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5월 18일일 개관한 석탄박물관은 충남 보령시 성주면 개화리 114-4에 소재하고 있다. 지난 1989년부터 석탄의 수요 감소에 따른 석탄산업의 합리화조치로, 다수의 비경제 탄광이 폐광이 되었다. 이에 따라 과거에 국민의 주된 연료로서 근대 산업발전의 원동력으로 크게 공헌한, 석탄산업의 역사성을 보존하고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보령석탄박물관은 특수공법을 사용, FRC 재질로 산을 상징한 건물형태로서 입구는 갱을 나타내었고 전시실은 크게 내부전시관과 외부전시장으로 구분하여 석탄의 생성과정, 굴진, 채탄, 이용과정 등의 각종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효과를 낸 케이지

 

또한 모의갱도는 국내 최초로 엘리베이터를 이용, 수직갱에서 사용하는 승강기(케이지)를 재현하여 지하 400m까지 내려가는 듯한 효과와 지하 400m에서 올라오는 효과를 내어 실감나게 하였고 폐광에서 나오는 찬바람을 이용하여 냉풍터널을 시설하였으며, 터널벽면에 광산관련 사진을 전시하고 모형갱도 내에는 굴진, 채탄, 운반, 과정을 실물 크기로 하여 알기 쉽게 하였다.

 

석탄박물관을 가려면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할 때는 천안 IC → 아산 → 홍성 → 보령을 택하든지, 유성 IC → 공주 → 청양 → 보령을 들어가 성주면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보령시청에서 박물관까지는 승용차로 10분 정도가 소요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서울 → 포승 IC → 아산 → 홍성 → 보령으로, 호남고속도로를 이용할 시는 연무대 IC → 논산 → 부여 → 보령으로 이도이 가능하다.

 

 

모두 다섯 부분으로 구분

 

 

보령석탄박물관의 전시실은 다섯 부분으로 구분이 되어 있다.

☞ 탐구의 장 - 석탄의 기원으로부터 석탄의 생성과정을 전시하고 또 종류별로 분석한 자료와 에너지발전 단계에서 석탄의 위치, 그 사용 방법 등을 보여준다.

☞ 발견의 장 - 석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목표로 석탄이 근대사에 기여한 공로와 가치를 평가하고자 이러한 목표에 근접하기 위해 석탄의 분포와 석탄산업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진단하고 분석하였다.

☞ 참여의 장 - 광산갱도모형, 광산촌모형, 탄전이 많은 보령시와 부여군을 중심으로 한 충남지역의 모형을 나타내었으며, 광산의 갱도모형은 영보탄광 대본갱을 선정하여 탄광과 주변 환경을 보여준다.

☞ 확인의 장 - 관람객이 석탄의 생산과정을 확인할 수 있게 하여, 열악한 환경 속에서 땀을 흘리는 광부들의 모습을 가슴으로 느끼게 하고자 계획 하였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 석탄이 생산되는지를 인식시켜 석탄자원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위한 장이다.

☞ 체험의 장 - 수갱엘리베이터 및 굴진, 채탄, 운반 과정을 보여준다.

 

 

 

관람시간 : - 하절기 (3월 ~ 10월) 09:00 ~ 18:00 (매표시간 : 17:30)

                - 동절기 (11월 ~ 2월) 09:00 ~ 17:00 (매표시간 : 16:30)

관람소요시간 : 약 30분 ~ 1시간

휴 관 일 : 매주 월요일, 매년1월1일, 설날연휴, 추석연휴, 관공서 공휴일다음날

입 장 료 : 개인 1,000원 단체(20인 이상) 800원

어린이 청소년 군인 500원 단체 400원 

※ 단체는 20명 이상

※ 무료 : 5세 이하 65세 이상, 국가유공자, 장애인

옛 말에 이란 말이 있다. '굿이나 보고 떡이자 먹자'는. 과연 이 말은 맞는 이야기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맞는다'가 정답이다. 예전 굿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은 굿을 하번 과일, 육고기 등 음식을 많이 차리지만, 예전에는 전과 떡을 수북히 쌓아놓았다.

이렇게 음식을 많이 준비를 하는 까닭은. 굿은 열린 축제이기 때문이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굿판을 모두에게 개방이 되어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집에서 굿을 한다고 하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기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많은 떡과 전을 준비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굿판에 가면 '굿을 보고 떡을 먹는' 것이 그 당시의 풍습이었다.


굿, 어떻게 다가서야 할까?

요즈음 일부 종교인들은 '굿'을 '미신'이나 ;우상숭배' 혹은 '마귀' 등으로 표현을 한다. 난 당연히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굿에서 보이는 많은 신들이 미신이고 우상숭배 혹은 마귀라고 친다면, 세상의 모든 신격들은 다 우상숭배요 마귀가 된다. 왜 유독 굿판에 현신하는 신격들만이 그런 이야길 들어야 할까? 그것은 굿을 잘 모르고 하는 무식의 소치이다. 또한 굿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고,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초 이래서 굿을 해왔다.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등 이 모든 것을 '맞이굿'이라고 불렀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이는 천관이나 천녀들이 지금 우리가 보는 굿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맞이굿이란 하늘의 신인 '천신'을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이런 의식을 할 때는 3일 밤낮을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노래를 했다.

이런 굿이 시대가 흐르면서 연
희적 성격을 접고, 신성만 강조하다보니 지금과 같은 형태로 변질이 된 것이다. '굿' 그 자체는 정말로 'good'이다. 이런 굿판에서는 항상 먹을 것이 넘치고 사람들은 밤새 웃고 떠들고 같이 울고는 했다. 굿을 하는 주인집에서는 문고리마다 떡을 끼워 놓는다. 굿판에 모인 아이들이 다니면서 그것을 막게 하기 위함이다. 나눔의 장소, 그곳이 바로 굿판이었다.

좋은 날도 없는데 굿판이나 한 번 벌려봐!

사람들은 왜 긋을 할까? 물론 굿을 하는 무격들의 인격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회에 문제를 야기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무격들 중에는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30년 가까이 혼자거 300여명이나 되는 어른들을 모시고 봄, 가을로 경로전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제는 굿, 그 자체가 아니라, 굿을 하는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전해지는 '굿니아 보고 떡이나 먹자'라는 말은 그만큼 우리에게는 좋은 의미이다. 굿판에 가서 즐길만큼 즐기고, 그러고도 배불리 먹을 수가 있다면 이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잇을까? 그래서 굿판을 '열린 축제의 장'이라고 표현을 한다.

굿 중의 굿, 안택성주굿

굿판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드는 곳이 바로 굿판이기 때문이다. 안택성주굿은 집안의 가신 중에서 가장 으뜸인 성주를 모시는 굿이다. 일부러 성주굿만 하는 경우도 있다. 집안의 가장의 나이가 29, 39. 49. 59. 69 살이되면 성주를 맞아 모신다. 이렇게 9이라는 숫자에 성주를 모시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속설에 '아홉수를 넘기기 힘들다'고 하기 때문인가 보다.

성주를 받는 모습이다. 성주신이 내리면 성주대가 움직이고, 성주를 모실 자리를 알려준다. 

이 성주굿은 정말로 흥이 난다. 대청에 두 사람이 마주 앉는다. 한 사람은 징을 치고, 또 한 사람은 참나무로 만든 성주대를 잡고 앉는다. 축원을 하면 성주대가 움직여 성주를 달 곳을 알려준다. 성주신은 집안의 대들보나 안방의  위에 자릴 잡는다. 성주를 모시고나면 대천에서 길게 소창을 늘여 놓는다. 성주풀이를 하면서 지신을 밟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밤새 웃고 마시고, 울고 떠들고 춤을 추면서 지새우는 것이 바로 굿이다. 이런 굿의 진가를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이 괜한 소리를 한다. 요즈음은 이런 굿판 보기도 쉽지가 않다. 하도 떠벌리는 인간들이 많으니 점차 산 속으로 숨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살기 멋같은 요즘 같은 세상. 걸진 굿판이나 벌렸으면 좋겠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게.


 

성주를 모시고 나면, 소창을 잡고 한바탕 춤을 추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누구나 다 이집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굿판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열린 축제의 장'이고 끈끈한 공동체가 살아있는 곳이다. '굿이나 보고 떡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성주신(成主神)은 집안에 있는 가신 중에서는 가장 상위신에 속한다. 집안의 대청 대들보나 안방의 문 위에 좌정하는 성주신은, ’상량신(上樑神)‘, 혹은 ’성조(成造)‘ 등으로도 불린다. 성주는 남신으로 집안의 대주라고 하는데, 성주를 맞이할 때는 안택굿에서 올리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따로 성주맞이굿을 하면서 성주를 받기도 한다.

경기도 지방의 성주신은 그 형태가 세 가지가 있다. ‘대성주’는 대나무에 성주의 신위를 한지로 오려 만들어 대청의 대들보 등에 올려놓는다. 또 한 가지 ‘무성주’는 한지로 만든 종이봉투에 대주의 나이만큼, 동전이나 쌀 등을 넣어서 안방 출입문 위에 붙인다. 끝으로 ‘떡성주’는 한지를 막걸리에 적셔 덩이가 지게 문 위에 붙이는 방법이다.


가신의 으뜸인 성주신

성주신은 가장을 상징하는 신격으로, 가신 중에서는 가장 으뜸이다. 하기에 집안의 가장 높은 곳인 대들보나 가장이 묵는 방의 문 위에 걸어 놓는다. 4월 27일 수원시 인계동 손아무개네 집에서는 안택굿이 열렸다. 요즈음은 주변에서 반대가 심해 집에서는 굿을 할 수가 없다. 하기에 이렇게 집안에서 하는 안택굿을 도심 한 복판에서 보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

그런 어려움이 있는 가운데 집안에서 열리는 안택굿이다. 경기도 지방은 원래 강신무와 세습무가 공존하는 지역이다. 세습무는 도당굿을 중심으로 마을의 굿을 주로 담당해 왔으며, 강신무의 경우에는 안택굿이나 지노귀굿 등을 담당해왔다. 경기도의 안택굿은 그 재차가 달라 나름대로의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안택굿에서 성주맞이굿이 행해진다. 성주대는 미리 만들어 굿 상 옆에 쌀을 붓고, 그 곳에 모셔놓는다. 성주를 맞이할 때는 굿을 진행하는 무격이 성주대를 들고 축원을 한 다음, 집안의 가장에게 넘겨준다.



부정이 끼면 성주신이 나간다는 속설이

성주신은 집안의 가신 중에서도 가장 까다롭다. 성주신은 단 한 개의 신위만이 존재한다. 이 성주신은 집안에 부정한 일이 있으면 나가버린다고 한다. 성주신이 나가면 다시 성주맞이굿을 해서 성주를 모셔 들이게 된다.

성주굿을 하는 무격은 연신 집안의 가내 평안과, 가장이 하는 사업이 번창하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모두 성공하기를 빌어준다. 굿에서는 이렇게 무격의 입을 빌어 축원을 해주는 ‘신탁’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말만 들어도 기운이 난다고 한다. 아마도 성주를 맞이하는 것도 그렇게 믿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아침 11시 정도부터 시작한 굿은, 오후 8시 반이 되어서야 성주굿이 시작이 되었다. 그리고 무격을 손을 떠난 성주대는 가장에게로 옮겨져 안방의 문 위에 좌정을 했다. 이렇게 자리를 잡은 성주신은 집안의 가장 높은 상위신으로 모든 가신을 다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집은 무슨 일이 있어도 3년에 한 번은 집안에서 안택굿을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안택굿을 하면서 성주님을 맞아들이면, 그저 별 탈 없이 잘 지나가는 것 같아요”

안택굿을 한 당주인 무격 고아무개(남, 55세) 말처럼, 그렇게 편안히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방 문 위에 좌정을 한 성주님은 잘 아시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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