연을 알려주고 싶어서일까? 엷은 미소를 띠는 미소가 한없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소고리 마곡산 줄기 부처박골에 가면, 마애보살좌상을 선각한 바위 옆에 또 하나의 커다란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고려중기 이후에 조각된 것으로 설명이 된, <소고리 마애삼존석불>이 있다. 바위 밑에는 누군가 치성을 드린 듯 촛불이 커져있다.

이천시 향토유적 제8호로 지정이 되어있는 이 삼존석불을 바라보다가 한참이나 웃었다. 그 모습이 지금까지 보아오던 마애불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애삼존석불을 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우리가 흔히 즐겨있던 손오공의 이야기인 서유기가 삼존불 안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만의 생각이겠지만, 이 삼존석불 안에 서유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마애삼존석불은 중앙에 본존불을 크게 돋을새김 하였다. 높이는 203cm인데 얼핏 보니 서유기의 손오공을 닮았다는 생각이다. 혹은 다시 보면 저팔계와도 닮았다. 원래는 손오공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은데, 누군가 코를 쪼아내서 저팔계와 비슷한 모습도 하고 있다.

마애삼존석불이 서유기를 본뜬 것은 아닐까

서유기는 중국 명대의 장편소설이다. 오승은이 지은 책으로 승려인 현장이 천축국인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온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이야기다. 서유기에 나오는 현장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로, 602년에 태어나 664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 현장을 따르는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각각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은 삼장법사를 따라 불경을 구하러 인도를 가면서 81차례나 모험을 한 끝에 불경을 얻는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소고리 마애삼존석불을 보다가 갑자기 서유기가 생각이 나는 것은 왜일까?


이 마애삼존석불은 소고리 부처박골에서 산을 향하고 있다. 모두가 돋을새김을 하였는데, 두 다리를 결가부좌한 좌상이다. 본존불과 양편이 협시불, 모두 손을 가슴으로 모았다. 좌협시 보살은 60cm, 우협시 보살은 93cm의 크기이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본존불은 손오공, 좌협시 보살은 사오정, 우협시 보살은 삼장법사를 닮았다.

마애불의 추정연대가 혹 1500년 이후는 아닌지?

고려중기 이후라고 하면 1150년 이후가 된다. 만일 이 마애삼존석불이 고려 중기 이후에 조성한 것이라면, 손오공을 주인공으로 한 서유기를 지은 시기와는 연대가 맞지를 않는다. 마애삼존석불의 문화재 설명문에는 막연히 고려 중기 이후로만 적고 있다. 정확한 조성연대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 마애삼존석불이 혹 1500년대 이후에 조성된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서유기를 지은 오승은은 1500년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혹 명대의 이 책을 보고, 누군가 그 서유기의 이야기를 마애불로 표현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삼존석불은 아무리 보아도 서유기를 도식화해서 만든 작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마애삼존석불의 본존불을 보면 콧구멍을 뚜렷하게 표현했다. 눈이나 생김새도 손오공을 닮았다.

얼핏 보아도 일반적인 부처의 상이 아닌 손오공이라는 생각이다. 함께 동행을 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중앙에 본존불을 보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손오공'이라는 대답이다. 그렇다면 나만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남들도 왜 대뜸 손오공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삼존불 안에 손오공, 사오정, 삼장법사가 있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귀는 어깨까지 늘어진 본존불. 고려조나 조선조의 마애불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전혀 다른 조각의 형태. 그리고 토우 등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 등, 이 삼존석불에서는 모든 것이 다르다. 이목구비도 도식화 되어있으며, 일반적인 불상조성의 규범에서 벗어나 있다. 그저 관 위에 또 다른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과 같은 두광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협시보살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좌협시 보살을 보면 높은 관을 쓰고 있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삼장법사다. 목에는 삼도를 표현하고 있다. 본존불과 좌협시 보살이 삼도를 표현한데 비해, 우협시 보살은 삼도가 없다. 머리는 맨머리인데 두건 같은 것을 쓰고 있다. 서유기의 사오정과 같은 모습이다. 마애삼존석불을 돋을새김한 바위도 이 지역에서 보이는 바위와는 재질이 다르다.


바위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려있다. 옆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의 돌과는 전혀 다른 석질인 듯하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바위가 여기 와서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저 마애삼존불이 내 눈에는 서유기의 인물들 처럼 보이는 것일까? 그동안 너무 많이 돌아다녔더니, 이젠 머리까지 이상하게 되어가는가 보다.

인근에는 없는 석회암같이 구멍이 뚫려있는 바위. 그리고 서유기의 손오공, 삼장법사, 사오정과 같은 인물의 표현. 이 마애삼존석불을 떠나면서도 머릿속이 혼돈스럽다. 왜 저것이 서유기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서 늘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얻기 위한 여정이 계속되는 것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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